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요계는 힙합이 대세였습니다. 각종 음원차트 순위에서 힙합은 작년에 이어 약진했습니다. 힙합은 이제 청년층은 물론 중장년층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90을 바라보는 국민 엠시(MC) 송해 선생도 힙합을 할 정도입니다. 이런 힙합이 광장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가리온, 제리케이, 디템포, 디지 같은 가수들이 랩으로 민주주의를 외칩니다. 뒷골목 음악으로 불리던 힙합이 어떻게 광장에서 스왜그(‘멋지다’는 뜻의 힙합 은어) 넘치게 민주주의를 외치게 됐을까요?
‘힙합의 큰형님’으로 불리는 가리온. <한겨레> 자료사진
“헌법 1조 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Nope! 그건 민주주의일 때 얘기고 실은/ 성스러운 우주의 기운이 깃든 샤먼”(디템포의 ‘우주의 기운’)
“첨엔 이 모든 게 농담 농담 농담인 줄만 알았지/ 설마 설마 설마 설마가 사람 잡았어 uh/ 승마하는 척 나라를 말아먹었어 uh”(제리케이 ‘HA-YA-HEY’)
‘게토의 음악’으로 불리는 힙합이 광장에 울려 퍼지고 있다. 10월말부터 매주 토요일 열리는 촛불집회에서 힙합 가수들이 랩을 속사포처럼 쏘아대고 있다. 원시적인 멜로디와 힘있는 내용으로 최근 대세로 떠오른 힙합이 100만명 이상이 운집한 촛불집회가 열리는 광장에서 울려퍼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민주화 구호로 가득 찬 광장엔 ‘아침이슬’이나 ‘상록수’가 어울렸다. 심지어 1990년대만 해도 대중가요가 광장에서 일절 금지됐던 엄숙주의가 대세였던 때도 있었다. 광장과 하위문화로 취급되던 힙합은 어쩌면 가장 낯선 조합의 하나다. 그랬던 광장에 이처럼 힙합이 울려 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디템포의 ‘새타령-닭전’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유튜브 갈무리
흑인음악 힙합이 광장에 퍼진 까닭
광장에서 노래를 부른 힙합 가수는 다양했다. 제리케이, 디템포, 아날로그 소년, 디지 등 많은 젊은 래퍼들이 촛불집회에서 그들의 음악을 들려줬다(힙합은 장르적 범주로, 랩은 보컬의 기술적인 범주로 보면 된다). 특히 몇몇 래퍼는 이미 세월호 추모집회 등 다양한 행사에 참여해왔고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가 강한 음악을 추구해왔다.
젊은 래퍼의 노래만 광장에 나온 건 아니다. 공전의 힙합 히트곡인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를 개사한 ‘하야가’도 자주 불린 랩의 하나였다. ‘힙합계 큰형님’으로 불리는 가리온,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사회비판 랩을 선보인 조피디(PD) 등처럼 쟁쟁한 가수들도 동참했다. 일부 가사 때문에 논란이 됐지만 랩댄스뮤직으로 1994년부터 꾸준히 활동해온 디제이디오시(DJ DOC)도 힘을 보탰다. 2016년 광장은 1990년대 한국의 초기 힙합 멤버부터 최근 젊은 래퍼들이 대거 참여한 무대였다. 한국 힙합음악의 역사가 100만명도 넘게 모인 광장에서 펼쳐진 셈이다.
힙합은 원래 넓은 광장보다 뒷골목이 익숙한 흑인 음악이다. 힙합은 1990년 국내에 소개될 때부터 ‘불량한 음악’쯤으로 폄하돼왔다. 그런 힙합이 올해 광장으로 나온 이유는 두 가지 측면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대중음악으로서 힙합이 가지는 위상의 변화다. 껄렁한 청년문화쯤으로 삐딱하게만 보던 힙합이 당당한 주류 문화로 인정됐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변화는 1990년대 초부터 힙합 음악을 한국의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한 많은 선도적인 가수들 덕분이다.
또다른 이유는 분노한 마음으로 광장에 쏟아져 나오는 10~20대들을 위한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촛불집회 주최측)의 배려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등으로 많은 청소년들이 “이게 나라냐”를 외치며 촛불집회에 합류해왔다. 중학생마저도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1960년 4·19 이후 처음 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옥 같은 대학입시를 치르고 헬조선을 경험 중인 청년층도 광장에 대거 합류하고 있다.
이런 젊은층의 집회 몰입도를 높이기에 가장 좋은 음악의 하나가 힙합이다. 과거와 달리 올해 광장에 나온 청년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를 알리는 한 계기가 됐던 이화여대 학생들은 학교에서 시위를 하면서 민중가요 대신 걸그룹 소녀시대의 노래인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기도 했다.
청년층이 선호하는 노래는 아이돌의 노래를 제외하면 힙합이 대부분이다. 대중음악 음원의 순위를 매기는 가온차트(디지털)를 보면, 올해 상반기 집계 인기순위 1위부터 10위까지 노래 가운데 4곡이 힙합 계열이다. 2015년에는 10곡 가운데는 5곡이 힙합 계열이었다. 국민행동 연출팀 관계자는 “청소년들이 많이 참여해 이들의 새로운 에너지를 위해 힙합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대세라고 불리는 힙합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11월12일 촛불집회에 선 조피디. <한겨레> 자료사진
노래가 아니라 문화가 되다
힙합은 ‘엉덩이를 들썩이다’라는 뜻이다. 힙합은 1970년 미국 뉴욕 맨해튼의 빈민가에서 시작됐다. 힙합의 역사는 미국 흑인들이 처한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노예에서 해방됐다지만 흑인에게는 여전히 차별이 존재했다. 백인이 뛰면 운동하는 것으로 보지만 흑인이 뛰면 범죄 후 도피 중으로 보기 때문에 흑인은 뛰면 안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실제로 공권력은 흑인들에게 묻지마 식의 폭력을 휘둘러왔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편견 속에서 흑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범죄와 농구·권투 같은 운동밖에 없었다. 범죄에 노출될 수밖에 없던 흑인 남성들의 평균수명은 1970년대 30대에 불과했다.
힙합은 이런 흑인들에게 도피처 구실을 했다. 아프리카 민속음악에서 시작한 노동요가 블루스와 즉흥적인 재즈를 거쳐 힙합으로 이어졌다. 힙합은 블루스, 재즈, 펑키 등이 혼합된 리듬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 말하는 랩이라는 보컬 방식으로 주로 표현됐다. 이는 연주와 음악성이 중요시되던 팝음악과는 뚜렷한 차이다. 그만큼 문턱이 낮아 누구든 음악을 할 수 있었다.
랩의 내용은 인종차별 이야기나 가난한 삶에서 오는 사회적 박탈감이 주를 이뤘다. 사회적이라기보다 개인적이었다. 자기 자랑과 성공에 대한 생각도 많았다. 힙합은 한마디로 자신들이 처한 암울한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을 친구들과 함께 놀면서 해소하는 욕구였다. 이런 욕구는 그들의 껄렁한 모자와 문신(패션), 특유의 탄력을 과시하는 춤(비보잉), 건물 벽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휘갈긴 낙서(그라피티)로 확장되면서 새로운 문화 코드로까지 발전했다.
힙합, 촛불집회 단골손님 등극
서태지부터 최신곡까지 다양해
넘치는 에너지에 명쾌한 가사로
청년층뿐 아니라 전세대 아울러
70년대 생겨 국내엔 90년대 초 첫선
최근 오디션 프로로 급격한 대중화
이야기 중심의 장르적 특성으로
억눌린 대중에게 사이다 같은 쾌감
25년 만에 대세의 자리에
음악은 물론 예술 자체를 폄하하던 엄숙사회, 한국에서 흑인음악인 힙합을 처음 노래한 가수는 누굴까? 전문가들은 1989년 홍서범의 ‘김삿갓’을 첫 작품으로 꼽는다. 비트에 맞춰 멜로디가 아니라 메시지를 밀고 나가는 점에서 랩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음악성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0년 나미의 ‘인디언 인형처럼’과 신해철의 ‘안녕’ 같은 랩 요소가 가미된 작품성이 높은 노래가 나왔다. 하지만 흑인 하층민의 정서가 반영된 전통적인 랩이라기보다는 랩을 가미한 댄스뮤직에 가까웠다.
댄스뮤직에 랩은 거드는 수준이던 한국 힙합음악에 혁명을 가져온 것은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다. 서태지는 ‘랩을 할 줄 아는 최초의 한국인’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랩이 낯선 한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전까지 한국인은 영어로 된 랩을 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그는 힙합과 거리가 먼 록밴드 ‘시나위’에서 베이스를 치던 로커였다.
서태지의 음악적 도전은 멋지게 성공했고 발라드 음악 중심이던 한국 가요의 지형을 완전히 바꾸었다. 그의 도전은 한국 가요의 역사를 서태지 이전과 이후로 나눌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힙합은 서태지 덕분에 한국 젊은이들에게 빠르게 퍼져나갔다.
1990년대 중반에 서태지 효과에 이어 미국 동포 출신 래퍼들이 국내에 대거 들어오면서 힙합은 양적 성장도 이루게 된다. 특히 힙합은 대학생들의 인기를 끌었는데 컴퓨터 통신 동호회를 중심으로 힙합 활동이 활발했다. 2000년 초 조피디, 지누션, 드렁큰타이거같이 동포나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가수들의 활동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후 주춤하던 힙합은 2012년 엠넷(Mnet)의 <쇼미더머니>라는 힙합 오디션 방송을 통해 일반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시즌5까지 마친 이 방송을 계기로 비와이 같은 많은 스타들이 탄생했다. 이를 계기로 힙합은 청소년은 물론 여성과 중장년층의 관심을 끌게 됐다. 이런 인기 때문에 구순을 바라보는 국내 최고령 사회자인 송해씨마저 랩을 부르며 광고를 찍기도 했다.
제리케이의 ‘하야해’(HA-YA-HEY) 뮤직비디오. 유튜브 갈무리
힙합 인기 비결은 ‘이야기’
그렇다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대세가 된 힙합의 힘은 무엇일까? 고교생 시절부터 홍익대 인근 놀이터에 가서 하루 종일 또래 래퍼들과 랩배틀을 벌이며 래퍼를 꿈꾸던 가수 디템포는 “힙합의 힘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멜로디와 화음 위주인 팝과 달리 힙합은 힘있고 빠른 비트에 맞춰 다른 장르와 달리 자세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자신이 원하는 장르의 음악을 자유자재로 붙일 수 있는 개방성도 장점이다. 클래식이면 클래식, 트로트면 트로트와도 랩은 잘 어울린다. 서태지의 ‘하여가’에 국악 악기인 태평소가 등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중고교 청소년들도 힙합을 통해 자기의 이야기를 음악적으로 강렬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느낀다는 것이다. 디템포도 “고등학교 때 홍대에 가서 또래 선후배들과 프리스타일 랩(즉흥적인 랩)을 하루 종일 노래한 건 뭔가 반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랩을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어서였다”고 말했다.
물론 힙합은 개인의 이야기뿐 아니라 강렬한 메시지 전달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디템포는 사회비판적인 랩으로 일찌감치 주목받아왔다. 2015년 국악적 리듬감에 풍자가 제대로인 ‘새타령-닭전’을 발표했다. 이 노래는 박근혜 대통령을 닭에 빗대 풍자하는 내용이다. 1년 전 마치 최순실 사태를 예언하는 듯한 곡을 써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 곡에서 “귀여운 아가새들이 우물에 꼬꾸라져도/ 바쁜 벌꿀은 슬퍼도 안하대네?/ 닭은 일곱시간 동안 슬퍼했나 보드라고”라고 세월호 사건 당일 7시간 동안 사라졌던 대통령을 비판했다(www.youtube.com/watch?v=vj_mEaRez-E).
제리케이도 강력한 랩으로 사회를 비판해왔다. 그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한참 전, 정권 초인 2013년 8월 노래로 시국선언을 했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에 대해 할 말을 해버린 것이다. “선언함/ 나 제리케이는 썩어 빠진 권력 집단이/ 성역화된 어떤 정보기관을 점령하고/ 자신들의 말에 반대해온 국민들의 절반을/ 반체제 또는 빨갱이에 놀아난 꼭두각시로 봤단 사실에 분노할 것임”. 1분20초 짧은 곡이지만 힘이 가득하다(www.youtube.com/watch?v=E6XNULDcgX8). 그는 당시 페이스북 등을 통해 “이런저런 걱정 탓에 하고 싶은 말을 제때 못하면 그게 무슨 힙합이냐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광장이 아니라 언론매체와 새로운 시도를 했던 래퍼도 있었다. 지난해 아날로그 소년과 가리온 멤버인 엠시메타는 <뉴스타파>와 랩으로 사회를 비판하는 ‘설파’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였다. 랩과 뉴스를 결합시킨 새로운 시도였는데 대단한 흡인력을 보여줬다. 대학 졸업 뒤 등록금 융자를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는 아날로그 소년은 ‘빚내는 청춘’이란 작품으로 청년실업을 속 시원하게 비판했다(www.youtube.com/watch?v=TM-hxZEhzr8). 또 쉰을 바라보는 힙합 1세대 엠시메타(가리온의 멤버)는 ‘쇼 미 더 힙합’이라는 곡으로 ‘저항정신 사라진 요즘 힙합의 가벼움’을 꼬집기도 했다(www.youtube.com/watch?v=RVP_UN-Zrj8).
디템포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유튜브 시청자들에게 사연을 받고 이들이 보내준 사연을 랩으로 풀어가는 ‘번개탄 한 장’이란 곡을 발표했다. 즉석에서 빠르게 하는 랩을 ‘번개랩’이라고 하는데 이를 번개탄이란 이름으로 재치있게 바꿨다. 청년들의 삶의 애환을 담은 사연을 디템포가 랩으로 던지고 나서 그 해법을 랩으로 풀어가는 방식이다(www.youtube.com/watch?v=EFaYFQvnSfA). 랩 심리상담소라고나 할까? 이런 시도는 힙합이 자신의 이야기는 물론 사람의 이야기까지 풀어주는 공감 혹은 치유의 장으로까지도 확장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힙합은 흑인음악 장르를 나타내는 고유명사로 시작했지만 ‘자유와 저항’을 뜻하는 추상명사처럼 쓰여왔다. 하지만 2016년 한국에서 힙합은 세계 시민운동사에서 유례가 없는 광장의 에너지를 통해 아마 기존의 추상명사와 또다른 의미망을 쌓고 있다. 권은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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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의 넘치는 에너지와 광장의 에너지가 만나면서 새로운 시너지를 낳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