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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온 거리가 사람들로 범람하다니”…촛불집회 찾은 일본 학생들

등록 2016-11-16 15:16수정 2016-11-21 15:29

전학련 학생들 12일 민중총궐기 참여
"노조와 시민 결합 집회 일본엔 없어"
"민주주의 실현하려면 노동자·민중이 지배자 돼야"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온 일본 전학련 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를 찾았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온 일본 전학련 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를 찾았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3차 범국민대회’가 열린 지난 12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이 중앙 무대 한 곳으로 눈과 귀가 쏠린 집중의 현장이었다면 무대 너머 광화문과 내자동 로터리 사이 도로는 곳곳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가 어우러진 다양성의 현장이었다. 그중 한 곳에서 일본어로 ‘한반도 침략 전쟁을 멈추라’라고 쓰인 세로 펼침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전학련’이라고 적힌 펼침막도 보였다. 200명쯤 되어 보이는 사람들의 손에는 ‘한국 총파업 연대’ 같은 글귀의 손팻말이 들려 있었다.

20대로 보이는 젊은이들은 유독 신나게 웃고 떠들어 눈에 더 잘 띄었다. <한겨레> 기자라고 하자 환호성이 터졌고, 누군가는 스마트폰에서 한겨레 일어판을 열어 보여주며 “매일 찾아 읽는다”고 했다. 전화번호를 교환한 뒤, 15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다시 만났다. 두어명쯤 올 거라고 예상했는데, 11명이 우르르 몰려왔다. 집회에 참여한 전학련 소속 전원이었다. 이들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신문사를 구경시켜 달라”고 했다. 인터뷰는 한참 뒤에야 시작됐다.

“노동조합과 시민들이 합세하는 방식으로 온 거리가 사람들로 범람하는 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방식의 집회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사이토 이쿠마(28) 위원장은 “덕분에 큰 힘을 받고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학생운동가인 이들 모두가 마음의 영양주사라도 한 대씩 맞은 듯 보였다.

사실 이들 대부분은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은 아니다. 사이토 위원장은 5차례나 한국을 찾았다. 이들이 속해 있는 도로치바(일본철도(JR) 계열사 노동조합)와 한국의 민주노총이 해마다 두 나라의 노동자대회에 참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본격화한 뒤 거리 집회를 찬미하기에 바쁜 언론들 가운데 일부는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대회를 앞두고 ‘준법 불감증 대한민국…주말 대규모 반정부 시위’ 같은 기사를 쏟아내며, “해외 과격 시위 세력까지 참가한다는 첩보가 입수됐다”고 보도했다. 알고 보니 그 무시무시한 세력이 바로 이들이었다.

일본에는 전학련(전일본학생자치회총연합)이라는 이름을 단 청년 그룹이 5개나 된다. 이 가운데 이들은 ‘중핵파’라고 불린다. 1948년 대학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된 전학련은 1960년대에 해체됐다가 정치적 지향이 다른 분파들로 되살아났으나 숱한 우여곡절을 거치며 제가끔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맹목적인 분파주의 탓이 크지만, 탄압도 끈질기게 이어져 왔다. 교내에서 정치 홍보물을 배포하려면 학교 당국의 검열을 받아야 한다. 이날 만난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학내 싸움을 벌이다 구속되거나 퇴학·무기정학을 당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안보법제가 일본 국회를 통과한 뒤인 지난해 10월27일, 이들은 반나절 동안 교토대 강의동 한 곳을 바리케이드로 막았다. “학생 반응이 세 종류로 갈렸습니다. 첫째는 수업을 듣겠다며 바리케이드를 부수는 학생, 둘째는 자기 수업만큼은 바리케이드를 쳐달라는 학생, 셋째는 왜 바리케이드까지 치느냐고 묻는 학생!” 지난 5월 교토대에서 무기정학을 당한 사크부 요헤이 서기장은 “학생들 사이에 파업 문화 자체가 사라져 상상조차 하기 어려워진 현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풀이했다.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온 일본 전학련 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를 찾았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온 일본 전학련 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를 찾았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제 일본의 20~30대에는 비정규직이 가장 많다. 학생들도 앞으로 비정규직이 될 것이다. 가장 사회적인 약자이면서 자신을 대변할 방법도 없다. 대학에서 교수들은 민주주의를 가르치지만 학생들의 정치적 선전물을 금지한다. 그러니 더욱 극심한 억압에 처하고, 내 형편이 어려운 건 내 탓이라는 자기 혐오적인 이데올로기에 갇힐 수밖에 없다. 중핵파계 전학련의 정치적인 지향을 넘어서, 오늘날 일본 청년들이 처한 상황은 이들이 싸움을 내려놓을 수 없게 한다.

이들의 싸움은 일본 내부만을 상대로 하지 않는다. 일본군 강제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정부의 합의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고,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문제를 “미-일 간의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라며 반대한다. 독도 영유권 문제는 일제의 침략 과정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청년들이 겪는 고통과 한국 청년들이 겪는 고통은 전 지구적으로 하나의 구조 위에서 벌어지는 고통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이렇게 한국을 찾아 연대하며 희망의 단서를 찾는다.

한국의 집회가 지나치게 비폭력을 강조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폭력 투쟁을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집회가 폭력적이지 않았던 건 폭력 없이도 집회 주최 쪽의 1차 목표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무엇보다 참가자의 규모가 공권력을 압도했기에 집회가 평화적으로 끝났다고 본다.”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백수인 이시다 마유미(29)는 “백남기 농민에 대한 국가 폭력에 분노할 수 있고, 그 분노를 결집된 힘으로 보여주는 것부터가 우리에겐 큰 감응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참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삶의 조건을 바꿔가고 전쟁 위험을 막으려면 지배자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 노동자와 민중이 스스로 지배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자의 꿈을 한마디씩 보태며 인터뷰를 마쳤다. 호세이대에서 무기정학을 받은 호라구치 토모코(24)는 내내 침묵을 지키다가 끝으로 “모든 것을 되찾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이들은 이날 남산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방문한 뒤 밤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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