‘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31일 오후 검찰 직원과 시민단체 회원, 취재진과 뒤엉키며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짙은 남색 벙거지 모자에 사각 뿔테 안경을 쓴 60대 여성이 31일 오후 3시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에 멈춘 검은색 에쿠스 차에서 내렸다. 지난 한달여 동안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의혹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최순실씨였다. 그는 검은색에 하얀색 점이 찍힌 머플러로 최대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 300여명 앞에서 그는 황급히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검찰 수사관 10여명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최씨를 에워쌌다.
그는 검찰청사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포토라인에 서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기로 돼 있었다. 기자들은 최씨를 상대로 “‘비선실세’라고 하는데 지금 심정 한마디 부탁한다”, “박근혜 대통령과는 무슨 관계냐” 등의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이고 울먹였다. 뒤에서는 시민단체 관계자 20여명이 “최순실 구속, 박근혜 하야”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최순실씨가 31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는 과정에서 청사 문 앞에서 벗겨진 최씨의 프라다 신발. 연합뉴스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기자들이 뒤엉키면서 포토라인은 무너졌고, 최씨가 검찰청사 안으로 들어왔을 때 벙거지 모자와 안경, 왼쪽 신발은 벗겨진 상태였다. 벗겨진 신발에는 명품 브랜드 프라다의 로고가 찍혀 있었다. 현관문을 들어가던 최씨는 “죽을죄를 지었다. 죄송하다”며 울먹였다. 자신에 대한 따가운 여론을 의식한 듯 조사실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타면서 그는 “국민 여러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 40대 남성은 “(검찰이) 최씨를 공항에서 체포하지 않고 오늘까지 시간을 끈 이유가 뭐냐”고 항의하며 서울중앙지검 청사 입구에 오물을 투척한 뒤 안으로 진입하려다 제지당했다.
최씨의 변호인인 이경재(67) 변호사는 최씨가 조사실로 들어간 뒤 서울고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딸 정유라씨는 당분간 입국하지 않을 것이다. 최씨가 일종의 공황장애 증세가 있고 심장도 안 좋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최씨의 건강에 이상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검찰은 최씨가 저녁 식사로 주문한 곰탕을 거의 다 비웠다고 전했다. 최씨에 대한 조사는 형사8부 검사 3~4명이 돌아가면서 서울중앙지검 7층 부장실 옆 영상녹화실에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최씨가 ‘본인 때문에 이런 혼란이 생기게 돼 매우 죄송하다. 조사를 잘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최씨가 전날 입국 이후 “서울 시내 한 호텔에 있었다”고 말했다. 또 입국 당시 인천공항에 나왔던 사람들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최씨가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과 2~3명의 사설경호원이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날 형사8부와 특수1부 외에 서울중앙지검 3차장 산하의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손영배)를 추가 투입했다. 이번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는 20명 안팎으로 늘어나, 2013년 문을 닫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인력 수준에 필적하는 규모가 됐다.
서영지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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