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의 한 중학교 3학년 학생이 학교 안에 붙인 대자보. 독자제공.
“선생님, 거국중립내각과 책임총리제가 뭐예요?” “대통령 탄핵 요건과 절차 좀 설명해주세요.”
서울 강북지역의 한 고등학교 교사인 홍아무개(44)씨는 최근 학생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일찌감치 대학 수시모집에 합격해 여유가 생긴 고3 학생 중에는 자습시간에 신문 기사를 찾아 읽거나, 촛불집회 참여를 준비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홍씨는 “그동안 입시와 드라마, 연예인 등에 주로 관심을 보이던 학생들이 최순실 파문 이후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수업 분위기도 달라졌다.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 한문 교사인 최아무개(47)씨는 “공자가 정치에 관해 이야기한 내용 등을 가르치면, 그동안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 박근혜 대통령과 현실에 대입해 관련 문장을 적극적으로 해석한다”고 말했다.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정치란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잡는 것이다”(政者正也)란 문장을 배운 학생들이 “지금 정치는 거꾸로 가고 있다. 바른 것을 바르지 않게 만들고 있다” 등의 해석을 내놓는 식이다.
광주광역시의 한 중학교 3학년 학생이 학교 안에 붙인 대자보. 독자제공.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교실 풍경이 바뀌고 있다. 교실 안에서 입시 공부만 하던 학생들이 이번 파문으로 정치·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관련 내용을 적극적으로 찾아 공부하고, 그중 일부는 촛불집회 참여 등 거리로도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땐 중·고등학생들이 주도한 촛불문화제가 도화선이 되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학생들이 단일 이슈를 넘어 정치체제, 사회구조 등 사회 전반 문제로 관심이 넓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학생들의 구호도 2008년과 달리 ‘대통령 하야’ ‘대통령 탄핵’ 등으로 구체적인데다, 공개적인 중고생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차이점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학생들의 관심과 분노가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고교·대학입학·출결·학점 관련 특혜 의혹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학사관리나 진학 과정에서 이른바 ‘금수저론’이 어떻게 현실화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지켜보면서 학생들이 이번 파문을 자신들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 같다”며 “파문의 핵심에 대통령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권력구조에까지 더욱 관심을 두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의 한 중학교 3학년 학생이 학교 안에 붙인 대자보. 독자제공.
국가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터져나오면서 학생들을 행동하게 한다는 분석도 있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현재 학생 세대는 세월호, 메르스 등 그동안 국가가 제구실을 못한 일들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세대인데, 여기에 더해 아주 수준 낮은 국정농단 사건이 발생하다 보니, 결국 ‘이게 나라냐’고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스마트폰과 에스엔에스(SNS) 대중화로 학생들이 시시각각 뉴스와 정보를 접할 수 있고, 대통령과 최순실 풍자 ‘짤방’(영상이나 사진을 패러디해 재가공한 이미지) 등 젊은 세대들에게 익숙한 형식의 콘텐츠가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있는 점도 이번 사태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을 지속해서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김경욱 김미향 기자
da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