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이 15일 오후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제4차 청문회’에 출석해 제출한 2014년 당시 춘천지법원장 사찰 의혹 문건을 김성태 국정조사특별위원장이 이날 저녁 공개하고 있다. 위쪽에 ‘대외비’가 찍혀 있고 문서에 국정원 용지가 복사될 경우 나타나는 보안마크 ‘차’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15일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청와대가 2013년 말~2014년 초 국정원을 동원해 양승태 대법원장의 동정을 사찰한 문건이 공개돼 파장이 일고 있다. 행정부가 사법부 최고 수장의 동태를 감시하는 등 사법부 독립을 정면으로 침해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사법부 감찰은 앞서 공개된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도 여러차례 등장했다. 이날 대법원은 오후 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책임 있는 관련자들이 전후 경위를 명확히 해명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해당 문건은 청문회에 출석한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이 국정조사 특위에 제공했다. 2014년 말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가 당시 확보한 것으로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것이다. 국정원에서 작성됐음을 뜻하는 ‘워터마크’가 보이는 이 문건은 국정원을 통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고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정원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는 “국정원 각국이나 부서에 용지가 배포될 때 특정 부서에 한글로 쓰인 워터마크(보안마크)가 있는 용지가 나가는데 복사할 경우 이 워터마크가 나타나 어느 국에서 유출된 것인지 바로 알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청와대가 자체적으로 생산한 문건엔 파기시한이 명기되지 않는데 이 문건엔 나온다”고 말하며 문건이 국정원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조 전 사장은 “작성 주체는 알 수 없으나, ‘대외비’로 취급되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비서실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작성 시점은 2014년 3월 이전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문건에는 사찰 정황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문건 내용을 보면, ‘대법원, 대법원장의 일과 중 등산 사실 외부 유출에 곤혹’ 제목으로 “최근 문화일보가 ‘등산 마니아인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 후 매주 금요일 오후 일과시간 중 등산을 떠난다’는 비판 보도를 준비하자, 대법원이 ‘직원들과의 소통 차원이며 일과 종료 후 출발하고 있다’고 해명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내일신문이 앞서 비슷한 보도를 취재하다가 기사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중단한 전례가 있다는 내용이 담기는 등 언론의 내부 사정도 상세히 담겨있다.
또 최성준 당시 춘천지법원장에 대해 ‘법조계, 춘천지법원장의 대법관 진출 과잉 의욕 비난 여론’ 제목으로 “관용차 사적 사용 등 부적절한 처신에다 대법관 후보 추천을 앞두고 언론 등에 대놓고 지원을 요청해 눈총”, “탈락 후에도 양 대법원장이 9월 대법관 인선시 자신을 재차 배제하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어 눈총”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양 대법원장이 등산마니아인 점을 감안해 강원지역 산행 일정을 도맡아 챙긴다는 내용도 나온다.
최 법원장은 2014년 2월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전보됐다가, 다음달인 3월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됐다. 당시 법조계 인사가 방송통신 관련 규제기구의 수장을 맡은 데 대해 의구심이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대해 최 위원장은 “왜 이런 내용이 나왔는지 모르겠고, 문건 내용이 사실과 다르고 일부는 오해에서 비롯되어진 것으로 판단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영한 전 수석의 업무일지에도 ‘사법부 길들이기’에 나선 청와대의 의심스런 행동이 여럿 등장한다. 2014년 새 대법관 후보 추천을 앞두고는 검찰 출신 대법관 후보 심기에 나선다. “결국 사람이 문제 이번 기회 놓치면 검찰 몫은 향후 구득 난망” “추천위를 통해서 추진” “법무부 짠 대로 진행되는 인상” 이라는 메모가 등장하며, 검찰 출신 후보자들의 의사를 타진하고 검증한 내용도 나온다. 결국 새 대법관 후보로 검찰 출신인 박상옥 당시 형사정책연구원장이 뽑혔다. 2014년 9월6일 기록을 보면 “법원 지나치게 강대, 공룡화... 견제수단 생길 때마다 다 찾아서 길을 들이도록(상고법원, or) 다 찾아서” 등의 내용도 들어있다.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개별 판사들을 통제하려 한 정황도 있다. 새만금 방조제 인근 어선 전복 사건에서 해경의 업무상 과실치사 기소를 기각하며 ‘세월호 참사 축소판’이라고 거론한 이아무개 부장판사,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 관련해 글을 올린 김동진 부장판사 등의 이름이 수첩에 적혀있다. ♣?H6s최현준 최원형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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