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이 ‘리멤버 0416’ 팻말을 목에 걸고 지하철을 이용해 서울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 남기업 소장 제공
“기억해야 진실규명도 가능하죠.”
1073일 만에 세월호가 물 밖으로 나온 지난 24일, 이를 지켜본 ‘토지+자유연구소’ 남기업(48·사진) 소장의 심정은 누구보다 착잡했다. “온갖 회한이 밀려들고 복잡했지만 그 중 원망이 가장 컸죠. 이것을 3년씩 끌었나. 박근혜 정부에 대한 원망 그리고 자식들의 뼈라도 만져보고 싶은 유가족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라는 생각에 눈물이 났어요.”
세월호 참사 4개월 뒤인 2014년 8월10일, 그는 자신의 목에 ‘리멤버 0416’이라고 새겨진 팻말을 걸었다. 라면 상자 종이를 잘라내 그 위에 글을 썼다. “알고 계십니까? 세월호 유가족들의 특별법엔 세금으로 유가족들 평생 지원하는 의사자 지정도, 대학 특례입학도, 보상금 4억5천만원 등의 요구가 없다는 것을요.”
누구는 ‘세월호 몸자보’라고도 했다. 집이 있는 경기도 수원에서 서울의 연구소 사이를 오가던 그의 출·퇴근길과 외출 때는 물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958일을 함께 했다. 그가 2010년 소장으로 취임한 토지+자유연구소는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평등한 토지권 문제를 연구하는 순수한 민간연구소다.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은 그가 세월호 팻말을 든 이유는 뭘까?
“세월호 참사가 난 이후 3개월 정도는 국민적 애도 기간이었잖아요. 3개월이 지나니 ‘유가족들이 돈 받고 자녀들 대학 특례입학시키려고 저런다’거나 ‘평생 먹을꺼리 마련했다’는 거짓말이 난무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했죠. 그렇다고 광화문에 매일 나갈 수도 없는 일이고 고민 끝에 세월호 진실을 알리자고 결심했죠.”
지하철로 출퇴근하다 보니 우여곡절도 많았다. 지난 22일 출근길 서울 지하철 2호선 당산역에서였다. “저 새끼 뭐여∼.” 세월호 팻말을 무릎에 놓고 좌석에 앉아 책을 보던 그에게 옆칸에서 난데없는 욕설이 들려왔다. 소리가 난 쪽을 보니 한 노인이 적개심 어린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 그가 노인을 응시하자, 노인은 더 퍼부으려던 욕을 중단한 채 그의 시선을 피했다.
전철에서 만난 한 60대 아주머니는 1만원권을 꺼내 그에게 건네 주며 점심을 챙겨 먹으라고 당부했다. 출퇴근길 좌석 맞은 편에서 그의 목에 걸린 팻말을 본 말없는 다수의 시민들은 ‘아 세월호∼’라며 세월호를 다시 떠올리는 눈빛도 확인했다.
시간이 흐르며 그의 팻말은 점차 ‘기억과의 전쟁’으로 옮겨갔다. 팻말 내용도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내용으로 바뀌어갔다. 그는 “2015년부터는 정부와 보수 언론은 ‘세월호를 잊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사람들도 잊는 분위기였죠. 진실규명도 사람이 기억해야 가능한 것 아닌가요. 그래서 그때부터 사람들을 흔들어 깨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설명했다.
곁에서 그를 지켜보던 아내는 3년을 넘자 ‘이젠 그만하지’라며 만류했지만 그는 멈출 수가 없었다.“세월호 유가족들이 저의 작은 행동을 통해 ‘함께 해주는 사람이 있구나’라며 위로를 받았다는 말을 전해들었는데,어떻게 멈추나요?”
2015년 1월부터는 매주 일요일 수도권 전철 1호선인 수원 성균관대역 앞에서 세월호 리본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리본 나눔 행사을 연 지도 지난 26일로 107회가 됐다그의 몸자보는 언제 내릴 수 있을까? 그는 “세월호가 인양됐으니 이젠 왜 침몰했는지, 왜 구하지 않았는지 진실을 알아야죠.진실이 밝혀질 때까지는 계속 하렴니다”고 말했다.
수원/홍용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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