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가 대법원장에게 무한 충성을 하는 이유는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인사권 때문이라고 판사들은 말한다. 실제 <한겨레>가 양승태 대법원장 취임 뒤 법원행정처 출신 판사들의 인사를 추적해보니 일선 판사들에 견줘 뚜렷하게 우대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2012년~2017년 2월 사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자 89명의 인사 내역을 전수조사한 결과,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진 판사가 37명에 달해 전체 승진자의 41%를 차지했다. 대법원 재판 업무를 전담하는 재판연구관 근무 경력까지 포함하면 이 비율이 75%(67명)로 늘어난다.
2012년에는 19명의 고법 부장 승진자 중 6명이 행정처 출신이었고, 2013년에는 14명 중 4명이었다. 2014년에는 15명 중 8명, 2015년에는 12명 중 6명, 2016년에는 16명 중 7명, 2017년에는 13명중 6명이었다. 특히 2014년 이후에는 행정처 출신 승진자가 절반을 넘었다.
일선 판사들 중 행정처 근무 경험자가 연수원 기수별로 10% 안팎에 그치는 것에 견줘 명백한 ‘인사 우대’다. 이는 일선 판사들에게 ‘재판보다 행정 업무가 우대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2012~2017년 동안 재판 업무 경력만으로 고법부장으로 승진한 판사는 전체 승진자 중 25%(23명)에 그쳤다.
일선 단독 판사 등의 재판 배당 등의 업무를 관리 감독하는 서울중앙지법 수석부장들의 이력을 살피면 법원 행정처 우대 현상은 더욱 뚜렷하다. 법원 내 요직으로 분류되는 서울중앙지법의 민사, 형사, 파산부의 각 수석부장을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살펴보면 임종헌 판사(2012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현 법원행정처 차장) 등 17명이 행정처 근무 경험자였고, 단 2명만 행정처 보직 경험이 없다. 이 때문에 일선 법원이 법원행정처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장이 임명제청하는 대법관도 비슷하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한 2011년 9월 이후 추천된 대법관 임명제청자 명단을 살펴보면, 대법원장의 오른팔 역할을 해온 법원행정처 차장 출신이 4명(김용덕·고영한·권순일 대법관, 강형주 서울지방법원장)이나 추천됐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들은 일선 판사들에게 ‘부러움이자 질타의 대상’이다. 법원 행정처 소속 판사들은 ‘왕당파’ ‘법원판 하나회’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에서 유능한 인재를 발탁해 가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행정처 근무 경험이 있어야 고위 법관으로 승진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는 것은 문제다. ‘대법원장 줄서기’와 사법부 관료화가 심화되면 일선 판사들의 재판 독립성은 흔들리게 되고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 또한 회복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장에게 인사 독점권이 주어지는 사법행정 체계를 가진 나라는 일본,대만,한국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허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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