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가운데 흰 제복).
정옥근 해군총장, 파기환송심서 제3자뇌물 유죄
사건 구도, 박근혜-이재용 뇌물 사건과 유사
특검팀 판결문 ‘탐독’ 영장청구 의견서에도 반영
사건 구도, 박근혜-이재용 뇌물 사건과 유사
특검팀 판결문 ‘탐독’ 영장청구 의견서에도 반영
지난달 19일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첫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추가 증거 확보와 법리 검토에 들어간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탐독’한 것은 지난 2일 서울고법이 제3자 뇌물죄로 유죄를 선고한 정옥근(65) 전 해군참모총장 사건 판결문이었다. 사건의 청탁 정황, 돈을 건넨 구도 등이 박근혜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 뇌물수수 사건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정 전 총장은 2008년 8월 에스티엑스(STX)조선해양 쪽에 “아들의 요트회사에 후원금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했고, 에스티엑스는 정 전 총장 아들의 요트회사에 7억7000만원을 지원했다. 해군이 주관한 요트 행사를 정씨 회사가 대행하고 에스티엑스가 이를 후원하는 구조였다. 이 회사는 정 전 총장이 설립자금과 운영자금을 대고 아들이 지분의 33%를 소유하는 등 사실상 가족회사였다. 에스티엑스 관계자는 검찰 조사에서 “해군은 방산업체의 갑이다. 해군참모총장이 지원을 요구하면 방산업체는 당연히 해군 사업 수주와 연결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진술했다.
정 전 총장은 2015년 8월 1심에서 뇌물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으나, 지난해 6월 대법원은 정 전 총장의 유죄는 인정하면서도 직접 뇌물을 받은 것으로는 볼 수 없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에 검찰은 정 전 총장의 혐의를 ‘단순 뇌물수수’에서 ‘제3자 뇌물수수’로 바꿨고, 결국 서울고법은 정 전 총장에게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특검팀은 박근혜 대통령(정옥근)-최순실(아들)-이재용(에스티엑스)으로 등치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또 정 전 총장 아들의 요트회사는 최씨가 주도해 만든 미르·케이스포츠 재단과 코어스포츠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본다.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3차례 독대하면서 경영권 승계 과정을 도와달라는 묵시적 청탁을 받고, 삼성이 두 재단과 코어스포츠 등에 433억원 ‘대가’를 지원한 것이 정 전 총장 사건 구도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서울고법은 제3자 뇌물수수의 구성요건인 ‘부정 청탁’과 관련해 명시적으로 말을 주고받지 않더라도 ‘묵시적 청탁’으로도 죄가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례를 적극 인용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19일 “박 대통령의 경우 보건복지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동원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직접 도왔다는 점에서 죄질이 더 나쁘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재청구에 앞서 정 전 총장 판결문을 입수해 한동훈 부장검사 등 수사검사들이 돌려 읽으며 법리를 분석했고, 지난 14일 법원에 제출한 300여쪽에 달하는 구속영장 청구 의견서에도 판결 취지와 법리를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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