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the)친절한 기자들]
저출산 범부처 대응서 “지자체 지원” 담당한 행자부
‘○○지도’ 만든 것 처음 아냐… 비판 쏟아지자 당혹
지자체 책임·경쟁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 기조의 일환
행자부 차관 “여자 아이디어였는데” 발언해 논란
저출산 범부처 대응서 “지자체 지원” 담당한 행자부
‘○○지도’ 만든 것 처음 아냐… 비판 쏟아지자 당혹
지자체 책임·경쟁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 기조의 일환
행자부 차관 “여자 아이디어였는데” 발언해 논란
가임기 여성의 수를 지역별로 써넣은 ‘출산지도’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습니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정국에도 묻히지 않은 얼마 안 되는 뉴스였습니다. 그만큼 국민들이 느끼는 모욕감은 컸습니다. 그런데, 이런 지도를 만들면서 아무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을까요? 왜 지방자치단체를 관리하는 행정자치부가 저출산 대책을 세웠던 걸까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시작은 지난해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 2016년 여름,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줄었다
“전남의 우수한 출산장려 시책들이 각 시·도로 확산되도록 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6월20일 관계부처 장관들에게 당부했습니다. ‘2016 정부3.0 국민체험마당’에 꾸려진 지자체 17개 시·도관 가운데 유일하게 ‘전남관’을 방문해섭니다. 전남의 1호 공공산후조리원에 입실한 아기에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기를 기원합니다”라는 출생 축하 메시지까지 직접 써줬습니다.
대통령의 바람이 무색하게, 아이 울음소리는 줄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지자체를 독려한 지 사흘 뒤, 월별 출생아 수가 통계 집계 이래 최저치라는 언론 보도가 쏟아집니다. (▶관련기사보기 : 신생아 수 ‘역대 최저’…성장동력 꺼져간다) 출생아수가 월 3만5300명으로 최저 기록을 경신했고, 누적 출생아수를 봐도 2000년 이래로 가장 적었습니다. (통계청 ‘4월 인구동향’, 6월23일 발표) 그리고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다음달 또 최저치를 경신했기 때문입니다(5월 3만4400명).
8월이 되자 통계청은 1~6월 상반기 통계를 발표했는데, 이대로라면 2016년은 역대 최저 출산율을 기록한 해가 될 것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주도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년)’ 원년인데, 첫 해부터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 판이었습니다. 무상보육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제3차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젊은이들 가슴에 사랑이 없어졌다”고 저출산 문제에 힘을 주어 온 대통령으로서도 무색할 일이었습니다.
■ “지자체가 소극적이어서” 중앙정부 책임은 어디로
왜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일까? 정부는 시·도 지자체에 책임을 물었습니다. 지난해 8월25일, ‘출산율 회복을 위한 보완대책’ 국가정책조정회의가 열렸습니다. ‘출생아 2만+a 대책’이라고 불린 이 회의는 “현장에서 제대로 실천이 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을 만들라”는 ‘VIP 지시사항’으로 시작합니다. 기존 정책의 문제점은 “(한계) 저출산 극복을 위해서는 국민과 현장에서 만나는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나, 적극적 참여 유도를 위한 인센티브 미흡”이라고 지적합니다. 즉, 시·도 차원 저출산 대책을 잘 세우고 있는지 평가하겠다는 겁니다. 보건복지부도, 고용노동부도, 여성부도 아닌 행정자치부가 ‘출산 지도’의 주역으로 나선 계기였습니다.
가임기 여성 수 등 통계를 지역별로 줄 세운 지도는, 지자체들간의 “자율 경쟁”을 장려한다는 명목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지자체에게 ‘얼마나 애를 많이 낳았는가’ 경쟁을 시키고, 잘 하는 지자체에게만 돈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중앙정부가 걷는 세금이 지자체가 걷는 세금보다 많기 때문에 중앙정부는 지방에 교부금을 나눠줍니다. 이 교부금을 배분할 때 ‘저출산 지표’를 바탕으로 나눠주겠다는 것이 출산지도 프로젝트의 장기 목표입니다.
정부는 출산율 1위를 기록한 해남을 우수 사례로 꼽으며 △출산양육비 지원 △임산부 초음파 및 기형아 검진비 지원 △공공산후조리원 운영 △신생아 이름 무료로 지어주기 △아이 탄생 지역신문 게재 △땅끝 솔로 탈출 여행 등의 자체 정책을 2008년부터 펼쳐 효과를 봤다고 평가했습니다. 물론 지자체의 다양한 출산 지원 정책들을 격려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공공산후조리원 운영이나 기형아 검진 지원은 지방정부가 아닌 국가 차원에서 펼쳐야 하는 정책이 아닐까요? 또 지자체가 주는 출산 축하금을 받기 위해 아이를 낳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요? 농어촌 지역이 아닌 도시에서 맞벌이 가정이 아이를 낳지 않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중앙정부가 나서서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기업들을 다그쳐도 될까 말까 한 일을, 지자체의 ‘자율 경쟁’에 맡기겠다는 계획이 과연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입니다.
■ ‘○○지도’ 지자체에 책임 돌리고, 정부는 예산 쥐고
박근혜 정부가 지자체에 “선의의 경쟁”을 시키겠다며 지도를 만든 사례는 앞서 있습니다. 바로 ‘규제지도’입니다.
“쓸데없는 규제는 아주 우리의 원수, 암 덩어리”라고 2014년 3월 박 대통령은 부르짖었습니다. (▶관련기사 보기 : [마감後] 규제는 ‘암덩어리'가 아니다 ) 그러면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것이 바로 ‘전국 규제지도’입니다. “중앙정부보다는 지자체에 규제가 많으니 조사해 달라” “기업의 투자지역 선정에 도움을 주고, 기업환경 개선을 위한 지자체간 선의의 경쟁을 촉진할 것을 기대한다.”
대한상의가 10월 공개한 이 지도는, 공장이 들어설 지역에 경사가 심하거나 위험한 지반이면 짓지 못하게 하는 입지조건 규제를 지자체가 완화해 주면 “친화적”이라며 빨갛게 칠하고, 반대로 건폐율이나 용적률을 강화하라고 요구하거나 사업계획을 보완하라고 반려하면 “비친화적”이라며 파랗게 색칠한 지도였습니다. 행정자치부는 이 지도를 바탕으로 지자체에 예산을 배정할 계획을 밝혀, “기업의 민원을 들으려고 만들었느냐”는 비판을 샀습니다.
이 ‘지도’는 “데이터를 가공해 창조경제에 기여한다”는, 박근혜 정부표 ‘정부3.0’의 취지에 딱 들어맞았습니다. 규제에 대한 책임을 지자체로 돌리는 데도 효과적이었습니다.
심지어 ‘출산 지도’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가임기 여성인구’ 통계 역시, 8월 대책회의에서 이미 정부가 관리하라고 지시한 지표였습니다. “인구 동향 조사의 혼인·출산 지표 6종 생산·관리”라는 대목을 통해 해당 지표를 “관리”하라는 임무를 관료들에게 제시해준 것입니다. 행자부로서는, 이미 청와대에서 한 차례 호평을 받은 지도 시스템을 저출산 대책에 맞춰 생산한 셈입니다.
■ ‘출산율’ 숫자 올리기에만 몰두한 관료들
행자부가 만든 ‘출산지도’가 관료주의와 전시행정의 결과물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출산지도가 탄생한 배경으로 “6월 (이대로라면) 올해 출산율이 낮을 것이라는 발표가 난 뒤, 국회 뿐 아니라 정부 부처들도 TF를 꾸렸다. 그 과정에서 행자부는 지자체와의 접점을 찾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사업 시책으로 교부세, 특교세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가 행자부의 몫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관료로서는, 예산을 지원할 때 지자체별로 얼마나 출산 장려책이 적합했는지 따지는 정성평가보다는, 기존 통계를 활용해 순위를 손쉽게 매기겠다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한 학계 인사는 “행자부가 윗선 눈치를 보며 요식행위로 일감을 떠맡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8월에 정부 종합대책이 꾸려졌다. 그 과정에서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외에도 여러 부처들이 대책을 내놓았는데, 고용노동부가 남성 육아휴직 장려 같은 일을 한다면, 행자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뭐였겠나. 그래서 ‘출산지도’ 웹서비스 같은 일이 생긴 것 아니냐”고 지적했습니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숫자 관리와 성과를 요구하는 청와대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과시용 포털’이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준행 인디스트릿 개발자는 “민간의 정보를 수집해 모은 ‘과시용 포털’을 만든 것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박근혜 정부 들어 생긴 사이트 만들기 ‘유행’을 꼬집은 바 있습니다.
■ 질타 쏟아진 전문가 간담회
지난해 12월29일 ‘출산지도’ 공개로 격렬한 항의를 받은 행자부는 출산지도를 비공개로 돌리고, 1월5일 각 분야 전문가들을 불러 내부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당시 간담회에선 이런 질타가 쏟아졌다고 합니다.
간담회에 참석한 행자부 실무진은 가임기 여성 인구수를 지도에 포함시킨 경위에 대해 “어떤 지역의 합계출산율이 올랐다고 해도, 그 지역의 여성 수는 더 줄었을 수 있다. 농촌을 보면 가임기 여성들의 수 자체가 줄어드는데, 그런 문제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가임기 여성의 수가 의미가 있다는 내부 의견이 있었다”고 해명했다고 합니다.
참가자 중 한 명은 “왜 분홍색이냐고 물으니, 보건복지부가 기획한 지하철 임산부석도 분홍색으로 꾸며지는 등 출산을 상징하는 색이 분홍색이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며 “최근 양성평등 이슈가 치열한데, 행자부 쪽의 고민이 부족했다고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행사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행자부가 중대한 정책을 꾸리면서도, 전문가로 꾸려진 자문그룹을 구성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늦게라도 행자부가 간담회를 열어 널리 의견을 청취한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행자부 쪽은 10일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간담회에서 그런(가임기여성 인구수 같은) 정보는 지자체 쪽만 알아도 되는 문제라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모든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출산지도 문제를)재검토하는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 “여자 아이디어” 책임 떠넘기는 차관
하지만 행자부의 대응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합니다. 지난 6일 여성계의 항의 시위를 앞두고 “국민이 오해하신 부분은 송구하다”며 ‘사과 아닌 사과’를 한 김성렬 행자부 차관은, 행자부에 출입하는 지역언론 기자들과 오찬 간담회에선 “현재 아이디어를 낸 여직원 3명이 항의 전화를 받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언뜻 배려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결재가 올라가고 행정자치부의 이름을 걸고 발표한 정책을 아랫사람의 책임으로 떠넘긴 것입니다.
김성렬 차관의 말을 인용한 한 지역언론은 “역시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내용의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심지어 3명 중 1명은 출산 경험이 있다고까지 공개하며 비난했습니다. 부연하자면, 해당 팀에는 남녀가 고루 섞여 있고, 부서 책임자인 과장은 남성입니다. 그런 상황을 의식한 듯 이 기사는 “이런 상황에 대해 시민들은 ‘윗선에 있는 남성 공무원의 지시를 받았을 수도 있겠지만, 조직에 예속돼 있는 여성 공무원이 남성 위주 사고와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이러니 박근혜 대통령을 누가 여성으로 보겠냐는 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비판 여론을 더했다”라고 마무리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출산지도’가 탄생한 것을, 실무진의 ‘오해 받을 만한 아이디어’ 탓만으로 돌릴 수 있을까요? ‘출산지도 프로젝트’를 담당한 행자부 자치행정과 산하 ‘저출산 고령화 대책지원팀’은, 지난해 8월11일 황교안 국무총리가 “저출산 대책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공표한 지 5일 만인 16일에 신설됐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부처의 한 공무원은 “국장급에서 시안이 잡혀 내려오는 일도 흔하다. 실무자는 시키는 대로 할 뿐 무슨 말을 하겠나. 윗사람은 아랫사람 핑계를 댔다고 잘릴 일은 없지 않으냐”고 말했습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디스팩트 시즌3#35_가임기 여성 출산지도의 비극, 어떻게 탄생했나] 바로가기
‘정부3.0’을 홍보하는 국민체험마당은 2015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 호남지역 인터넷방송 NGTV 보도 갈무리.
2015년 12월10일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심의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사랑이 없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5년 5월 국회를 통과한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은 정부가 5년마다 중·장기정책목표를 담은 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청와대 블로그 갈무리
지자체 저출산 정책 평가결과에 따라 우수 지자체에는 특교세를 지원하고, 포상 규모도 확대한다. 중앙부처의 각종 공모사업 선정시 출산율이 우수한 지자체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예정이다. (뉴시스, 지자체 ‘출산지도’ 구축…특교세 등 인센티브 지급, 2016년 8월25일)
2016년 8월25일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 저출산대책 자료는 ‘VIP 지시사항’으로 시작한다.
대한민국 규제 지도 사이트 화면 갈무리.
국가정책조정회의 자료
몇 년 전 정부는 ‘한국형 유튜브'를 만들겠다며 ‘케이컨텐츠뱅크’라는 사이트를 만든 바 있다. 또 ‘한국형 쿼키’를 만들겠다며 ‘창조경제타운’이라는 사이트도 만들었다.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여행정보 사이트, 제철식품 사이트도 있다. 몇 년 새 대통령의 지시로 생겨난 포털도 여럿 있다. 특히 규제개혁 포털은 대통령이 직접 화이트보드에 도표와 그림을 그려가며 사용자 접근 단계를 줄일 것을 지시할 정도로 기획까지 꼼꼼히 챙긴 사이트이다. 정부가 만든 일자리 포털 서비스는 오늘도 취업정보를 제공하는 다른 민간 서비스들과 동시에 방송광고를 집행하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가 만든 청년포털이란 사이트는 무료 자기소개서 컨설팅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청년들의 부업 영역인 자기소개서 첨삭에까지 정부가 직접 진출할 정도이니 이번 정부의 ‘사이트 구축’ 욕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만하다. 모두 정권 종료와 함께 사라지게 될 사이트들이다.
(이준행 인디스트릿 개발자, [2030 잠금해제] 정권과 함께 사라질 사이트들, 2017년 1월2일치 <한겨레>)
“데이터를 취합해서 보여주는 것이 다가 아니다. 관점이 중요한데, 관점부터 틀렸다. 여성에게만 출산을 장려하면 된다는 잘못된 시각이 문제다. 양성평등에 대한 내용이 들어갔어야 했다.”
“국민이 수요자 입장에서 이 지도를 보고 뭐라고 생각할까, 하는 관점이 없다. 수요자로선 아이를 키울 때 필요한 정보를 주면 고마운 일이다. 여성을 도구화하고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정보가 왜 필요한가? 시·도 지자체 혜택이라든지, 차라리 여성친화적인 기업 순위를 매겼다면 상관없었을 거다.”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메인화면의 분홍색도 문제다. 일베가 좋아할 것 같다. 누가 보기를 원하는 지도인지 생각해 봤는가.”
“‘통계 숫자는 중립적’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가임기 여성의 수를 숫자로 제시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계몽이나 힐난 두 가지 의도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계몽하거나 힐난한다고 애를 낳는 시대인가? 개인의 분발을 요구할 뿐, 나라에서 뭘 하겠다는 정책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다.”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를 표방한 핑크카펫.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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