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까지 진행되는 인구주택 총조사의 조사원 나수동(아래 사진)씨와 김영순씨가 10일 각각 서울 미아동에서 조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아예 집안에 안들이기 일쑤…5년전보다 “두배 힘들어요”
‘인구주택 총조사’ 부부조사원 김영순·나수동씨 동행기
‘인구주택 총조사’ 부부조사원 김영순·나수동씨 동행기
“아니, 이 양반아! 이렇게 다리 깁스한 것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10일 오후 4시 서울 강북구 미아6동 가파른 골목길. 열흘째 찾아갔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다가 20분 이상 문을 두드리자 비로소 ‘인구조사’에 응한 50대 남성은 버럭 화를 냈다. ‘10월23~29일 사이 돈을 벌었느냐’는 질문 때문이었다. 인구주택 총조사 표본조사원 나수동(44)씨가 “설문지에 문항이 있어 물을 수밖에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고함 세례는 30분 남짓 이어졌다. “저 정도는 양반입니다.” 나씨와 부인 김영순(44)씨는 합창하듯 말하며 웃었다. 이들 부부는 2000년에 이어 올해 다시 인구주택 총조사 조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통장인 나씨는 2000년 조사 당시 워낙 힘들었던 경험 때문에 이번에는 안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하지만 동사무소 직원의 끈질긴 권유에 조사원으로 나서게 된 부인 김씨가 덜컥 남편 이름까지 몰래 올리는 바람에 다시 한번 부부가 조사원으로 나서게 됐다. “부부가 같이 하면 10시, 11시까지 걱정 없이 함께 다닐 수 있고, 남자는 남편이, 여자는 제가 조사하면 훨씬 쉽잖아요.” 부인 김씨의 얘기다. 5년 전과 달라진 점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부부는 “두 배 이상 힘들다”고 고개를 저었다. 고만고만한 작은 단독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미아6동은 5년 사이 아파트가 잇따라 들어서 얕은 저소득층 밀집지대와 높은 아파트 건물이 섞여 있다. 새 이웃들이 들어왔지만, 인심은 오히려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5년 전에는 ‘나랏일 하느라 고생한다’며 음료수를 건네는 이도 심심찮게 있었는데, 올해는 신분증부터 보여달라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어떤 동료 조사원은 ‘자는 사람 깨운다’며 뺨까지 얻어맞은 경우도 있어요.”
15일까지 진행되는 인구주택 총조사의 조사원 나수동씨와 김영순(윗 사진)씨가 10일 각각 서울 미아동에서 조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아파트 주민들은 아예 조사원들을 문 안으로 들이지 않는다. 44개 문항을 20~30분씩 서서 조사를 하고 나면 다리가 뻐근하다. 5년 전에는 대부분 단독주택이어서 주민이 없을 때는 옆집에 물어서 귀가 시간을 대략 알 수 있었지만, 이제는 옆집에 누가, 몇 명이 사는지도 알지 못한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서 저녁 7시에서 11시 사이에 집중적으로 조사해야 하는 것도 5년 전과 달라졌다. 직장이나 수입, 자녀계획 등을 물으면 “사생활 침해”라며 말문을 닫기 일쑤인 것도 5년 사이 바뀐 점이다. “2년 전에 미아동이 ‘뉴타운’으로 지정되면서 사람들이 개발 기대에 휩싸여서 조사가 더 어려워요. 조사 가면 보상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 주민들이 태반이에요.” 인구 표본조사는 현재 거주자를 정확히 조사해야 하는데, 주민들은 자꾸만 개발에 따른 ‘보상’과 연관이 있을까봐 식구나 가구수를 부풀리려 하는 것이다. 보상을 위해 살지도 않으면서 주민등록만 해 놓은 집도 많지만 그런 상황을 몰라 20차례씩 찾아간 경우도 있었다. 힘은 들지만 지나가면 웃을 만한 이야깃거리들은 많이 남는다.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부부는 재미난 경험담을 주고받으며 웃음으로 피로를 씻는다. “아흔두 살 할아버지를 그제 조사했는데, 질문 하나 드리면 10분 생각하고 답을 하세요. 조사 마치니까 1시간30분이 걸렸더라고요.” “50대 아주머니한테 ‘추가 자녀계획은 없으세요?’라고 물었다가 ‘장난하냐’고 화를 내는데, 아주 혼쭐났지 뭐예요.”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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