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한동준이 1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2차 촛불집회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허승 기자
“저는 사랑노래나 부르고, 서정적인 노래 부르면서 살고 싶은 사람인데, 국가가 안 도와주네요.”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말한 독일의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의 말처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서정적인 노래를 부르는 일은 어려워졌나 보다. 가수 한동준이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1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2차 촛불집회 무대에 올라 신곡 ‘사람이 사람으로’를 발표했다. 대표곡 ‘너를 사랑해’로 유명한 한동준은 “저는 아시다시피 사랑노래나 부르고, 서정적인 노래를 부르면서 살고 싶은 사람인데, 국가가 안 도와준다“며 너스레를 떨더니 “그래서 노래를 하나 만들었다”고 했다.
“수줍어하지 말아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두려워하지 말아요. 우리가 고칠 수 있어요. 고개를 들어 말해요. 억눌려 왔던 모든 일… 사람이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도록, 희망을 잃어버린 세상에 희망을…”
얼어버린 손가락을 손난로에 비벼 잠시 녹인 한동준은 기타를 치며 이런 노랫말의 노래를 불렀다. 사랑노래를 부르던 가수가 만든 노래는 사회를 비판하면서도 사람들의 ‘수줍고, 두려운’ 마음을 먼저 위로했다.
신곡을 부르기에 앞서 무대에 오른 한동준은 “안 불러주면 어떡하나 걱정했다”며 먼저 자신의 대표곡 ‘너를 사랑해’를 불러 시민들의 박수와 환호성을 이끌었다. 이어서 부른 노래는 김민기의 ‘친구’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곡이지만 한동준은 ‘친구’를 담담히 불렀다. 이 노래는 가수 김민기가 박정희 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을 하다 의문사를 당한 친구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이요. 그 깊은 바닷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눈앞에 떠오는 친구의 얼굴 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리오. 멀리서 들리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 바퀴가 대답하려나.”
12차 촛불집회가 열린 이날은 1987년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당시 22살)씨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당하다 숨진 지 30년이 되는 날이다. 별다른 멘트도 없이 담담히 이 노래를 부른 한동준은 박종철이 숨질 당시 20살이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