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총수 독대 등 대통령 강제모금 적극 관여
청와대 문서유출도 대통령 지시 없인 설명 안돼
사정당국 핵심 “뇌물죄 기소·공소유지 어려울 것”
법조계 “모금 지시만으로도 제3자 뇌물죄” 지적
청와대 문서유출도 대통령 지시 없인 설명 안돼
사정당국 핵심 “뇌물죄 기소·공소유지 어려울 것”
법조계 “모금 지시만으로도 제3자 뇌물죄” 지적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을 조사하면서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으로 조사하기로 한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검찰의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 태도가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13일 “박 대통령을 일단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피의자가 될 수 있나’란 질문에 “그건 지금 알 수 없다”고 답했다.
형사소송법을 보면, 참고인은 ‘범죄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이외의 사람’으로 정의된다. 범죄혐의가 없지만 피의자의 범죄혐의를 입증하는 데 필요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대로라면 박 대통령은 이번 국정농단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경제수석, 차은택씨 등의 범죄혐의를 입증하는 데 단순히 ‘필요한 사람’이 되고 만다.
박 대통령은 ‘재단 강제 모금’과 ‘청와대 내부 문건 유출’이라는 이번 사건의 두 축에서 상당히 적극적으로 관여해 온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안 전 수석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재단 모금은) 박 대통령의 지시로 한 일이다”, “(차은택과는) 박 대통령 소개로 알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고, 미르재단 설립 석달 전인 지난해 7월24~25일에는 박 대통령이 직접 정몽구 회장, 이재용 부회장 등 재벌 총수 7명을 따로 불러 독대한 사실도 드러났다. 박 대통령 스스로도 본인이 재단 설립을 추진했다는 뜻을 수차례 밝혀왔다.
연설문과 국무회의 자료 등 청와대 내부 문건 수십건이 최씨에게 건너간 경위도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중 한명인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이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한 행위임이 점점 확실해지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 “이번 사건은 박 대통령을 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사건의 중심에 박 대통령이 있다는 것이다.
검찰이 최씨와 안 전 수석을 직권남용의 ‘승계적 공동정범’으로 규정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한 기존 태도와도 상반된다. 검찰은 최씨와 안 전 수석이 서로 공모해 기업들에 돈을 내도록 한 직권남용을 저질렀다고 봤는데, 최씨와 안 전 수석이 사전에 서로 알고 있었다는 점을 아직 증명하지 못했다. 결국 검찰은 박 대통령이 두 사람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고 보고 두 사람을 공범으로 지목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승계적 공동정범이라는 개념까지 적용해 최순실씨와 안종범씨를 공범으로 봤다면, 그 중간에 있는 박 대통령 역시 공범이 되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런 소극적 태도를 보면, 검찰이 박 대통령에게 뇌물 혐의를 적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와 검찰의 기류를 잘 아는 사정당국 핵심 관계자는 최근 <한겨레>에 “박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적용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소하고 공소유지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르·케이스포츠재단의 성격과 관련해서도 ‘다른 대통령들이 만들었던 재단들과 비슷하고, 문제가 있더라도 최순실과 안종범 전 수석이 다 해먹은 것 아니냐’는 취지의 뜻을 밝혔다.
박 대통령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재단이 만들어졌고, 이후 모금 과정 등에 박 대통령이 관여한 바 없기 때문에 뇌물죄 적용이 안 된다는 논리다. 이는 박 대통령이 지난 4일 2차 대국민 담화에서 밝힌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추진했다.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위법 행위까지 했다니 참담하다”는 해명과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박 대통령이 재단 설립 및 모금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점이 드러나고 있어 뇌물죄 적용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단 모금에 대한 박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음이 확인되는 등 현재까지 드러난 바로도 검찰이 ‘제3자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대통령의 영향력을 이용해 기업들을 상대로 ‘제3자’인 미르재단 등에 기금을 내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부정한 청탁’이 입증돼야 하는데, 재벌들이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기금을 낸 것은 암묵적으로 대가를 바라고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검찰은 기업 총수들을 상대로 이 부분에 대한 수사에 집중하고 있어 앞으로 결과가 주목된다. 앞서 검찰은 지난 7월 진경준 전 검사장 사건에서, 한진그룹 임원에게 ‘앞으로 잘 봐달라’는 취지의 청탁을 받고 처남 회사에 일감을 달라고 한 행위에 대해 제3자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해 기소한 바 있다. 2006년엔 이남기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에스케이(SK)그룹 쪽에 자신의 직무범위 안에서 혜택을 주는 대신 자신이 다니던 사찰에 10억원을 내게 한 혐의로 기소돼, 제3자 뇌물죄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최현준 서영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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