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이 자신의 경영권 승계를 완성하려고 회삿돈을 횡령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 부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1997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아버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이어 20년 만에 뇌물죄로 처벌받을 처지에 놓였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16일 뇌물공여, 특정경제가중처벌법의 횡령,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 위반(위증) 등 혐의를 적용해 이 부회장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부회장의 구속 여부는 18일 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결정된다.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에게 준 뇌물공여 액수는 총 433억여원이다. 이 부회장은 2015년 6~7월 박 대통령이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을 도와준 대가로 미르·케이스포츠 재단에 회삿돈 204억원을 출연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최순실(61·구속기소)씨와 딸 정유라(21)씨가 독일 현지에 세운 바지회사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에 정씨의 승마 훈련 지원비 명목으로 213억원의 계약을 맺고 80억원을 송금한 혐의를, 최씨 조카인 장시호씨가 운영하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2800만원을 후원한 혐의를 사고 있다. 뇌물죄는 ‘약속’만 해도 처벌되도록 규정하고 있어 코레스포츠 계약금 213억원 전체를 영장 범죄사실에 포함시켰다.
특검팀은 이 가운데 이 부회장이 코레스포츠에 실제 보낸 80억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16억여원 등 총 96억여원은 이 부회장이 자신의 경영권 승계라는 사적인 목적을 위해 회삿돈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횡령 혐의를 적용했다. 특검팀은 이번 사건을 ‘삼성전자와 정부’가 아닌 ‘이 부회장과 박 대통령’이 결탁한 ‘개인 범죄’로 보고,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에 횡령 혐의를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를 완성하기 위해 뇌물자금의 원천으로 삼성전자 돈을 빼돌렸고, 박 대통령은 최씨와 공모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고자 정부의 권한을 동원해 이 부회장의 청탁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특검팀은 뇌물공여 수수자를 의율하는 혐의 적용과 관련해서 이 부회장이 미르·케이스포츠재단에 낸 출연금 204억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준 후원금 16억여원은 제3자 뇌물제공 혐의를, 코레스포츠 계약금 213억원은 단순 뇌물 혐의를 적용해 사전구속영장에 기재했다. 특검팀 대변인 이규철 특검보는 이날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 사이의 이익 공유 관계는 상당 부분 입증이 됐다. 이들의 경제적 공모관계에 대한 객관적 물증은 확보됐다고 판단한다. 박 대통령은 형식적으로 입건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에게는 지난해 12월 국회 청문회에서 거짓 증언을 한 혐의도 적용됐다. 이 부회장은 청문회에서 최씨 쪽에 대한 삼성전자의 지원이 결정되고 실행될 당시 최씨의 존재를 몰랐고 대가를 바라고 지원한 적도 없다고 증언했다.
특검팀은 최씨 지원의 실무를 맡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최지성 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차장(사장), 대한승마협회장인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 등 수뇌부는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다.
삼성그룹은 ‘삼성 입장’이라는 제목으로 낸 자료에서 “합병이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특검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법원에서 잘 판단해주시리라 믿는다”고 했다. 김정필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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