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속 기소’ 논란 두산사태 (하)-해법
총수일가의 경영비리 전면적으로 드러난 것을 계기로 두산그룹은 전문경영인들을 중심으로 한 비상경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경영을 약속하는 등 사태수습을 위해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총수일가들이 불구속 상태에서 여전히 절대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전문경영인들이 과연 총수들을 견제, 감시할 수 있는 지배구조 개선책을 제대로 마련할 수 있을지 회의론이 만만치 않다. 시민단체와 학자들은 총수일가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독립적 인사들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재벌의 경영비리에 책임을 제대로 물을 수 있는 시장의 감시, 견제장치들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주문한다.
두산은 10일 오후 확대사장단 회의를 열고 유병택 ㈜두산 부회장을 위원장으로 김진 ㈜두산베어스 사장 등 계열사 사장 8명이 참여하는 비상경영위원회 구성을 확정했다. 이날 회의엔 이재경 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 등 검찰 기소 대상인 인사들을 포함해 20여명이 참석했다. 비경위는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투명화를 양대 혁신과제로 삼고 에스케이·엘지그룹 등을 벤치마킹해서 사외이사제 강화나 지주회사 체전 전환 등 제도 개선책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두산은 비자금 조성과 대규모 분식회계 등 경영비리에 연루된 대주주 일가가 비경위에 관여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용성 회장의 사퇴로 그룹회장직이 공석이 됨에 따라 박 회장과 평소 각별한 사이로 알려진 진념 전 재정경제부총리 등 중량급 인물이 영입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두산의 이런 지배구조 개선 및 투명경영 약속이 제대로 이행될지는 불확실하다.1991년 페놀 사태로 위기를 맞았던 두산은 당시 박용곤 명예회장이 그룹회장직에서 물러나고 전문경영인인 고 정수창 회장을 영입했다. 그러나 총수일가는 2년 뒤 다시 복귀했고, 이번 수사 결과 밝혀진 대로 천문학적 규모의 회계부정과 비자금 조성은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또 지난 99년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지배주주 4세들에게 헐값에 넘기는 수법으로 편법증여를 시도하다가 물의를 빚자, 2000년 관련 채권을 전량 소각하며 투명경영을 약속했지만 역시 헛구호에 그쳤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 등 비리의 핵심 인물들은 명목상으로는 그룹 회장과 부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등기이사직을 일부 또는 전부 유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논란거리이다. 또 두산의 4세대 대부분이 회삿돈을 개인생활비나 이자대납금 등으로 써댄 공범이면서도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다른 그룹에 비해 심한 두산의 순환출자구조도 난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김상조 소장(한성대 교수)은 “두산 수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회사에 해를 끼친 총수일가와 전문경영인 등 등기이사들에게 배임 등 혐의가 제대로 인정되지 않은 것”이라며 “두산 쇄신을 위해선 누가봐도 총수일가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워 보이는 독립적 인사들로 이사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익대 전성인 교수(경제학)는 “개별 기업의 자정노력에 기대는 것보다 주주 등 시장 참여자들이 경영비리의 책임을 제대로 물을 수 있는 장치들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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