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머금고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직을 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저녁 청와대를 떠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집 앞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지지자들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4년14일 만의 자택 복귀
6분여간 친박·지지자들과 이야기
6분여간 친박·지지자들과 이야기
12일 저녁 7시30분이 넘어가며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자택 주변은 함성 소리가 더 커지기 시작했다. 박 전 대통령이 탄 검은 세단이 10여명의 경호를 받으며 속도를 늦추고 미끄러져 들어오자, 봉은사로부터 자택 앞까지 수백미터 늘어서 있던 1천여명의 지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박근혜 대통령”을 연호했다. 차 안에서 박 전 대통령은 미소를 머금은 채 양쪽을 둘러보며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1476일 만의 복귀.
2013년 2월25일 취임식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삼성동 주민들이 건네준 진돗개 두마리를 끌어안고 “좋은 대통령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5년 후에 아주 밝은 얼굴로 다시 뵙겠다”고 말했다. 헌정 사상 탄핵당한 첫 현직 대통령이 되어 4년여 만에 열성 지지자들만이 기다리는 자택으로 복귀한 박 전 대통령은 의외로 내내 미소를 띤 담담한 모습이었다.
저녁 7시15분께 청와대 정문을 빠져나온 박 전 대통령의 차량은 사직로~독립문~서울역~삼각지~반포대교~올림픽대로~영동대로를 거쳐 24분 만에 집 앞에 도착했다. 7시39분 차에서 내려 모습을 드러낸 박 전 대통령은 먼저 측근들과 인사를 나눴다. 최경환·윤상현·김진태 의원 등 친박계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허태열·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 탄핵심판 대리인을 맡았던 손범규 변호사 등은 도착 한 시간여 전부터 자택 앞에서 대기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지지자들 쪽으로 다가가 허리를 숙여 어린아이와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일부 사람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자택 안으로 들어간 시간은 7시45분. 6분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측근들에게 말하는 등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한 ‘메시지’를 분명히 한 시간이었다. 탄핵을 지지한 대다수 국민들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이 과정에서 지지자 가운데 다섯명이 탈진하거나 호흡곤란을 호소해 구급차에 실려 나가기도 했다. 지지자들은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이게 끝이 아니에요. 앞으로 싸웁시다” “억울하게 내려왔는데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이정미(헌재 재판관)를 죽이자”라고 외쳤다. 경찰은 이날 오전부터 자택 앞에 모여들기 시작한 지지자들이 오후 들어 1천명 가까이로 불어나자, 애초 6개 중대(420여명)였던 경비병력을 13개 중대(910명)로 늘렸다. 폴리스라인도 철제 울타리로 보강했다.
“불법 헌재” “불법 탄핵” 같은 구호를 외치던 지지자들은 현장에 나온 취재진에겐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냈다. 태극기를 든 한 40대 여성은 한 종합편성채널 방송사 차량을 보면서 “너희들 여기 왜 왔어? 구경 왔냐. 짐승보다 못한 ××들. 너희들은 인간도 아니야. 괴물 집단이야”라고 소리쳤다. 이 동네에서 10년 동안 살고 있다는 이아무개씨는 이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며 “박 전 대통령이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에 깨끗이 승복하고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이날 밤 논평을 내 “80%의 국민이 파면을 요구했다는 사실에 애써 눈감고 자신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일부를 부추겨 작은 권력이라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규남 박수지 안영춘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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