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로 아들 임경빈군을 잃은 전인숙씨가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들머리에서 분수대로 향하다 경찰에 막혀 있다. 전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려 했지만 경찰은 ‘7시간’이라는 문구를 문제 삼아 전씨의 길을 막았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세월호 참사로 자녀를 잃은 ‘경빈 엄마’ 전인숙씨와 ‘수진 아빠’ 김종기씨는 16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기 위해 청와대 앞으로 이동하다 제지당했다. 경찰은 “유가족들이 소지한 물품이 대통령 경호상 위해 소지가 있다”고 이유를 댔다. 전씨와 김씨가 지니고 있던 것은 총기나 폭발물이 아니었다. 문제가 된 것은 피켓에 적힌 ‘7시간’이란 문구였다. 이들은 “7시간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하는 1인 시위가 위해가 된다니 말이 되는가? 경찰이 무슨 근거로 막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경찰이 이중 잣대로 대통령 ‘심기경호’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주 100만명이 모인 촛불집회 때 폭력 상황을 유발하지 않는 유연한 대응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런 자세는 청와대 앞에서만큼은 사라졌다.
참여연대도 지난주 내내 청와대 앞에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려고 했지만 경찰에 의해 아예 접근조차 봉쇄됐다. 참여연대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접수했다. 경찰이 세월호 유가족과 참여연대의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제지한 법적 근거는 ‘대통령 등 경호에 관한 법률’ 제5조 3항(“경호 목적상 불가피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경호구역에서 위해 방지에 필요한 안전 활동을 할 수 있다”)이다. 하지만 어떤 점에서 1인 시위를 막는 것이 ‘경호 목적상 불가피한’ 일인지에 대해선 “피켓 문구뿐 아니라 종합적인 상황을 고려해 대통령 경호에 구체적 위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설명만 반복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도 청와대 앞에만 가면 대통령 심기를 건드린 이들을 탄압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 지난 11일 청와대 앞에서 이경자 노동당 부대표와 김진근 공보국장은 “청와대는 신성 구역? 박근혜 앞에서 퇴진을 외치다”라고 적힌 에이(A)3 용지를 들고 사진을 찍으려다 종이를 채 펼치기도 전에 경찰에 체포됐다. 이들은 “이곳은 사진 촬영이 허용된 곳”이라고 항의했지만, 경찰은 “2인 이상이 정치적 주장이 담긴 선전물을 펼쳤기 때문에 신고하지 않고 집회를 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8일에는 “박근혜 정권 퇴진하라”는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고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에서 열리는 시국선언 기자회견에 참여하기 위해 인도를 걸어가던 노동자들이 체포됐다. 경찰은 “신고하지 않은 행진이므로 불법”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자들은 “단지 기자회견 장소로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경찰은 “2인 이상이 정치적 주장이 담긴 옷을 입고 있고 행진 중이었으므로 신고되지 않은 미신고집회”라고 반박했다. 집시법은 시위나 행진을 하려면 48시간 이전에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권두섭 변호사는 “단순히 2인 이상이 정치적 주장이 담긴 종이를 들고 사진을 찍거나 조끼를 입고 걸어간 것은 집시법이 상정하고 있는 일반적 집회·시위가 아니다. 설사 집시법상의 집회·시위라 하더라도 ‘미신고’만으로 불법이 되는 게 아니다. 폭력을 행사하거나 교통 흐름을 방해하지도 않으면 미신고 집회라해도 경찰은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경찰이 위법한 공무집행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허승 박수진 기자 rais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