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주최로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 퇴진 '국회는 응답하라''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즉각탄핵을 외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8일 ‘여의도 정치’는 급속히 숫자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지만, 광장의 시민들은 이미 숫자 너머 ‘탄핵 이후’를 내다보고 있다. 부결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지만 조심스럽게 낙관하는 분위기가 강한데다, 무엇보다 지난 7주 동안 광장 민주주의가 대의 민주주의를 이끌면서 주권자로서 자신감이 커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서울 성북동에 사는 김유미(36)씨는 “토요일마다 나갔는데 감동도 있고 재밌기도 했다. 100만, 200만 모이면서 용기도 생겼다”며 “국민이 원하는 게 뭔지는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국회가 정신 차리고 제 할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아무개(37)씨는 “친구들과 내기를 했는데 200표를 훌쩍 넘겨 가결될 것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며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사람들에게 많은 압박을 받고 있을 것이다. 국민의 뜻에 따라 투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 잠실동에 사는 마아무개(45)씨는 “변화는 분명히 찾아온다는 사실을 믿게 하는 데 이번 탄핵 소추는 중요한 신호라고 생각한다”며 “이겨본 사람이 계속 이긴다고 했다. 부디 탄핵 소추가 가결돼 더 큰 승리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신아무개(41·경기 김포시)씨는 “정치권에서 탄핵으로 가닥을 잡는 데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고 우여곡절도 많았다”며 “왜 속타는 건 언제나 우리 몫인지 모르겠다”고 초조해했다. 시민들은 대통령 탄핵이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대학원생 정아무개(30)씨는 “단순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넘어서 이 사회의 ‘진짜 실세들’을 규탄하는 구호들이 등장하고, 신자유주의나 다양한 억압에 대한 반발들이 함께 등장하고 있다”며 “그러한 광장의 요구에 대해서 철저히 무능과 기회주의로 일관했던 국회가 최소한의 제 책무라도 하길 바란다”고 정치권을 질타했다. 장애인단체에서 일하는 강혜민(31)씨는 “광장에 모여 ‘박근혜 퇴진’을 외치지만 그 이면엔 각자의 요구가 자기 목소리로 넘실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며 “비록 광장엔 장애인 화장실 하나 없고,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이 비하 대상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청소년, 장애인, 여성 등 소수자들이 목소리 내는 데서 희망을 본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은지(30)씨는 “촛불집회가 희망의 시발점이라고 본다. 기득권 세력에 대한 불만과 맞물려서 시간이 갈수록 기득권층을 흔들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며 “탄핵 소추 결과와 상관없이 이미 희망은 발견됐다”고 강조했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