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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설 기차표 예매, 번개 클릭만큼 중요한 건 강철 멘탈!

등록 2017-01-11 17:02수정 2017-01-11 17:24

경쟁 치열한 온라인 예약 직접 해보니
8시간 전부터 예행연습까지 했건만
3분 안에 6번 제한…당황 끝에 망했다

코레일 누리집 갈무리
코레일 누리집 갈무리
“실수는 없다. 누구보다 빠르게 한 번에 성공한다.”

9일 밤 10시. 깨끗하게 세수를 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 2대의 노트북을 켰다. 하나는 언니의 노트북이다. 10일 오전 6시에 시작되는 2017년 설 연휴 기차 승차권 공식 예매가 8시간 앞으로 다가왔다. 부모님이 경남 지역으로 이사를 하면서 서울에 자매만 남아 따로 살게 된 지 10년이 됐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연휴 기차 승차권 사전 예약은 이번이 처음이다. 예매가 시작되면 몇 초 사이 순식간에 모든 것이 지나가 버린다는 얘기를 들은 터. 이 때문에 언니와 함께 승차권 예약 성공을 위한 사전 예행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노트북 앞에서 우리 자매는 결전을 앞두고 전장에 선 듯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철도청 코레일 회원가입부터 했다. 휴대전화 본인 인증을 거쳐 발급받은 코레일 회원번호 10자리를 확보했다. 설 연휴 열차 예매를 위해서 기존 코레일 누리집과 별도로 ‘렛츠코레일’이라는 설 승차권 예약 전용 별도 페이지를 운영한다고 했다. 별도 페이지라는 걸 한 번 되뇌었다. 9일 밤은 공식 예매가 시작되기 전이기 때문에 예약 페이지는 닫혀 있었다. 그래도 설 승차권 관련 공지사항과 예약 방법 안내, 열차시각 조회 및 잔여석 현황 등을 미리 볼 수 있었다. 열심히 숙지했다.

코레일의 설명을 종합하면, 2017년 설 승차권은 10일에는 경부, 경천, 충북, 동해선, 11일에는 호남, 전라, 장항, 중앙선의 예매가 예약 전용 누리집과 지정된 역 창구, 승차권 판매 대리점에서 동시에 이뤄진다. 승차권 예매는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9시간 동안 가능. 페이지 접속 후 바로 로그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접속 대기 순서를 받은 뒤 차례가 오면 자동으로 접속되는 방식이라고 한다. 예약 요청 가능 시도 횟수는 6회로 제한. 응? 6회 밖에 안 된다고? 게다가 모든 예약절차는 3분 안에 완료해야 한단다. 아! 3분이라니…. 나의 속도로 따라갈 수 있으려나,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페이지 접속 3분이 지나간 후에는 재접속해 처음부터 다시 접속을 위한 대기에 들어가야 한다는 부분에 이르러선 속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니 처음 공식 예매를 앞둔 우리 자매가 어찌 긴장하지 않을 수 있으랴.

우리 자매는 무시무시한 공지사항을 숙지한 뒤 이에 대적할 철저한 계획을 세우기로 하였다. 출발은 서울역. 도착지인 경남 ㄱ시를 중심으로 인근 도시에 KTX가 가는 역 몇 군데를 선택한 뒤 사람들이 몰리지 않을 나름의 시간을 예상해 1안부터 4안까지 종이에 써 내려 갔다. 3분 안에 다른 시나리오를 떠올리기 어려우니 미리 몇 개의 시나리오를 짜두자는 생각이었다. 예를 들면, 새벽 5시 출발 같은 극한(?)의 시각만 엄선했다. 이 정도면 왠지 충분할 것 같았다. 대망의 ‘2017 설 승차권 예약 계획안’을 책상에 올려두고 모든 장비의 세팅을 완료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잠은 오랫동안 오지 않았다.

2대의 노트북에 나란히 띄워놓은 ‘렛츠코레일’ 페이지.
2대의 노트북에 나란히 띄워놓은 ‘렛츠코레일’ 페이지.
10일 새벽 5시 반. 어김없이 알람이 울었다. 승전을 다짐했던 전날의 비장함은 괜한 긴장감이 되어 깊은 잠을 앗아갔다. 게다가 전기장판의 따뜻함과 함께 몸은 이불 속으로 자꾸 파묻혔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반수면 상태로 결전의 장소인 책상 앞으로 갔다. 노트북 2대를 켜고 불안한 마음에 크롬과 익스플로러, 두 가지 버전의 인터넷 브라우저로 ‘렛츠코레일’ 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렇게 한 대의 노트북에 창 2개씩 총 4개창을 열고 접속한 뒤 결전의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한겨울 차가운 새벽 공기에 남은 잠을 쫓아내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노트북만 노려보며 대기하기를 이십여 분 남짓.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오른손을 마우스에 올리고, 손가락을 곧추세웠다.

마침내 6시! 빛의 속도로 마우스를 클릭했다. 하지만 내 눈앞에 보인 건 이미 나보다 마우스 클릭 반응 속도가 빨랐던 1만 9000여 명의 접속 대기자 수였다. 아울러 예약 접속까지 최장 98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떴다.

‘이럴 수가! 1만 9000명이라니. 올 설에 고향 못 가는 건가. 그나저나 오늘 회사에 출근은 할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에 남아 있던 졸음까지 달아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휴대전화 시간은 정확한 6시보다 0.몇초 늦었다. 휴대전화 시간은 위성을 통해서 전달되기 때문에 한 발짝 늦다는 설명. 가장 정확한 시간은 라디오 시보라고 한다. 이런 걸 늦게 알다니, 나는 아직 멀었다. 대기자 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언니는 장기전을 예감한 듯 노트북 대기 인원을 확인한 뒤 침착하게 출근 준비에 들어갔다.

오전 7시. 초조하게 노트북 모니터만 지켜보길 한 시간 정도 지난 시간. 접속 대기자 수는 1000여 명까지 줄었지만, 출근 시간도 한 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4시간이 넘는 고난의 버스행을 택해야 하나’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접속 대기자 수가 백 단위로 바뀌며 숫자가 폭포수처럼 아래로 떨어지는 게 아닌가. 400, 300… 100….

그러더니 5분도 지나지 않아 차례가 왔다. 로그인을 할 수 있게 페이지가 바뀌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서둘러 전날 휴대전화로 찍어둔 코레일 멤버십 회원번호 10자리를 입력했다. 다시 한 번 되뇌었다. 예약 시도는 6번만 가능하다! 게다가 예약 완료까지 주어진 시간은 단 3분!

잔여 좌석을 확인해보면서 예약을 진행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 듯해서 전날 미리 짜놓은 계획안의 예약 가능 추정 시간을 보면서 즉시 예약을 해보기로 했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 매진을 알리는 안내만 떴다. 두 번째도 역시 매진. 매진 메시지가 뜰 때마다 6개의 동그라미가 하나씩 깨지며 4개가 X표로 바뀌었다. 이제 두 번 밖에 기회가 남지 않았다. 왕복 예약이 무리였던가. 급한 마음에 연휴 앞뒷날 다양한 시간대로 검색해 편도라도 예약해보려 했다. 하지만, 그 두 번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시각을 입력해도, 왕복이 아니라 편도로 타협해도, 이미 매진이었다. 그렇게 노트북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한 시간 넘게 1만9000명의 대기를 뚫고 확보한 기회는 6번의 실패로 3분도 안돼 허무하게 끝났다. 그리고, 자동 로그아웃 메시지가 떴다.

노트북은 2개였다. 남은 기대를 모두 긁어모아 다른 노트북의 모니터를 살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거 예약되는 사람이 원래 없나 봐.” 나는 하얗게 불태운 새벽 시간을 애써 머리 속에서 지우며 이 문제는 나의 무능력이 아니라 모두의 불가항력이라고 결론짓고 정신 승리했다.

정부는 2016년 말 “수서발 고속철도 SRT의 개통으로 KTX 선로 부족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명절 기차표 예약 ‘전쟁’은 올해도 평소와 같았다. 잠을 설치며 컴퓨터 앞에서 기약 없는 대기를 해야 했고,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사람들은 이른 새벽부터 역 매표소 앞에서 승차권을 구입하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했다.

코레일 누리집 갈무리
코레일 누리집 갈무리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매진이 떠서 예약이 안 된 줄 알았던 6번의 시도 가운데 나도 모르게 승차권 예약이 이뤄진 게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잔여 좌석을 조회하지 않고 ‘즉시 예약’을 누르면, 별도의 좌석 선택 없이 선택한 날짜와 시간의 남은 좌석 가운데 무작위로 자동 예약이 되는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리하게 타협했던 시나리오가 문제였다. 예약된 날짜는 애초 원했던 날짜와 달랐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시간은 연휴 시작 전날인 26일 새벽 5시 40분. 귀경하는 시간은 부모님 집과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다른 도시에 있는 기차역에서 새벽 5시였다. 6번의 절박한 실패와 좌절 속에서 나도 모르게 타협을 해도 너무 멀리 타협을 해버린 것이다. 뭔가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4시간의 막히는 버스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또 정신 승리했다.

11일 코레일 여객 영업처 직원 주상화 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10일 ‘렛츠코레일’ 순간 최대 접속자 수는 31만 명”이라며 “설 연휴 기차 승차권 96만 좌석 가운데 온라인으로 51만, 역 창구 판매로 9만 등 모두 60만석의 예약이 완료했다”고 밝혔다. 주씨는 이어 “설 연휴 승차권은 예약 수요가 상하행선 모두 특정 날짜에 한정하고 있어 예매가 쉽지 않고, 예약 비율이 60%가 넘으면 거의 매진이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번 설 연휴 승차권 구매의 꿈은 모두 끝난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 2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 코레일이 오는 12일 최근 개통한 수서발 고속철도 SRT의 설 연휴 승차권 예매를 진행한다. 주상화 씨는 “예약 수요가 한꺼번에 몰릴 것을 대비해 수서발 고속철도 예매일은 경부선 예매일과 분리했다”며 “수서발 고속철도는 설 연휴 기간 동안 1일 최대 발매 매수가 5만석”이라고 말했다.

둘. 10일 ‘렛츠코레일’ 페이지에서 예약한 설 연휴 기차 승차권은 11일 오후 4시부터 15일 자정까지 결제하지 않으면 자동 취소된다. 중복 예매자나 단순 변심, 혹은 결제를 잊어버린 예약자의 표가 16일 오전이 되면 풀린다. 주상화 씨는 “15일 자정까지 결제되지 않은, 예약취소된 표를 16일 새벽부터 집계하는 작업을 한다. 지역이 많아서 작업하는데 오래 걸리기 때문에 16일 아침 열차에 따라 시간차를 두고 남은 표를 푼다”고 설명했다. 자, 기회는 아직 남았다. 저와 함께 남은 기회에 도전하실 초보자 분, 어디 안 계신가요?

강민진 기자 mj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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