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걱정하는 서경인들의 모임'이 4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서경대 초록운동장에서 촛불을 든 채로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서경인모임 제공
학생처 직원 “민주화운동같이 정치적 성향 띠면 문제” 발언
서울 서경대학교 학생들이 ‘박근혜 최순실 사태’를 놓고 시국선언을 시도하자 학교 쪽이 교칙에 어긋난다며 주도 및 참여 학생들을 징계하겠다고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서경대 교직원은 학생들의 시국선언 등을 두고 “예전의 민주화운동같이 정치적인 성향을 띄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민주화운동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도 했다.
서경대 학생들의 모임인 나라를걱정하는서경인들의모임(이하 서경인모임)은 지난 4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서경대 초록운동장에서 시국선언을 했다. 서경인 모임은 이 학교 법학과에 재학 중인 송치윤 씨를 중심으로 지난 2일 ‘박근혜 최순실 사태’를 놓고 시국선언의 필요성을 느껴 자발적으로 조직된 단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서경인모임이 두 차례에 걸쳐 작성해 학내에 붙인 시국선언문 대자보가 모두 훼손됐다. 서경인모인은 “범인을 찾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경인모임은 또 학교 쪽이 시국선언 집회가 학칙에 위반된다며 서경인모임 등의 학생 결사를 놓고 징계를 언급한 녹취록을 공개하기도 했다.
서경대는 학칙 11장 학생활동 65조에서 ‘사전승인 없이 집회 및 결사를 할 경우...심의를 거치지 않고 총장이 직접 징계할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성연 학생처 계장은 11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징계’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다만, 학생들의 행동이 예전의 민주화운동같이 정치적인 성향을 띄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징계를 거론한 당사자인 학생처 직원 이상협 씨는 “학칙에 따라 징계를 내릴 수 있다고 판단해 ’징계를 내릴 수 있다'라고 발언한 것이다. 집회 승인과 관련해 행정절차를 따라달라는 이유로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경인모임은 이 학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집회·시위 등을 금지한다’고 규정한 유신 시절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조항과 흡사하다고 반박했다. 서경인모임 소속 서아무개 씨는 “11일 밤 교육부와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민주화운동이 정치성을 띈다고 부정됐다면 우리나라에 민주주의는 없었을 것이다. 진보-보수의 관계가 아닌, 옳고 그름의 문제”라고 말했다.
민변의 이광석 변호사도 서경대 학칙을 두고 “집회 허가·승인제는 위헌이다. ’헌법21조 2항,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라는 헌법만 보더라도 학칙에 문제가 있다. 또한 미신고집회도 폭력적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아니면 헌법에 따라 보호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교육부 대변인실의 이재력 과장도 “교육부도 헌법 판례를 참고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 대학 ‘제44대 버팀총학생회(하정민 회장)’도 학교 쪽과 보조를 맞춰 ‘섣불리 시국선언을 하면 정치적 중립성을 잃을 수 있다’고 밝혔다는 주장이 제기돼 학생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서경인모임은 버팀총학생회가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시국선언을 미룬 뒤 중앙운영위원회를 소집해 ‘시국선언’이라는 명칭이 아닌 ‘공동성명서’ 형식의 대자보로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고 주장했다. 버팀총학생회는 이 공동성명서를 낭독하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서경’이란 이름을 사용해 시국선언을 하지 말아 달라는 당부 글도 서경인모임에 보냈다.
이에 학생들은 페이스북 페이지 <서경대학교 대나무숲> 등에 총학생회를 비판하고 나섰다. 학생들은 ‘‘서경’이란 단어에 상표권이라도 등록해놨냐’, ‘총학 자꾸 시국선언 반대여론 반대여론 하는데 누가 반대하는데? 일베충?’, ‘학생들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자기들이 모여서 사비를 들여서 할까?’ 등의 댓글을 달고 있다. 하정민 총학생회장은 이에 대해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성명서에 시국선언 관련 내용이 있다. 서경인모임이 주장하는 내용은 출처가 어디냐”라며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송치윤 서경인모임 대표는 “2일 저녁 총학 쪽에 시국선언 행동 여부를 물었고, 이튿날 대학본부 학생처 직원으로부터 총학의 답변이 적힌 서류를 받았다. 만약 총학의 반박이 사실이라면 학교의 농단”이라고 반박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찢어진 ‘시국선언' 대자보와 관련해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온 게시물 서경인모임 제공
서경인모임 제공
서경인모임 제공
서경인모임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