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앞둔 26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을 요구하는 설맞이 버스 타기 기자회견에 앞서 버스에 오르려 하고 있다.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고속버스 차량 및 운행 등의 제반 여건상 휠체어와 동반탑승을 원하는 장애인 고객님들께 운송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명절을 앞두고 버스표 구하기에 나선 귀성객들이 전국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이하 코버스) 누리집에 접속하면 이런 공지글이 뜬다. 글은 “고속업계에서는 이런 문제점이 개선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으니 양해해주시기 바란다”고 마무리된다. 지난해 명절 때도 코버스는 같은 공지글을 올렸다.
현재 전국에서 운행되는 고속·시외버스는 9500여대다. 어떤 버스에도 휠체어 승강 설비가 없다. 접이식 휠체어는 접어 화물함에 실을 수 있지만, 전동휠체어는 버스에 ‘승차’할 방법이 없다. 코버스 쪽은 “‘휠체어 이용자가 탈 수 있는 버스가 없다’는 내용의 공지는 몇 년 전부터 홈페이지에 계속 올려둔 공지였다”며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버스를 만들고, 운영하려면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산하 교통안전공단은 지난해 11월에야 ‘고속·시외버스 개조 차량 표준모델 연구 진행 계획’을 발표했다. 이 연구의 핵심목표는 휠체어(길이 130㎝, 너비 70㎝, 탑승자 포함 무게 275㎏)를 태울 승강 설비 설치용 버스 개조기술을 확보하는 것인데, 연구기간만 올해부터 3년이다.
전국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 누리집 코버스에 접속해보면, 공지글을 담은 팝업창 4개가 동시에 뜬다. 휠체어 장애인 고속버스 이용안내 문구를 비롯해 고속버스 신설노선과 프리미엄 고속버스 소개, 설연휴 특별예매를 안내하는 광고 등이다. 코버스 누리집 화면 갈무리
코버스는 지난해 11월께 프리미엄 고속버스를 도입했다. ‘휠체어 못 싣는다’는 공지글 옆엔 이 버스를 소개하는 ‘프리미엄 고속버스 운행 안내’ 공지글이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고속버스를 경험하세요. 첨단 안전장치 설치, 안락한 시트 및 독립공간 제공 및 전 좌석 개별 모니터, 테이블 독서 등 편의시설 이용 가능.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 제공한다.” 하지만 이 버스에도 휠체어 승강 설비는 없다. 프리미엄 고속버스를 만들 순 있어도, 휠체어 이용자들을 태울 고속버스는 없는 셈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6일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교통약자의 시외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3년째 여는 기자회견이다. 어린 시절 갑작스런 고열 증상으로 뇌병변 1급 진단을 받은 박경미(43)씨도 참가했다. 박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장애인도 버스로 여행가고 고향집에도 가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소망은 버스를 타고 강원도나 경남 통영에 가서 바다를 보는 것이다. 2006년 1월 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은 ‘장애인 등 교통약자도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을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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