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현 기자
현장에서
세상이 위험하다는 것조차 모를 만큼 맑은 눈망울을 가진 어린이들이 어이없는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막혀온다. 그 부모의 심정은 어떠랴. 이런 처참한 일을 당한 어린이가 지난해에만도 296명이나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고의 어린이 교통사고율이라는 오명을 씻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지난해 12월 한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어린이 통학버스를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하고 그 운전자가 특별 교통안전 교육을 받도록 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이다. 통학버스를 타고 내리는 과정에서 교통사고를 당하는 일이 잦은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법안은 아직도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서 잠자고 있다. 이른바 법안 처리 ‘우선 순위’에서 밀린 탓이다. 통학버스 신고 의무화를 규정한 법안은 16대 국회에도 제출됐지만, 끝내 처리되지 못한 채 자동폐기된 바 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민생’을 되뇌면서도 이처럼 시급하고도 단순한 법안에 눈을 감고 있는 정치권이 부모들의 분노를 산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녹색어머니회, 세이프 키즈 코리아, 한국어린이안전재단 등은 지난 9일 성명을 냈다.
“최근 국회의원님들께서 삽살개를 보호하기 위해 입법을 추진한다는 보도를 접하고, 국회의원님들께서 우리 아이들의 교통안전보다 삽살개 보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논리적 비약이 없지 않지만, 자식을 ‘교통지옥’에 내보내야 하는 부모의 분노니 어찌 하겠는가.
박용현 기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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