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내전으로 폐허가 된 시리아 북부 알레포 인근 한 마을에서 한 소년이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가 나눠준 학용품과 심리치료 교재를 들고 무너진 건물 잔해가 널부러진 거리를 걷고 있다. 알레포/유니세프 제공. AP 연합뉴스
“저는 깜깜한 것과 거미를 무서워해요.” ‘가장 두려운 것’을 묻자 해맑은 표정으로 6살 메디(캐나다)가 대답했다. 같은 질문을 듣고 9살 다랄(시리아)은 진지한 얼굴이 됐다. “누군가를 향해 총을 겨누는 게 가장 무서워요.” 다랄은 삶의 대부분인 6년을 내전 속에 살았다.
지난 15일 월드비전은 전세계 7개 나라 아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분석한 ‘두려움과 꿈 보고서’(Fears and Dreams Report)를 내놓고, 아이들의 인터뷰를 유튜브에 공개했다. 2011년 3월15일 반정부 시위와 이에 대한 정부 쪽의 강경 대응으로 시작된 뒤 종전이 기약 없는 시리아 내전 6년째를 맞아 발표한 보고서다. 시리아를 포함해 한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독일, 아일랜드 등 7개 나라의 아이들(7~17살) 각 100명에게 ‘두려움과 꿈’을 묻고 이를 항목별로 분류했다. 아이들의 두려움과 꿈엔 자신을 둘러싼 ‘어른들이 만든’ 세계가 투영돼 있다.
시리아 아이들 43%가 이야기한 두려움의 대상 속에는 비행기 폭격, 포격과 폭발 등 물리적인 위협이 될 만한 전쟁 무기들이 등장했다. 시리아 아동인 살레(14)는 “폭격과 무기”를 가장 두려운 것으로 꼽으며 말했다. “죽느냐 사느냐가 달려 있으니까요.” ‘가족과의 헤어짐’을 가장 두려운 일로 꼽은 시리아 아이들도 15%에 달했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이 13일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에만 시리아에서 최소 652명의 어린이가 공습이나 포격 등으로 목숨을 잃고, 850여명의 어린이가 무장세력에 의해 소년병으로 끌려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아이들은 대부분(47%) ‘귀신, 괴물’ 등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꼽았는데, 조사 대상인 다른 나라에서와 달리 ‘체벌’(9%)이 두려운 것 순위에 포함된 것도 눈에 띈다. 주로 미디어나 교육을 통해 접했을 ‘전쟁과 테러리즘’에 대한 공포는 독일(64%), 오스트레일리아(35%), 뉴질랜드(33%) 아이들 사이에서 두드러졌다. 캐나다 아이들 대부분(73%)은 자연에서 본 것들(거미, 상어, 어둠)을 두려워한다고 답했다. 가족(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세계 모든 어린이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다.(“엄마가 없을 때가 가장 두려워요.” 7살 지예경, 한국)
‘꿈’을 묻는 질문에 시리아 아이들은 ‘평화, 그리고 시리아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답했다. 시리아 아동 10명 중 4명(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 2015년)이 다른 나라에서 난민으로 생활하고 있는 탓이다. 이번 조사는 시리아 내부뿐 아니라 요르단, 레바논, 터키 등에서 난민 생활을 하고 있는 시리아 아이들도 대상으로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같이 있고 싶다’는 응답도 12%에 달했다. “시리아로 돌아가서 할머니를 보는 거예요.” 8살 시리아 아이 자스민의 꿈이다.
‘꿈’을 묻는 질문에 압도적으로 많은 한국 아이들(84%)은 연예인, 우주비행사 등 특정한 직업을 꼽았다. 꿈과 장래 직업을 동일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뉴질랜드에 사는 로키(11)는 “가난이 없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모든 것이 100% 친환경인 세상이 오기를 꿈꾼다”고 답했다. 뉴질랜드 아이들 30% 정도가 로키처럼 세계평화, 평등 등 공동체적 가치를 ‘자신의 꿈’이라고 답했다.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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