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해제 예정인 이화여대 생활환경대.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대 생활환경대 2006년 해체…“소명다해” “대체불가” 논란
“요즘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 돌보는 일을 다루는 가정학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이 어디 있나요? 가정학 퇴보는 현실과 맥을 같이 합니다.”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정과 그 안에서 이뤄지는 기본적 경제활동인 의식주에 대해 다루는 기초학문으로서 대체가 불가능합니다.”
과연 ‘가정대학’과 ‘가정학’은 사라지는 것인가? 가정대학의 원조인 이화여대 생활환경대(옛 가정대)가 없어진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가정학의 학문적 정체성과 필요성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이화여대는 내년 생활환경대학을 없애고 소속 학과들을 다른 단과대에 편입시킨다는 계획안을 6월 말 교육부에 냈다. 이에 해당 학과 교수들과 재학생·졸업생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한가정학회는 호소문을 발표해 “기능적인 직업인 양성만을 표방한 대학은 가정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이해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가정학계 원로들도 잇따라 해체불가론을 폈다.
가정학계는 가정학이 맡아온 역할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일하 세계가정학회 회장은 “가정대는 1929년 이화여대에 처음 생긴 이래 인재들을 배출하며 건실한 가정을 이끌어갈 기반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경희 중앙대 교수(인간생활환경학과)는 “가정대 의류학과는 옷과 인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과로, 디자인 측면을 연구하는 예술대 의상학과와는 다르다”며 “이런 구조조정은 학문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상선 한양대 교수(식품영양학)는 “일본의 경우 오히려 주변 학문을 가정대 범위에 포함시키고 있다”며 “오사카대는 사회복지학 등 복지 관련 학과를 가정대에 편입시켰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가정학이 소명을 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은 자연스럽고, 이는 모든 학문의 숙명이라고 설명한다. 한 대학 관계자는 “가정대는 1980년대 이후 이름이 생활환경대, 생활과학대로 바뀌더니 2000년대 들어서는 또다시 인간개발학과, 소비자학과 등으로 변했다”며 “가정학이란 이름이 풍기는 구태의연함이 인기를 끌지 못했기도 하지만, 산업화·정보화가 진행될수록 가정학이 시대 흐름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이화여대에 앞서 이미 각 대학에서 가정대가 해체돼왔다. 계명대는 2003년 생활과학대를 해체하고 소비자정보학과(옛 가정관리학과)는 경제통상대에, 식품영양학과는 자연과학대에, 의류학과는 패션대에 편입시켰다. 서원대 역시 99년 사범대 가정교육과를 폐지했고, 건국대는 2000년 생활과학대 안에 시각·멀티미디어디자인과 등을 포함시켜 디자인문화대학으로 이름을 바꾼 뒤 지난해 조형·영상애니메이션·영화까지 포함시켜 예술문화대로 바꿨다. 계명대 관계자는 “특히 지방대는 학생 수가 줄어드는 추세여서 학생들 입맛과 이해에 맞게 가정대를 구조조정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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