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사 어길 때마다 3천만원씩 지급”
법원이 10·26 사건을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일부 장면을 삭제하라고 결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재판장 이태운)는 31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46)씨가 이 영화의 제작사인 엠케이픽쳐스와 명필름을 상대로 낸 영화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심리한 끝에 “부마항쟁 시위, 박 전 대통령의 장례식 등 영화 시작과 끝 부분의 흑백 다큐멘터리 장면을 삭제하고 영화를 상영하라”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또 제작사 쪽이 이런 결정 내용을 한 차례 어길 때마다 3천만원씩 지급하도록 했다.
삭제 결정이 내려진 장면은 이 영화의 전체 상영시간 102분 가운데 영화 시작과 끝부분의 2분30초 가량에 해당한다. 영화 제작사 쪽은 이번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과는 별도로, 삭제하라고 한 장면을 검게 처리한 뒤 오는 3일 예정대로 개봉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이날 결정문에서 “헌법상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지만, 타인의 명예를 함부로 침해할 수 있는 무제한적 권리는 아니다”라며 “영화 시작과 끝 부분에 별다른 설명 없이 비교적 긴 시간 삽입된 다큐멘터리는 관객들에게 영화가 실제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줄 여지가 충분하고, 영화 속 ‘각하’가 실제 박 전 대통령을 묘사한 것처럼 사실과 허구의 구분을 모호하게 해 고인의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다큐멘터리 장면을 그대로 두면, 실제 인물을 소재로 채용했지만 감독의 창작력에 의해 영화적 허구로 승화됐다는 판단을 유지하기 곤란하다”면서도 “박 전 대통령 시신의 음부를 모자로 덮는 장면 등에서 악의성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블랙코미디 상업영화의 풍자나 농담에까지 법적인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며 영화 속 장면들에 대한 삭제요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재판부는 사전검열 논란과 관련해 “민사집행법상 상영금지 가처분은 개별 당사자 간의 분쟁을 사법부가 심리·결정하는 것으로서, 행정권의 허가에 달린 사전심사를 금지하고 있는 헌법의 검열금지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영화인회의, 디렉터스 컷 등 영화인 단체들은 이번 결정에 항의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부분 상영금지 결정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고 비판했다. 영화제작사 쪽 변론을 맡고 있는 이동직 변호사(법무법인 한결)는 “법원의 이번 결정은 유감스런 일로, 가처분 이의신청을 내겠다”며 “그러나 관객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삭제하라고 한) 해당 장면은 까맣게 처리한 채 영화는 오는 3일 예정대로 개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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