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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비망록 속 김기춘은 ‘청와대 대공수사국장’이었다

등록 2016-12-07 12:01수정 2016-12-07 21:02

김영한 전 민정수석 업무일지에 드러난 김 전 비서실장의 민낯
40년 전 유신 치하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때 모습과 똑같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에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의 답변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에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의 답변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출근 첫날인 2014년 6월14일부터 사표를 던진 이듬해 1월까지 작성한 업무일지에 등장하는 ‘김기춘’은, 그가 40년 전 유신 치하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시절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국정 전반을 총괄 보좌하기보다는 “각하 보위”를 위한 “70년대같은 열의”를 불태우며 시대착오적 공안통치 전략과 전술을 짜고 실행하는데 집권 초반 귀중한 시간을 흘려 보냈다. 검찰·경찰 등 사정기관과 정부조직, 여기에 종편 등 보수언론과 “애국단체”들은 김 전 실장의 공안통치 도상회의 작전판에 올라온 ‘장기알’들이었다. ‘청와대 대공수사국’ 도상회의 내용은 이후 검찰, 경찰, 새누리당, “애국단체” 등에 의해 곧바로 실행에 옮겨졌다. 그가 주재한 회의는 매번 “이념 대결“과 “전사적 자세“를 강조하며 흡사 북한식 사상투쟁의 전의를 불태우고 다지는 자리가 됐다.

유신검사에서 5공검사로,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에 이어 3선 의원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탄핵소추위원에서,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김 전 수석의 업무일지를 보면 김 전 실장은 자신의 이력을 “원칙을 수호, 48년째 공직”이라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1964년 광주지검 검사로 시작한 그가 반세기 공직 생활 동안 수호했다는 원칙은, 그러나 “70년대같은 열의”에 멈춰 있었다.

“이념 대결 속에서 생활, 갈등 속에서 전사적 자세 지니도록”, “가치중립적 타협, 화합은 없다…회색지대 無(무)…강철같은 의지로 대통령, 대한민국 보위”.

2014년 6월14일, 김 전 수석이 민정수석으로 첫 출근한 날은 토요일이었다. 공안검사 출신인 김 전 실장은, 마찬가지로 같은 공안통 검사였던 김 전 수석에게 초임 검사 대하듯 “헌법가치 수호”를 위한 전사적 자세를 요구했지만, 그 방점은 “대통령 보위”에 쏠려 있었음은 이후 김 전 수석의 업무일지 곳곳에서 드러난다. 김 전 실장은 “근위병, 호위무사, 끝까지 전투력을 잃지 않도록”하라며 독려하고, “국가 정체성과 헌법가치 수호 노력”을 “전사들이 싸우듯이”하라고 했다.

수석비서관회의는 사상교육의 장이자 전 정권 인사들이 아닌 “순혈”들의 의식화를 위한 자리였다. 검사 시절 유신헌법을 만드는데 간여했던 김 전 실장은 청와대 수석들을 상대로 이미 역사적 평가가 끝난 5·16 쿠데타와 유신헌법에 대해 “애국심 가진 군인의 구국의 일념”이라며 정당성을 강변하는 시대착오적 장광설을 늘어놓기도 했다. “국정철학 공유. 헌법가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신념, 5·16에 대한 평가 공통된 인식. 그 당시 우리 나라는 세계 최빈국으로 북한보다 가난했다. 반공의식 약화로 안보위기 상황이었다. 초등학생도 시위하는 등 사회질서가 문란했다. 애국심 가진 군인, 구국의 일념에 일으킨 사건이 5·16이다. 그 결과 경제성, 자유와 번영을 구가하게 됐다. (국민의) 70~80%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한다. 역사적 평가에 맡길 일이긴 하나 현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은 이러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유신헌법에 대해서는 “월남 패망 직전, 체제 경쟁, 카터 행정부 미군철수, (당시) 북한도 헌법 개정” 등 유신체제가 불가피한 상황을 설교했다. 김 전 실장에게 사정기관은 단지 “정권에 대한 도전”으로 판단한 모든 이들의 발언과 행동을 겁박해 찍어누르는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정권 대하여 도전, 두려움 갖도록 사정활동 강화”하라는 지시가 버젓이 청와대 회의에서 내려졌다. 김 전 실장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공직, 민간, 언론을 불문”하고 “독버섯처럼 자랐다”고 지적하며 “<한국방송> 좌파 이사에 대한 성향을 확인”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중요부처 실국장 동향을 파악”해 “충성심을 확인”하라며 공직기강 감찰 수준을 벗어난 사실상의 사찰을 지시한다.

정윤회 문건유출 사건 대응이 청와대 비서실의 주임무가 됐던 2014년 12월, 김 전 실장은 “조직, 인간됨됨이가 안 된 자들이 큰 피해를 야기했다. 과거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으니 위태로운 자, 인간 쓰레기를 솎아내는 일을 점진적으로 추진토록 하라. 그것이 나라와 대통령을 위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김 전 실장은 전교조 등 ‘생각이 다른’ 이들을 박멸의 대상으로 봤다. “법은 엄한 것보다 일관되어야”한다며 “처음부터 단호한 대처”와 “상응한 불이익이 가도록 일관성 있게”하라고 강조했다. 세월호특별법 논란이 한창이던 2014년 7월13일, 김 전 실장은 “세월호특별법이 국난을 초래”할 것이라고 봤다. “좌익들이 국가기관 진입욕구가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의 이념 대결적 자세가 빼도박도 못하게 머리에 박혀 있음은 “좌익, 운동권은 성적 분방, 방종”(8월31일)하다는 근거 없는 비방으로 이어진다. “생존 위협하는 적군으로”(9월10일)보라며, 굵은 전선을 한국사회에 그어놓기도 했다.

김 전 실장은 특히 정권에 부정적인 보도와 언론사에 “적개심”을 강조하며 “고소, 고발, 손해배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한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횡행하던 돈을 통한 ‘언론공작’까지 주문한다. “요즈음 국정운영을 둘러싼 언론환경이 우호적이지 않음. 특히 부정확한 보도, 악의적 보도, 허위·왜곡보도로 정부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청와대의 신뢰도 깎아내리며 비판하는 일이 빈번함. 허무맹랑하고 불합리한 일방적 지적·비판에 대해서는 그대로 두면 안됨. 반드시 정정보도, 언론중재위 제소, 고소, 고발, 손배청구 등 이에 상응하는 불이익이 가도록 해야 유사 사례가 반복되지 않으므로 철저하게 대응할 것.”

정부 예산을 박근혜 정권에 우호적인 언론에만 쓰라고 지시하기도 하는데 “홍보 보조금 지급시 단체 성향에 따라 광고도 그와 같이…. 국정철학 공유 언론에 배분, 선 실태 파악”하라며 “적에 대해서는 적개심을 가져야”한다고 강조한다.

장관과 참모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받아적기만 하며 ‘토론 없는 불통’의 상징이 됐던 국무회의 장면에 대해서도 김 전 실장은 “홍보”로 해결하라고 지시했다. “국무회의 모습. 받아적기만 노출. 소통, 토론 홍보방법 개선.” 하지만 김 전 실장이 주재한 회의 역시 토론보다는 자신이 검찰총장 등으로 있던 수십년 전의 경험을 거론하며 이를 21세기 국정운영에 관철시키려는 모습이 뚜렸했다.

김 전 실장은 “현 정부 출범 지지 세력은 헌법 근본가치를 지키라는 뜻이다. 초조한 나머지 유화론에 경도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헌법 가치를 박 대통령이 배반하며 콘크리트 지지 세력까지 모두 돌아선 지금, 그는 7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국회 국정조사특위에 증인으로 출석해 “국민들에게 부끄럽고 죄송하다”면서도 “몰랐다”는 말만 반복했다. 김 전 수석의 업무일지를 통해 김 전 실장과 청와대가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시기와 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김 전 수석은 “그런 것을 사전에 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완전한 루머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실장은 김 전 수석의 업무일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회의는 일방적으로 실장이 지시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가지 현안에 대해서 논의하고 소통하는 자리다. 수석들이 각자 소관에 대해 상황을 보고하고 나름대로 대책을 얘기하고 의견을 나누는 소통의 장이다. 거기(업무일지) 적힌 것이 전부 실장이 하나하나 지시했다고 볼 수 없다. 회의 참여자들의 의견이나 작성한 분의 생각이 혼재돼 있다고 생각한다.”

김 전 수석은 업무일지에 김 전 실장이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 외에 자신이 직접 확인하거나 보고한 내용들도 적었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이 말한 내용에 대해서는 ‘長’(비서실장)이라는 표시를 분명히 해두었다. 김 전 실장의 주장처럼 일부 발언은 그의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가 주재한 회의 주제와 내용,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는 명확하다.

그랬기 때문일까. 업무일지를 보면 김 전 실장은 “보안은 생명”이라고 귀에 못이 박도록 강조했다. 유출 사고가 터진 직후에는 어김 없이 역정을 냈고 청와대 수석과 행정관들에 대한 휴대전화 조사를 경고했다.

김 전 실장은 2014년 11월29일 이렇게 말한다. “공은 쉬 잊혀지고 과는 오래 남는다. 공인의 과는 특히 오래 남는다. 눈이 쏟아질 때는 빗자루로 쓸 수도 없다.” 국회 청문회에 나온 김 전 실장은 이날 자신에게 쏟아지는 ‘폭설’을 부질 없이 쓸어내려고 했다.

“대통령을 제대로 보필 못해서 오늘날 이런 사태가 된데에 참으로 부끄럽고 죄송하게 생각한다. 의원과 국민께 사죄드린다. 그러나 (의원들이) 지금 질문한 것은 제가 지시한 것은 아니다. 저는 그런 지시를 하지 않았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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