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세계의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린 박근혜 대통령을 청와대 옆 작은 미술관에 긴급히 모셨습니다.”
청와대로 향하는 집회 행진 코스 인근인 서울 종로구 창성동에 있는 한 갤러리 담벼락엔 수의를 입은 박 대통령 인형이 붙어있다. 인형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양한모의 캐리돌 풍자전’ <박ㄹ혜뎐>이라고 새겨진 현수막이 촛불 시민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갤러리 입구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수의를 입은 박근혜 대통령 캐리돌(캐리커처와 인형의 합성어)이 표정 없는 얼굴로 관객을 맞는다. 50㎡ 남짓한 작은 공간엔 박 대통령이 취임한 2013년부터 한국사회를 휩쓸었던 이슈 속 인물들이 차례로 전시돼있다. 국정농단의 주범 최순실씨를 비롯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 황교안 국무총리 등이다. 이들을 한 자리에 모은 이는 캐리돌 만평가, 양한모 화백이다. 그는 박 대통령 취임 해인 2013년부터 매주 굵직한 이슈를 선정해 박 대통령 관련 캐리돌을 만들었다. 양 화백은 “당시 대선 결과로 실망이 컸는데, 박근혜 정부의 제대로 된 감시자 역할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캐리돌 만평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시사주간지 <시사인>에도 ‘양한모의 캐리돌 만평’을 연재하고 있다.
‘양한모의 캐리돌 풍자전’ <박ㄹ혜뎐>을 기획한 양한모 화백이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양 화백은 원래 국민의 치친 마음을 위로하는 가수 100명을 캐리돌로 만들어 ‘가수 100인전, 노래가 위로다’라는 주제로 전시를 열 계획이었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계획을 접었다. 그는 “박 대통령 취임 이후 나쁜 사람들 얼굴을 만들고 쓰다듬느라 마음이 피폐해졌다”며 “국민과 스스로에게 위로할 방법을 찾다 위로 곡을 불러주는 가수를 만들어 전시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농락당했다”며 웃었다.
양 화백의 캐리돌엔 제목이 따로 없다. 캐리돌 자체로 박근혜 시대를 표현했다. ‘웃픈’ 현실은 관람객들 반응에서 나온다. 한 관람객은 캐리돌 앞에서 “소녀상”, “윤창중”, “메르스”라는 단어를 짧게 내뱉었고, 곧바로 한숨을 내쉬었다. 양 화백을 한숨짓게 하는 작품은 뭘까. 개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여러 작품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세월호를 꼽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 모습을 풍자한 캐리돌. 양한모 화백은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지지율 끌어올려 보려는 움직임만 있었지, 박 대통령이 유족들 마음에서 국민을 살려야 한다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여줬는지 모르겠다”고 성토했다.
양 화백은 “정부는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도 못 했으면서 진상규명 의지도 없었다. 이후엔 세월호 참사 당시 딴짓한 시간도 감추려드니, 화가 날 수밖에 없다”며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지지율 끌어올려 보려는 움직임만 있었지, 박 대통령이 유족들 마음에서 국민을 살려야 한다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여줬는지 모르겠다”고 성토했다. 캐리돌을 직접 볼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창성동 갤러리 자인제노에서 열린다. 27일엔 양 화백이 직접 작품을 설명하고 관람객과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시간도 마련한다. 관람료는 무료다. 문의는 02)737-5751. 글·사진/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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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양한모의 캐리돌 풍자전’ <박ㄹ혜뎐>에 전시된 캐리돌 작품 일부다. <한겨레>는 양 화백의 동의를 구하고 사진을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