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2017 광장의 노래] 2부 우리안의 박정희들-아파트 새마을운동
요즘 청년들에게 내집 마련은 말 그대로 꿈이다. 한 30대 직장인이 서울 서초구 반포지구 아파트 단지를 서성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980년대 아파트 개발이 한창인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 자료사진
평범한 직장인 부인이었던 그녀
박정희가 일궈놓은 ‘환상’속에
전두환때부터 대출받아 거래 시작
30여년간 24번 매매·11개 소유
“규제-완화 반복해도 손해 안봐
전셋값 오르면 그 돈 또 투자” ‘재테크의 후손’ 34살 조카
연봉 3600만원 받는 직장인
빌라 1채외 8평 오피스텔 소유
월세로 이자내고 30만원 남겨
촛불 들지만 현실은 집값 걱정
“발아래 작은 개미들 딛고 올라
밑으로 떨어지고 싶지 않다” “고개 숙이는 아파트값. 아파트값이 내리고 있다. 4·18 부동산 종합대책 등에 영향을 받아 치솟던 아파트값의 오름세가 꺾이고 전 지역에서 내림세로 돌아섰다. 그동안의 상승폭이 워낙 크고 급격했기 때문에 부동산 관계자들은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제값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매일경제> 1983년 4월22일치) 당시 한국인의 주거 트렌드는 꼬마 아파트에서 넓이 25평, 높이 12층 이상의 고층, 도시가스로 전환돼 갔다. 잠실 주공4단지에 살던 ㄱ씨는 1983년쯤 잠실 5단지(1978년 건축, 재건축 추진 중이며 34평 아파트 현재 시세 13억5000만~13억7000만원) 전셋집으로 이사를 갔다. 남편 회사 선배 두 사람이 살던 15층 고층 아파트였다. 연탄을 갈아 넣지 않아도 되는 보일러 아파트였다. 잠실 주공5단지는 민간업체들이 당시 건축하던 12층 고층에서 3층을 더 높이 올린 획기적인 아파트였다. 34, 46평 두개 평형밖에 없는, 중산층의 로망이었다. ㄱ씨는 2년 전세 계약으로 살면서도 매일 장을 보고 오는 길에 부동산에 들렀다. 한동안 잠잠하던 집값은 하루에 100만원씩 올랐다. 전세 살다가 나중에 집값이 오르면 연탄 아파트로 쫓겨 가는 것 아닐까. 불안했다. 국내 경제 호황과 대통령 선거, 올림픽 특수 등의 국가적 이슈와 맞물려 부동산시장은 날뛰기 시작한다. ㄱ씨는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전세로 살고 있는 집을 사겠다고 했다. 있는 돈을 탈탈 털어 융자를 내도 등기비가 모자랐다. 집주인(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살던 집주인을 고아무개 박사로 기억한다)이 등기는 나중에 돈 생기면 하고, 전세가와 매매가의 차액만 치르면 매매를 하겠다고 했다. 집값은 치솟고, 나중에 사지 못할 것 같아서 주인 말대로 했다. 그리고 1년 뒤 등기를 쳤다. ㄱ씨는 그 집을 1986년, 3500만원에 팔았다고 기억한다. 국가는 규제 정책을 고수했지만, 당시 전두환 대통령 부인 이순자씨는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렸다. 청와대 입성 전 이씨는 강남의 ‘빨간 바지’로 불렸다. 부동산 중개소에 나타날 때면 빨간 바지를 입고 다닌다는 전설이었다. 대통령 부인 시절에는 비자금을 관리하던 청와대 김아무개 비서관에게 맡겨 재산을 증식했다고 2004년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수사 당시 실토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말까지 15년간 우리나라 아파트 건설 업자는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를 했다. 분양 계약서를 담보로 막대한 자금을 융자받을 수 있었다. 아파트 골조 공사가 시작되면 다달이 분양대금이 들어왔고, 입주가 시작되면 잔금이 들어왔다. 은행 돈을 마구 빌렸다. 그렇게 빌린 돈으로 땅을 사고 또 아파트를 지었다. ㄱ씨는 86년 잠실 5단지 아파트를 팔고 같은 아파트 다른 동 2년 전세로 들어갔다. 집값은 또 뛰어올랐다. 이러다 거지 신세가 되겠다 싶었다고 한다. 만기도 되지 않았는데 87년쯤 신천동 장미아파트 28평을 2800만원에 샀다. 마침 1990년 부모님에게서 유산 4300만원을 받았다. ㄱ씨가 90년대 초반쯤 장미아파트를 팔았을 때 차액이 1억원이 넘었다. 그해 신천동 장미아파트 39평을 2억2000만원에 샀다. 마흔세살쯤이었다. 그리고 2000년 4억2000만원에 팔았다. 남편 퇴직을 앞두고 2000년 청담동 현대아파트 27평을 7500만원에 샀다. 매매 2억2500만원인데, 전세 1억500만원을 안았다. 퇴직을 앞두고 공기 좋은 경기도 용인에 내려가기 전 강남에 하나 남겨놓아야겠다 싶었다. 당시 청담동 시세가 의외로 쌌다. 압구정동만 시세가 나갔다. 청담동 아파트의 현재 시세는 8억, 전세는 5억3000만원이다. 퇴직 후 용인에 56평 아파트를 3억500만원에 샀다. 지금은 5억이 안 된다. ㄱ씨가 30여년간 24번의 거래로 재산을 굴려 11개의 부동산을 만드는 동안 정권은 수차례 바뀌었다. 규제와 완화 정책이 반복됐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번복해도 ㄱ씨는 손해 보지 않는 법을 알았다. 늘 부동산 경기에 민감했고, 팔아야 할 때와 사야 할 때, 팔아야 할 지역과 사야 할 지역을 알았다. “너 왜 그 동네에서 이사 안 가니? 좋은 동네로 이사해야 한다.” ㄱ씨는 조카를 만날 때면 조언을 한다. 현실적인 조언이다. 좋은 동네에 살아야 집값이 떨어지지 않고, 오를 때도 대폭 오른다. ㄱ씨와 조카는 정치적 성향이 전혀 다르다. 조카인 그는 서른네살, 연봉은 3600만원이다. 그는 매주 토요일 촛불 광장에 나간다. 집회가 끝나면 문을 열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다. 그에게는 대출을 받아 산 다세대주택 외에 오피스텔이 하나 더 있다. 1년6개월 전 대출을 받아 산 8평 오피스텔이다. 살인적인 등록금을 내는 대학생과 늘어나는 비정규직과 계층 이동 사다리가 끊어진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세를 준 방의 월세가 떨어질까봐 걱정이 된다. 그가 세놓은 방에는 이제껏 세 명의 세입자가 살았다. 첫번째 세입자, 두번째 세입자 모두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세번째 세입자 이름은 정아무개다. 휴대전화에는 세입자 정아무개로 저장돼 있다. 첫번째 세입자는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45만원, 두번째는 2000만원에 60만원, 세번째는 2000만원에 65만원에 계약했다는 것은 기억한다. 세입자들이 회사를 옮겨서, 좁고 답답하다는 이유로 몇 개월 만에 방을 비웠고 바뀔 때마다 월세가 올라갔다. 2억원 오피스텔은 대부분 빚을 내서 구입했고 실투자금은 4000만원이다. 세입자는 월급에서 65만원을 그에게 주고, 그는 65만원에서 33만원을 은행에 냈다. 그는 중산층이 되기 위해 아파트 한 채를 사는 꿈을 갖고 있다. 언젠가 집값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린다. 투기를 못 잡는 국가는 한심한 정부다. 아파트 한 채가 너무 비싼 이유는 한 사람이 여러 채를 갖고 있어서다. 하지만 앞으로도 정부는 투기를 잡지 못할 것이다. 그는 발아래 사는 작은 개미들을 딛고 위로 기어올라가기로 했다. 아파트 한 채를 사는 준비 과정의 일환으로 실제 거주하지도 않을 방 한 개를 더 매입해서 세를 놓았다. 세를 놓고 보니 염려는 두 배가 됐다. 집값은 떨어지고 월세는 오르기를 기다린다. 기어오르려다 자꾸 헛발을 디뎠고 미끄러질수록 발아래 개미 떼들에게로 떨어지고 싶지 않다. 개미 떼들 무리는 더욱 격렬하게 발버둥 친다. 그는 지금 이 개미 떼들에게 빨대를 꽂고 있지만 자칫하다간 자신이 빨대를 꽂히게 될지도 모른다. 주거 공간이 투전판으로 변해버린 헬조선의 풍경이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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