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2일 부산의 한 카페에서 황상민 전 연세대 교수와 부산 시민 20여명이 ‘꼭두각시 일당들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하는 사람들의 모임’(꼭대구사) 토론회를 열고 있다. 황상민의 심리상담소 제공
▶촛불시위가 아니라 촛불혁명이었습니다. 탄핵에 주저하던 정치인들이 촛불의 기세에 눌려 결국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습니다. 현명한 광장의 대중들은 결과를 이미 예상했습니다. 그들은 정치인들과 달리 마음속으로 박 대통령을 탄핵하고 벌써 다음에 누가 되어야 하는지, 우리는 어떤 나라에서 살기를 원하는지 묻고 있었습니다. 광장에 모인 대중들은 어떻게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일까요? ‘황상민의 심리상담소’와 함께 광장에서 촛불을 든 대중들의 심리를 따라가봤습니다.
대중은 미지수 엑스(X)로 불린다. 절대권력을 뒤엎을 만한 폭발적 에너지를 가졌지만 실제로는 권력에 순응하는 규정하기 어려운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은 근대 이후 최근까지 조작의 대상쯤으로 폄하되기도 했다. 그들은 특정 사건 때만 잠깐 전면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감성적인 익명의 다수쯤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고전적인 대중관은 수정을 피할 수 없다. 10월29일 2만개였던 촛불은 12월3일 232만개(주최 쪽 집계)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야당마저 미적거리던 탄핵안을 가결시키는 원동력이 됐기 때문이다. ‘촛불시위’가 아니라 ‘촛불혁명’이라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실제로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대중들은 여러모로 달랐다. 그들은 기존 대중들과 달리 민주주의에 대해 학습돼 있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무장돼 있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민주노총 깃발 대신 자신들만의 노래와 깃발을 들고 시위를 즐겼다. 도대체 6주 동안 대중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겨레> 토요판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온 대중의 심리를 팟캐스트 ‘황상민의 심리상담소’(황심소) 제작팀과 함께 분석해봤다. 황상민 전 연세대 교수는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1회 모임부터 ‘꼭두각시 일당들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하는 사람들의 모임’(꼭대구사)이라는 토론회를 서울은 물론 부산·대전 등 전국에서 열어왔다. 4일까지 5차례 진행된 내용은 황심소 사이트를 통해 들을 수 있다.
황 교수는 2년 전 박 대통령이 누군가에게 조정당하고 있는 꼭두각시라는 분석 글을 언론에 게재한 바 있다. 그후 올해 2월 연세대로부터 해고돼 복직소송을 진행 중이다. 해직 뒤 그는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에서 누리꾼들의 심리상담을 하는 팟캐스트 진행자로 변신했다. 그는 “촛불집회 처음 나갔을 때 대중들이 앞으로 혼란스럽고 무기력을 느낄 수 있다고 봤다”며 “이들을 하나로 묶어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켜보자고 해서 꼭대구사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꼭대구사는 집단토론인 동시에 일종의 집단심리상담인 셈이다.
미지수 X인 대중들의 촛불 헌신
토론회는 참석자 10~20여명이 현재의 박근혜 게이트를 어떻게 보고 있고 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지를 이야기하면 황 전 교수가 이를 정리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참석자는 남녀가 비슷한 비율이었고 연령은 20~60대까지 다양했다. 팟캐스트를 열심히 듣는 사람도 있었지만 조용히 살고 싶었던 아웃사이더 성향의 사람들도 있었다.
5차례의 꼭대구사 토론회를 보면, 대중들이 탄핵 정국의 두려움을 상당 부분 극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1월 중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서 “어떻게 이 사건을 봐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던지던 대중이 시간이 지날수록 “도대체 이런 일들을 어떻게 막나요?” 또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뭔가요?” 등의 질문으로 이동했다. 자연스럽게 ‘박근혜’ ‘탄핵’ 같은 뉴스 연관 단어들이 ‘사회’ ‘교육’ ‘행복’과 같은 미래지향적인 단어로 바뀌었다.
황상민 박사, 촛불 대중 토론회
촛불집회가 대중 심리 확 바꿔
노예로 살았구나 인식하고
자기 삶 관련 질문 비로소 던져
여야 탄핵 시기 저울질할 때
이미 박근혜 마음속서 탄핵하고
우리 위해 싸워줄 정치인 탐색
국가 개혁 방법론에도 큰 관심
이는 촛불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자신감을 얻은 것도 있겠지만 대중들이 스스로 지혜를 모아가는 토론 과정에서 상황 인식을 넘어서 상황 극복으로 질적 변화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보여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는 단순한 집회 참여에서 얻을 수 없는 집단토론의 성과였다.
실제 참석한 사람 가운데 정당에 가입하거나 탄핵을 촉구하는 문자메시지를 국회의원들에게 보냈다는 사람이 회를 거듭할수록 늘었다. 완벽한 사람 즉 영웅을 뽑으려 하지 말고 선출된 정치인들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지적해야 하겠다는 다짐도 많았다. 포털에 댓글로 감정을 배설하기보다 의원들 페이스북에 직접 댓글을 남기라는 ‘국회의원 사용법’을 공유하기도 했다. 황 전 교수는 “광장의 구경꾼이던 사람들이 토론회를 거치면서 드디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들이 “우리가 지금까지 속은 건가요”라는 질문에 이르는 과정은 쉽지 않아 보였다. 5차례 토론회에서 던졌던 질문에는 대중들의 마음이 숨어 있는데 이를 순차적으로 보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심리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난 노예였다를 깨닫게 된 대중
지난달 19일 열린 1회 서울 모임에서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왔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내 생각은 이렇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몇 명에 불과했다. ‘박근혜’가 아니라 ‘생각’이 사용된 단어 빈도 1위였다. 스스로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집단토론회를 찾아오는 능동적인 대중조차도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날 참가자 중 한 명은 “검찰이나 언론이 차라리 어떻게 하라고 이야기해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은 차츰 변했다. 1주일 뒤인 지난달 25일 대전 모임(꼭대구사 2회)에 모인 대중들은 서울 1회 모임보다 적극적이었다. 검찰 수사 발표와 함께 청와대에서 비아그라 등 각종 약물과 주사약을 구입했다는 보도가 터지면서 대중들이 꼭두각시 박근혜의 민낯을 더 자세히 알게 된 시점이었다. 덕분에 11월26일 5차 촛불 집회에 무려 190만명이 모였다. 지지율도 신뢰구간을 고려하면 사실상 0%라고도 할 수 있는 4%로 처음 떨어졌던 주였다.
이날 대전 모임에선 박 대통령의 상식 밖의 이중생활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박 대통령을 앞세워 권력을 휘두르던 새누리당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들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물론 거짓 해명만 되뇌는 기자 출신 정연국 대변인까지 비판했다.
자신들이 노예와 같은 생각으로 박 대통령에 대한 환상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반성하는 사람도 있었다. 알고 보면 유권자의 종인 정치인을 거꾸로 주인님으로 모시고 노예처럼 살았다는 자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190만개의 촛불이 나온 다음날인 지난달 27일 서울에서 연 3회 모임은 대전과 다소 달랐다. 이미 촛불집회가 5번이나 진행됐고 집회에 여러 번 참석했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참석자들의 심리는 다소 위축돼 있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분노가 제대로 표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분노로 촛불을 들었는데 평화시위에만 방점이 찍혀 보도된다는 점에서 불만을 넘어선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계속 촛불을 들어도 박 대통령이 하야하지 않을 거라는 의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계엄령 이야기도 나왔다.
3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제6차 민중총궐기 대회가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려 시위대가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 참가자는 “150만·200만명이 쏟아져 나와도 소용없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한 20대 여성은 이를 두고 “허락된 범위 안의 분노”라고 말했다. 이어 30대 남성은 “정신 승리만 추구하나”라고 묻고 “평화시위 말고 다른 방법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은 토론회가 끝날 때 다른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구체적인 생각을 하고 있어 든든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토론회를 통해 막연한 불안감이 일부 해소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대중의 이런 마음을 읽었는지 이 주에 박근혜 대통령 쪽이나 ‘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쪽이 모두 전술의 변화를 꾀한 점이다. 먼저 박 대통령은 11월29일 3차 담화를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에서 알아서 결정해달라고 말했다. 담화가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친박계는 탄핵 논의 중단을 요구했다. 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탄핵을 주장하던 비박 의원들도 주춤하더니 결국 1일 새누리당은 당론으로 4월 퇴진을 결정했다.
그러나 3일 촛불집회에서는 역대 최고 기록인 232만명이 모였다. 앞서 탄핵 민심을 흔들려던 새누리당 앞에는 3000명이 모여 새누리당 깃발을 찢는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이날 서울 광화문 시위에서는 처음으로 횃불이 등장했다. 민심을 무시하면 촛불이 횃불이 된다는 준엄한 경고의 메시지를 정치권에 보낸 셈이다. 결국 여야는 9일 탄핵안을 상정하기로 못박았다.
대중은 박근혜를 탄핵한 지 오래
대중의 확고한 탄핵 의지는 6차 집회 하루 전인 2일 부산에서 열린 4회 토론회에서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날 대중의 궁금증은 탄핵 여부에서 벗어나 있었다. 여권 성향의 부산이었지만 그들 역시 박 대통령의 존재를 이미 지운 듯했다. 대신 그 자리에 어떤 정치인이 오느냐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 사람은 박근혜처럼 지배세력과 언론에 의해 조작된 영웅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계파의 이익을 위해 명예퇴진 운운하던 친박들의 정치공학이 왜 헛발질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토론은 적극적이었다. 이른바 잠룡의 이름들이 등장했고 그들의 이미지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박근혜 대통령처럼 보수세력이 얼굴마담으로 세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부산이 고향인 문재인 전 대표는 ‘사이다 발언’은커녕 답답한 말만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반면 문재인 후보를 위협하는 이재명 성남시장이 야전사령관처럼 속시원하게 말하지만 욕설 파문처럼 약점이 있지 않으냐는 구체적인 지적도 나왔다.
6차 집회 다음날인 4일 서울에서 열린 토론회는 부산보다 좀더 나갔다. 더 나은 국가를 위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라는 미래지향적인 발언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기 때문이다. 교육개혁과 정경유착 해소 등 그간 숱하게 들었던 방안은 물론 친일파 청산, 가족관계 같은 언급도 나왔다. 서울에서 열린 1회·2회 토론회와 달리 탄핵 여부와 그 이후에 관한 언급은 많지 않았다. 수십번씩 등장했던 박근혜와 탄핵이라는 단어는 10번 미만으로 나왔다. 2회에서 이 단어들의 빈도는 50회가 넘었다. 대중들의 관심은 이미 박 대통령 탄핵 이후의 대한민국호의 개혁에 더 관심이 쏠려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날 모임에선 어떤 하나의 주제로 정리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개혁 이야기가 나오면서 토론회는 추상적으로 흘렀다. 1~4회 모임에서 느끼던 활력이 사라졌다. 한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이에 대해 황 전 교수는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언론·재벌·교육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 대신 고착적인 틀을 가지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고루한 대의민주주의에서 좀더 발전한 직접민주주의로 갈 수는 있지만 우리나라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가 되기에는 아직 부족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질문만 잘 던져도 제2의 박근혜는 없다
황 전 교수는 6회 광주 토론회부터는 진행 방식은 물론 방송 편집 방향을 바꿀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토론회가 시간순으로 진행되고 편집됐지만 앞으로는 특정 주제에 대한 생각을 묻고 여기서 나온 답변을 1~5회에서 나온 답변과 함께 편집해 보여줄 생각이다.
질문도 현 시국에 대한 생각을 묻는 대신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이슈가 뭐라고 생각하냐”로 바꾼다. 이런 변화는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둔 것이다. 탄핵이 결정되면 대중들의 관심은 새로운 대통령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막연하게 통념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면 또다시 박근혜 대통령 같은 사기극에 당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개인 심리 상담을 할 때도 당신은 노예의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는가를 계속 물어본다. 그걸 깨달아야 삶의 문제를 풀 수 있듯이 정치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나라를 바꿔줄 지도자가 뽑혔으면 좋겠다’ 또는 ‘행복하고 싶다’는 막연한 통념 대신 ‘우리 사회가 바뀌기 위해서 꼭 필요한 정치이슈는 무엇이며 이를 해결해주기 위해 싸울 수 있는 정치인이 누구냐’는 식의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야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광장에서 촛불로 반인반신으로까지 추앙되던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낸 대중들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질문을 던진다면 대중은 더 이상 조작가능한 미지수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헌신할 수 있는 불변의 상수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2016년 촛불혁명은 정치적 혁명뿐 아니라 의식의 혁명을 이룬 해로 기록될지 모른다.
권은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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