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장교·부사관들 가혹행위 ‘1주에 1명꼴’ 징계받았다
지난해 연말 육군 행정장교로 재직 중이던 ㄱ 중위는 막사 복도에 병사 10여명을 엎드리게 한 뒤 골프채로 엉덩이를 때렸다. ㄱ 중위는 몇 주 뒤에도 다시 부하들에게 골프채를 휘둘렀고, 대걸레 막대로 병사를 때렸다. ㄱ 중위는 결국 3월 상습폭행, 가혹행위 혐의로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ㄴ 원사는 ‘밥을 질게 한다’ ‘밥을 꼬들꼬들하게 한다’ ‘서빙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간부식당 조리병들에게 욕설과 폭언을 하고, 주먹으로 머리를 때리는 등 여러 차례 폭행을 했다. 그는 6월 감봉 3개월이 결정됐다. 그러나 지휘관은 근신 10일로 낮췄다.
국방부가 여러 차례 가혹행위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아직도 군 일부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가혹행위와 폭력이 남아 있다. 올해 들어서만 해도 장교나 부사관이 부하들에게 가혹행위를 했다가 징계를 받는 경우가 일주일에 한 명꼴로 생긴 것으로 조사됐다.
국방부가 국회 법제사법위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낸 ‘군대 내 가혹행위 징계 현황’을 보면, 1~8월 사이 소령~하사 33명이 가혹행위·상습폭행 혐의로 정직~근신 징계를 받았다. 33명을 징계 수위별로 보면 중징계 가운데는 파면·강등은 전혀 없고 정직 4명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감봉(4), 근신(5), 견책(7) 등 경징계와 경고(9), 유예 뒤 면제(4)였다. 또 33명 가운데 20명은 징계권자에 의해 징계위원회에서 결정됐던 징계의 수위가 낮아졌다. 이 통계는 징계 이유가 가혹행위에 한정돼 있어, 단순 폭행, 언어 폭력, 모욕을 포함하면 징계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장교들이 부하 장병들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거나, 사적인 일에 동원하는 일이 많았다.
ㄷ 소령은 지난해 가을 서류를 작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필깎이를 병사의 머리에 집어던졌고, 평소에도 일삼아 ‘개○○’ ‘××놈’ ‘×× 방위○○’ 등의 욕설을 했다. ㄹ 중위는 미국 유학을 다녀온 병사에게서 영어회화 개인지도를 받으며, 휴일에 번개통신(비상사태 때 긴급소집망)을 이용해 상근예비역들을 부대로 출근시킨 뒤 축구 경기를 시켰다. 또 군대 음식을 먹고 싶다는 민간인 친구 6명을 부대로 데려와 취사병에게 식사를 준비시키기도 했다. 징계위는 ㄷ 소령과 ㄹ 중위에게 견책을 결정했지만, 소속 부대 지휘관들은 경고로 낮추거나 징계를 유예했다.
이밖에도 ㅁ 대위는 행군 중 모든 부대원에게 1시간30분 동안 1천번 앉았다 일어서기를 시켰고, ㅂ 중위는 자신의 숙소로 사병을 불러 추행하고 안마를 시켜 각각 견책과 감봉 징계를 받았다.
병사들과 자주 접촉하는 부사관들의 가혹행위도 적지 않았다. ㅅ 중사는 근무자에게 돌을 던져 상처를 입히고 부하 3명을 성추행했지만 감봉 3개월 징계만 받았다. ㅇ 하사는 사병의 여자친구 편지를 빼앗아 읽으며 해당 사병에게는 노래와 팔 벌려 높이뛰기를 시켰다. 이밖에 △‘평소 컴퓨터 공부만 한다’며 부하에게 욕설과 함께 페트병을 집어던진 경우 △병사들에게 자신의 전투복을 다리게 한 경우 △병사 소포 안에 있던 과자와 병사 휴가비를 임의로 가져간 경우 등도 있었다.
최재천 의원은 “국방부가 말로만 가혹행위 근절을 강조하지 말고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한편, 지휘관들이 징계 감경을 남발하지 못하도록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최재천 의원은 “국방부가 말로만 가혹행위 근절을 강조하지 말고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한편, 지휘관들이 징계 감경을 남발하지 못하도록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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