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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우리도 일본처럼…? 늘어나는 빈집들 왜

등록 2017-02-11 11:01수정 2017-02-15 17:50

수도권 지하철 1호선 도원역에서 멀지 않은, 인천 남구 숭의동 ‘석정마을’ 내 한 빈집. 지난 6일 대문이 쇠사슬로 채워져 있는 집 마당엔 각종 생활폐기물이 버려져 있고 잡풀이 무성하다. 한눈에 빈집임을 알 수 있다. 석정마을 일대엔 80개가량의 저층 주택이 모여 있는데 주변 대로와 맞닿은 몇 곳의 집을 제외하곤 모두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다.
수도권 지하철 1호선 도원역에서 멀지 않은, 인천 남구 숭의동 ‘석정마을’ 내 한 빈집. 지난 6일 대문이 쇠사슬로 채워져 있는 집 마당엔 각종 생활폐기물이 버려져 있고 잡풀이 무성하다. 한눈에 빈집임을 알 수 있다. 석정마을 일대엔 80개가량의 저층 주택이 모여 있는데 주변 대로와 맞닿은 몇 곳의 집을 제외하곤 모두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다.
[토요판] 뉴스분석 왜?
도시의 빈집들
▶ ‘저성장의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변화 속도도 점차 느려집니다. 우리는 늙고 우리가 사는 집도 늙습니다. 도시도 늙어갑니다. 늙은 도시엔 버짐처럼 빈집이 생겨납니다. 빈집은 주변 집을 다시 빈집으로 만듭니다. 우리에 앞서 장기간의 저성장을 경험한 일본에선 10가구 중 1가구꼴로 빈집이 생겨나 사회문제화하고 있습니다. 빈집의 발생을 막고 활용하는 일이 우리에게도 점차 중요해지지 않을까요?

지난 6일 오후 인천남중학교(인천 남구 숭의동) 뒷담에 기댄 쇠락한 골목엔 인기척이 없었다.

골목 입구의 2층짜리 붉은 벽돌 주택 옥상에서 하얀 개가 연신 시끄럽게 짖어댔지만, 나와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곳 8개 집들 중 절반가량이 비어 있었다. 먼지 쌓인 유리창과 낙엽, 지푸라기가 골목길에 쌓였다. 골목 끝단 2층 단독주택 대문엔 인천남부경찰서장 명의의 ‘특별순찰구역’ 스티커가 나붙었다. 요금 체납을 이유로 물 공급 중단을 통보한 ‘수도전 정수장’과, 전기공급을 끊는다는 한국전력공사 제물포지사의 노란 안내문도 함께했다. 수신되지 않은 요금 고지서엔 지난해 9월부터 1천원대의 금액이 찍혀 있었다. 9월부터 사람이 살지 않았던 것이다. 대문의 철제 문살 사이로 보이는 마당엔 아무렇게나 쌓여 말라버린 낙엽들이 그득했고, 유리창 안으로 보이는 거실은 가구 하나 없이 비어 있었다.

맞은편 1층 집은 마당이 어지러웠다. 붉은색 고무대야, 플라스틱 바구니, 고무호스, 검은 비닐봉지, 깨진 형광등, 부서진 가구가 파리한 나뭇가지와 함께 널렸다. 담벼락 일부는 불에 그슬렸고, 잠긴 대문 건너 창문 안으로 곰팡이가 시커멓게 장악한 벽지가 눈에 들어왔다.

쇠퇴한 원도심

서울대 연구팀(공과대학 전영미·환경대학원 김세훈)이 지역별 특성에 따라 빈집 발생 양상을 정리한 논문(‘구시가지 빈집 발생의 원인 및 특성에 관한 연구’·2016)을 보면, 인천은 주요 광역시·도 중 단독주택만을 놓고 따진 ‘빈집률’(해당 지역 총 단독주택 수에 견준 빈집 수)이 매우 높은 편(7.1%, 2010년 주택총조사)이다. 같은 조사에서 경기도는 6.2%, 광주는 5.3%, 부산 4.3%, 울산 3.8%, 서울은 2.1%를 기록했다. 논문은 재개발이나 재건축 같은 정비사업구역 이외 지역의 빈집만을 셈했다. 정비사업구역은 개발을 위해 의도적으로 빈집 집단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도 뺐다. 공동주택의 빈집은 통상 매매나 임대, 이사, 수리 등의 한시적 이유로 생겨났다 사라진다. 그렇게 단독주택만을 따진 빈집이 인천의 ‘원도심’인 남구에 216개(2015년 8월 기준)가 분포한다. 그중 33%인 80개 빈집이 숭의동에 있다.

인천은 1990년대 들어 주요 산업인 제조업이 쇠퇴했다. 뒤따라 옛도심과 옛시가지 일대가 정체와 쇠퇴를 겪었다. 지난해 인천발전연구원이 인천의 도시 쇠퇴 특성을 분석해 발간한 보고서(‘복합쇠퇴지수를 활용한 인천시 도시쇠퇴 특성 분석’)를 보면, 2003년부터 2013년까지 10년간 인천의 원도심(중·동·남구) 인구는 6.5%가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신도시’ 남부(연수·남동구)와 서북(서구) 생활권의 인구 증가율은 각각 49.8%, 50.2%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서울과 가까운 동북(계양·부평구) 생활권도 5.1% 증가했다. 원도심 주민들이 살던 곳을 떠날 때, 남부와 서북으론 새 이주민들이 유입됐다. 버려진 원도심은 쇠퇴 속도가 가팔랐다. 전체 가구 중 세대주 나이가 65살 이상이면서 세대원이 세대주 자신뿐인 가구(독거노인)의 비율은 원도심이 12.1%(2013년 가구 수 대비 2015년 행정동별 독거노인 수)였다. 원도심 중 한 곳인 중구 동인천동은 이 수치가 무려 22.8%에 달했다. 지어진 지 30년이 넘은 노후 건축물의 비율도 원도심은 66.1%(2013년)였다. 빈집이 발생할 가능성이 큰 노후 건축물은 원도심을 중심으로 경인전철·경인고속도로 주변에 집중 분포하고 시 외곽으로 갈수록 적었다. 개항장이 있는 원도심 인천 중구는 빈집률이 14.7%에 이른다.

수도권 지하철 1호선 도원역에서 멀지 않은 숭의1·3동주민센터 인근에도 버려진 골목이 있다. ‘석정마을’이라 부르는 3000평 가까운 대지에 모두 80개가량의 저층 주택이 모여 있다. 주변 대로와 맞닿은 집 몇 곳을 제외하곤 일대가 거의 빈집이다.

지난 6일 오후 인기척 없는 비좁은 골목은 대낮인데도 어둡고 을씨년스러웠다. 사람이 겨우 다닐 만큼 좁은 골목들 사이로 여기저기 고양이 먹이가 놓여 있었다. 골목을 돌아 나갈 때마다 매번 다른 고양이가 나타났다. 사람이 없는 집들로 고양이가 몰렸고, 주변에 사는 누군가가 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쓰러져가는 집 주변과 골목에 각종 생활폐기물과 쓰레기, 동물의 배설물이 함부로 널렸다. 여러 냄새가 섞여 났다.

인천 남구는 낙후된 제물포 역세권을 2007년 3월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했다. 이곳도 정비구역에 포함됐지만 2010년 2월 주민들의 반대로 지구지정이 해제됐다. 정비구역 지정과 해제는 쇠퇴를 가속화했다. 개발이익을 기대한 외지인들이 집을 사들여 방치했고, 주민들은 수년간 팔리지 않는 집을 버려두고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빈집이 느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니 큰길에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준비 중이라는 내용의 펼침막이 걸렸다. 석정마을은 서울 중랑면목지구, 경기 부천 중동지구, 수원 파장1·2지구와 함께 지난해 국토교통부에 의해 가로주택정비사업 시범지구로 지정됐다. 대규모 정비사업이 여의치 않자 소규모 정비사업으로 방향을 돌린 것이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은 면적이 1만㎡(3025평) 미만에, 4면이 모두 도로로 둘러싸인 지역에서 공동주택을 신축하는 정비사업이다. 지역 내 노후건축물 수가 전체의 3분의 2 이상이고, 20가구가 넘는 곳에서 기존 기반시설과 도로를 그대로 둔 채 최대 15층 높이(서울시는 7층)로 지을 수 있다. 대규모 주택정비사업과 달리 사업 기간을 줄일 수 있고 각종 규제가 완화되는 특례를 적용받지만, 규모가 작아 사업비 조달이 어렵고 시공사 선정이 쉽지 않다. 석정마을의 정비사업이 제 궤도에 오를 때까지 빈집들은 이대로 방치될 가능성이 높다.

인천 남구 숭의동 인천남중학교 뒷담에 기댄 골목의 한 빈집. 붉은색 고무대야, 부서진 가구 등이 파리한 나뭇가지와 함께 집 마당에 널렸다. 담벼락 일부는 불에 그슬렸다.
인천 남구 숭의동 인천남중학교 뒷담에 기댄 골목의 한 빈집. 붉은색 고무대야, 부서진 가구 등이 파리한 나뭇가지와 함께 집 마당에 널렸다. 담벼락 일부는 불에 그슬렸다.
빈집은 ‘깨진 유리창’

빈집은 ‘공가’나 ‘폐가’로도 불린다. 비게 된 원인, 건물의 용도와 유형, 비어 있던 기간, 파손 정도 등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국내 빈집 현황은 통계청이 5년마다 시행하는 인구주택총조사를 통해 확인된다. 조사 시점에 훼손도가 50% 미만인, 사람이 살지 않은 집을 모두 셈한다. 1995년 36만5466가구였던 국내 빈집은 2000년 51만3059가구, 2005년 72만7814가구, 2010년 79만3848가구에서 2015년 106만8919가구로 늘었다. 전체 주택 대비 빈집 수를 따진 빈집률도 같은 기간 3.8%, 4.5%, 5.5%, 5.4%, 5.6%로 늘었다. 뚜렷한 증가 추세다.

빈집이 인구가 적은 지방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도 빈집이 적지 않다. 서울의 빈집은 1995년 3만9806가구에서 2000년 5만6642가구로, 2005년 7만9800가구로 증가한 뒤 10년간 이 수준을 유지(2010년 7만8702가구, 2015년 7만9049가구)하고 있다. 가장 최근 조사인 2015년 서울의 빈집 중 가장 많은 1만1764가구가 강남구에, 7007가구가 서대문구에 있었다. 강남구는 개포 재건축을 앞두고 비워진 집들이, 서대문구는 가재울뉴타운의 완공된 아파트 중 미처 입주하지 않은 집들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5년 전인 2010년 조사에선 은평뉴타운이 들어선 은평구에서 빈집(7367가구)이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가장 많았다.

인천 원도심 남구 숭의동
정비구역 지정·해제 거친 뒤
주민 떠나고 지역쇠퇴 가속화
방치된 빈집 쇠퇴 원인이기도

빈집 특례법 지난달 국회 통과
우리도 관리 필요한 단계
빈집 활용 가이드라인 만들고
체계적 빈집조사 선행돼야

통계청은 2005년부터 빈집을 조사하면서 ‘매매·임대·이사’, ‘미분양·미입주’, ‘현재 수리 중’, ‘일시적(가끔) 이용’, ‘영업용’, ‘기타’로 사유를 구분했다. 비어 있던 기간도 함께 조사했다. 지역의 경관을 훼손하고, 자원의 낭비와 치안 문제를 야기하는 빈집은 주로 ‘기타’ 사유로 장기간 방치된 경우다. 정비사업구역으로 지정되기 전 인천 남구 숭의동 석정마을의 빈집들처럼 살 수도, 팔 수도, 세입자를 들일 수도 없는 집들이 보통 이런 경우다. 2010년 조사에서 전체 빈집의 21.9%인 17만3770가구가 ‘기타’ 빈집이었다. 1년 이상 빈집(사유 무관)은 33.2%인 26만3228가구로 나타났다. 2005년 각각 8만1750가구, 19만929가구에서 큰 폭으로 늘었다. 2015년 조사는 빈집이 된 원인과 기간을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

빈집은 지역 공동체와 위생, 안전, 미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방치되고 깨진 유리창이 범죄를 확산시킨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은 빈집 문제를 설명하는 대표적 사례다. 빈집은 도시 쇠퇴의 징후이자 결과이지만, 빈집 자체가 다시 쇠퇴를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

하지만 국내엔 빈집에 대한 관리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유선종 건국대 교수(부동산학과)는 “매매형이나 임대형 빈집은 시장의 변화에 맡기면 되지만 기타 사유의 빈집이 문제다. 이런 빈집은 담벼락이 쓰러지거나 지붕이 무너져도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다. 사유 재산이라 철거가 어려운데다, 건물이 있는 건부지가 나대지보다 재산세가 덜 나오는 구조라 집주인들은 형체만 있어도 건물을 그대로 두려 해 문제가 더 악화되고 있다”고 했다.

빈집 문제가 본격화된 일본의 빈집률은 13.5%(820만가구, 2013년)에 이른다. 빈집이 빠르게 늘자 일본 정부는 2015년 5월 ‘빈집 등 대책 추진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만들어 ‘특정 빈집’에 대한 강제 철거를 가능하게 했다. 국토교통성이 빈집의 실태를 조사하는 지방자치단체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빈집에 대한 ‘재생촉진사업’도 시행한다. 유 교수는 “빈집이 늘어난다는 말은 그 지역이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이 돼가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도 본격적으로 관리를 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 서울만 해도 8만가구가량의 빈집 중 1만2천가구가 관리되지 않은, 기타 사유의 빈집으로 강북 등 구시가지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고 했다.

지역자원으로 활용해야

지난달 20일 국회에선 ‘빈집 및 소규모 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 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도시 내 빈집을 공공 목적에 맞게 활용하고, 소규모 주택 정비를 간소화하는 게 뼈대다. 내년 2월 시행된다. 법이 시행되면 지자체장은 빈집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여 정비계획을 수립해 시행할 수 있고, 안전사고나 범죄 발생의 우려가 높은 경우 철거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직권 철거도 가능하다. 빈집을 활용하는 법안이 만들어진 건 그만큼 빈집에 대한 관리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지금까진 전국 20곳가량의 광역·기초 지자체가 관련 조례를 만들어 빈집을 관리해왔다. 서울에서는 노원구(2011년 10월 조례 제정)와 관악구(2014년 2월)가, 경기도에선 안양시(2015년 4월)가 관련 조례를 만들어 시행했다. 인천에선 남구(2015년 3월)가 구 차원에서 빈집을 관리 중이다. 주로 빈집 소유주와 협약을 맺어 건물을 정비하고, 이를 작업실과 마을기업, 사회적기업에 내주거나 노인복지시설 등 공공이용시설로 활용하는 식이다. 하지만 관리 대상 빈집이 제한적인데다 실제 관리는 주로 정비사업구역에 한정돼 있다.

재개발·재건축이 쉽지 않은 ‘저성장’이 본격화된 것도 빈집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저성장으로 개발이 어려워지면서 낙후된 지역과 그나마 개발이 이뤄지는 지역으로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 남지현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관련 보고서(‘빈집도 지역자산이다’·2015)에서 “빈집의 형성 과정은 곧 도시개발 과정에 따른 지역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는 근거이며, 이에 대한 철저한 조사는 곧 지역을 이해하고 추후 지역활동에 있어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빈집을 지역자원으로 인식하고 활용하기 위해 지자체 차원의 체계적 빈집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글·사진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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