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과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를 주제로 한 20차 촛불집회가 열린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 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폭죽을 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여러분이 바로 승리의 주인공입니다!”
11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촛불집회 사회를 맡은 박진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상황실장의 함성이 울려퍼졌다. 촛불 시민들도 환호성을 올렸다. 승리를 기념하는 폭죽이 하늘을 수놓았다. 시민들은 ‘촛불의 승리’를 자축하며 옆에 앉은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수고했다”, “덕분입니다” 인사를 건넸다. “청소노동자, 수화팀, 서울시 공무원, 고락을 함께한 경찰분들도 고생하셨다”며 촛불집회의 ‘숨은 주역’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파면 선고가 내려진 이튿날인 11일 ‘촛불과 함께한 모든 날이 좋았다’ 20차 범국민행동이 열렸다. 전국 70만명의 시민은 “박근혜 없는 봄이다”를 외치며 대통령 탄핵에 대한 기쁨을 나눴다. 동시에 “박근혜 구속” “황교안 퇴진”을 주장하며 새로운 시작을 다짐했다.
이날 오후부터 광화문광장은 축제 분위기로 가득했다. 전국풍물인연석회의의 풍물 연주가 광화문광장에 울려퍼졌다. 광장 곳곳에 탄핵을 축하하는 화환 40여개도 놓였다. 따뜻한 봄 날씨에 친구·가족의 손을 잡고 광장으로 나온 시민들은 환한 표정으로 ‘이게 정의다’ ‘촛불 승리’ 팻말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패러디해 헤어롤을 머리에 말고 온 시민도 등장했다. 아내와 광장을 찾은 박종신(54)씨는 “탄핵 선고됐을 때 그 가슴 벅찬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오늘은 탄핵의 기쁨을 시민들과 나누기 위해 편한 마음으로 광장에 나왔다”고 말했다.
퇴진행동 쪽은 지난해 10월 첫번째 촛불집회가 시작된 이래로, 134일간 20차례에 걸친 촛불집회에 연인원 1600만명의 시민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김광일 퇴진행동 집회기획팀장은 무대에 올라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1년의 3분의 1’에 이르는 시간 동안 싸웠다. 이 광장의 결론은 ‘모이자, 싸우자, 이길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기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사무처장은 “대통령 탄핵으로 기뻤지만, ‘세월호 참사 7시간 문제’가 탄핵 사유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소식에 허탈감도 느꼈다. 하지만 여기서 실망하지 않고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적폐 대통령’의 파면을 축하하는 축제는 전국 주요 도시에서도 흥겨운 분위기 속에 펼쳐졌다.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선 시민들이 한목소리로 “수갑을 채워라”라는 구호 속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처벌을 촉구했다. 사회를 맡은 국악인 백금렬씨가 “세월호 사고 때 머리를 만진 박근혜에게 수갑을 채워라”라고 호령하자, 진행요원이 다가가 수갑을 채우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날 집회에선 1980년 5월항쟁 때 시민군이 나눠 먹었다는 주먹밥이 ‘탄핵 축하 주먹밥’이란 이름으로 등장해 분위기를 달궜다. 경남 창원광장에서도 커피와 붕어빵이 무료로 제공돼 인기를 끌었다.
시민들은 박 전 대통령의 파면 이후에도 남아 있는 각종 적폐 청산도 요구했다. 부산과 울산에선 신고리 5·6호기 건설 백지화와 노후원전인 월성1호기 가동 중단 등 원전 문제 해소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제주대 재일제주인센터 방문교수로 온 서승 전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는 “이번 탄핵은 세계사에 유례없는 일이다. 일본 보수파들의 입장에서는 12·28 위안부 합의나 사드 문제 등 때문에 이번 탄핵에 대해 뼈아프게 생각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한솔 박수진 방준호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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