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한해 동안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583명, 부상자는 4만2880명에 이른다. 피해자는 대부분 운전자와 아무 인연이 없는 ‘타인’이었다. 누구나 음주운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게티이미지뱅크
술을 마신 뒤 운전을 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한다. ‘불면 나올까’ ‘설령 나오더라도 운전하는 데 지장이 있을까’ ‘운이 없어 사고가 날까’ 등등. 음주운전은 수많은 선택 끝에 내린 나의 결정이자 의지일 뿐 실수가 될 수는 없다. 그 선택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게 된다면 어떤 죗값을 받아야 할까.
일요일이던 지난 3월19일 오전, 현역 육군 중사 장아무개(24)씨는 서울 마포구 홍익대 근처에서 술을 마신 뒤 운전대를 잡았다. 때마침 부근을 지나던 순찰차가 이를 발견했다. 좌우로 흔들리는 장씨의 승용차는 음주운전을 의심받기에 충분했다. 경찰은 장씨를 향해 정지하고 차에서 내리라고 말했다. 장씨는 경찰의 정지 요구를 무시하고 달아났다. 장씨는 좁은 골목길로 이리저리 달아난 끝에 뒤쫓던 경찰차를 따돌렸다.
비극은 그 직후 일어났다. 마포구 성산초등학교 앞 교차로였다. 인터넷 설치기사 김신영(33)씨는 출근 뒤 고장수리 신고를 받고 이동하던 길이었다. 신호를 받아 교차로를 가로지르던 순간, 과속으로 정지신호를 위반하고 직진하던 장씨의 승용차가 김씨의 오토바이를 들이받았다. 마침 교차로엔 순찰을 마치고 지구대로 복귀하던 순찰차가 신호대기 중이었다.
장씨의 차는 사고 뒤에도 400m를 더 달아나다 건물을 들이받고 멈췄다. 차에서 나와 도주하던 장씨는 얼마 못 가 경찰에 붙잡혔다. 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7%, 면허정지 수준이었다.
장씨는 어떤 처벌을 받을까?
사고를 당한 김씨는 오른팔을 제외한 전신이 골절됐고 뇌를 비롯한 여러 장기에 출혈이 발생했다. 흉부외과 수술, 일반외과 수술, 정형외과 수술 등 수차례 수술을 버텨내던 김씨는 4월1일 고통 속에 숨을 거뒀다. 김씨에겐 아내와 생후 30개월 된 아들이 있었다.
장씨는 군검찰에 구속 기소됐다. 군검찰은 장씨를 기소하면서 적용한 구체적인 혐의를 밝히지 않았지만, 초동수사를 한 경찰의 설명 등을 종합하면 장씨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도주차량 운전자의 가중처벌)과 도로교통법(음주운전) 위반 혐의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김씨의 유족은 장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씨는 경찰의 정지명령을 무시하고 도주 중이었고 신호를 위반해 사고를 일으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붙잡히지 않으려다 김씨를 치었기 때문에 고의성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군검찰은 김씨의 아내에게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살인으로 인정된 판례도 없고 그 전에 살인 혐의로 기소된 적도 없다’고 답했다.
비록 적용하는 법은 다르지만 장씨가 살인에 버금가는 처벌을 받을 여지는 있다. 특가법의 ‘차량사고 후 도주죄’는 법정형이 세다. 장씨의 경우 ‘도주 후에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 해당돼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다쳤을 경우엔 1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벌금 500만~3000만원)에 처할 수 있다. 형법의 살인죄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처벌하는데 현실적으로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살인죄와 처벌 수위가 같은 셈이다.
물론 현실은 법정형과 거리가 멀다. 지난해 4월 혈중알코올농도 0.101%의 ‘만취’ 상태로 차를 몰다 행인을 치고 달아났던 최아무개씨에겐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됐다. 2015년 1월 크림빵을 사서 귀가하던 20대 남성을 들이받고 도주해 장씨와 같은 혐의로 기소됐던 ‘크림빵 뺑소니’ 사건의 피고인에겐 징역 3년이 확정됐다. 뺑소니 사망사건의 최저 형량은 징역 5년이지만 피고인의 전과가 없고 피해자와 합의를 하면 판사의 재량에 따라 형의 감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3년 이하 징역형은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하다는 점도 변수다. 대법원 사법통계를 보면 2015년 특가법의 ‘차량사고 후 도주죄’로 기소된 4661명 중 1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비율은 63%(2958명)에 이른다. 대법원이 권고하는 양형기준 역시 기본형은 3~5년이지만, 가중하면 4~6년, 감경하면 2년6월~4년형이다. 장씨에겐 길어야 징역 6년형이 선고될 것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집행유예?
음주운전과 뺑소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2016년 한해 동안 발생한 뺑소니 사고는 7990건이었고 이로 인한 사망자는 151명이었는데, 뺑소니 동기 중 가장 많은 비율(17%·1394건)이 음주운전이었다.
뺑소니를 하지 않더라도 음주운전으로 사망·부상 사고를 일으킨 사람을 처벌하는 법 조항이 따로 있다. 특가법 5조의 11 ‘위험운전 치사상죄’는 음주 또는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서 차를 몰아 사람을 다치게 하면 10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 500만~3000만원, 사망하면 1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처벌한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 부상자가 늘어나는 반면 음주운전자의 처벌 수준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와 2007년 제정, 시행됐다.
만약 장씨가 사고를 낸 뒤 도주하지 않았다면 그는 이 조항으로 기소될 수 있었다. 위험운전 치사죄의 대법원 양형기준을 보면 기본형은 8월~2년, 가중하면 1~3년, 감경하면 4월~1년이다. 2015년 이 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람들의 집행유예 선고 비율은 62%. 만약 장씨가 피해자 가족과 합의까지 하게 되면 집행유예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피해자 가족들은 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해마다 조금씩 줄고는 있다고 해도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2015년 한해 동안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583명, 부상자는 4만2880명에 이른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지난해 초 “음주운전 사망사고는 살인에 준해 처벌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렸지만, 법정에서 구현되진 않고 있다. 오히려 검찰은 음주 뺑소니 혐의로 야구선수 강정호를 약식기소했다가 법원이 정식재판에 회부하는 바람에 비난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6월 당시 새누리당 주광덕 의원 등 10명은 특가법의 위험운전 치사상죄의 처벌을 강화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10년 이하 징역을 ‘1년 이상’으로, 벌금 500만~3000만원을 ‘1000만원 이상’으로, 1년 이상 유기징역을 ‘5년’으로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를 뺑소니 사고와 비슷한 수준으로 처벌하겠다는 취지다.
이렇듯 음주운전 처벌 수위는 계속 강화하는 추세지만, 사실 법이 없거나 법에서 정한 처벌 수위가 낮아서 음주운전자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는 건 아니다. 한국 사회엔 술에 관대한 문화가 여전하고 검찰과 법원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를 ‘과실’로 보고 고의범과는 차원이 다른 처벌을 내리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서울지역 법원의 한 판사는 “우리나라는 1970~80년대 산업화 이후부터 줄곧 도로를 확장하고 자동차의 속도를 높이는 데만 고심해왔다. 운전자들의 편의를 위해 형사처벌의 특례를 인정해주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교특법)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것들의 영향으로 (보행자의) 인명을 가볍게 보는 풍조가 더 확산됐다”고 평가했다.
우리 교특법의 핵심은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 사람을 다치게 했더라도 뺑소니나 음주측정불응 등 도로교통법에서 규정한 운전자의 중한 의무사항 위반이 아니라면 ①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처벌할 수 없고 ②보험에 가입돼 있다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특례조항들이 “교통사고에 대한 안일한 사고와 경각심 상실을 부추길 수 있고, 유독 교통사고 과실범에 대해서만 특례를 인정하면서 다른 과실범 처벌과의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문제점과 존폐 논의에 대한 검토, 김봉수. 2013)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결과보다 ‘행위’를 처벌해야”
물론 엄한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경찰청과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이 2008년 펴낸 ‘음주운전 규제 적정화 방안 연구’ 보고서는 “벌금형을 포함한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 강화는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으나 장기적으로 효과가 지속되지 않는다”고 결론 지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음주운전 단속 기준 강화(혈중알코올농도 0.05%→0.03%) 역시 “먼저 추진한 국가마다 다르게 나타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준 강화의) 효과가 감소하여 이전과 같은 사고율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음주운전이라는 ‘행위’보다 사람을 다치거나 죽게 한 ‘결과’만을 고려한 처벌 강화가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다. 일본 오사카대학교 김잔디 박사(법학)는 ‘위험운전에 대한 입법적 대응’(2016)이라는 논문에서 “같은 음주운전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결과에 따라 형벌의 큰 차이가 있는 것에 대한 근거 및 정당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김 박사는 음주운전의 위해성을 인식시키려면 “타인을 다치거나 죽게 한 사실의 유무를 떠나 음주운전 자체를 더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음주운전을 단속하고 교통사고를 조사하는 현장의 경찰들의 생각도 대체로 비슷하다. 음주운전 자체를 막기에도 현행 처벌 수준이 너무 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 현직 교통경찰은 “음주운전으로 단속되면 대부분 벌금형에 그친다. 짧은 기간이라도 징역형을 선고해 음주운전의 심각성을 운전자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음주단속에 적발되면 혈중알코올농도가 0.05~0.1%일 때 징역 6개월 이하 또는 벌금 300만원 이하, 0.1~0.2%일 때 징역 6개월~1년 또는 벌금 300만~500만원, 0.2% 이상일 때 징역 1~3년 또는 벌금 500만~1000만원에 처해진다. 음주단속에 세번째 적발되거나 경찰의 측정요구에 불응할 땐 징역 1~3년 또는 벌금 500만~1000만원이다.
단속이나 처벌 강화뿐만 아니라, 대리운전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사고가 발생할 경우 보상문제 등을 개선하는 등 술을 마신 사람들이 운전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도움을 주는 대안들도 제시되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펴낸 ‘음주운전 억제방안 연구’ 보고서(2010)를 보면, 미국과 영국에선 혈중알코올농도가 0.02%를 초과하면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 ‘시동잠금장치’를 도입해 부분적으로 시행 중이다.
실수로 벌어진 일?
여전히 음주단속에 걸린 운전자들은 “오늘 재수가 없어” 걸렸다고 하소연한다. 그래서 일부는 도주하거나 단속 중인 경찰관에게 욕을 한다. 운전자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어떤 대책이나 처벌 강화도 근본적인 효과를 내긴 어렵다는 걸 여러 연구 결과들이 입증하고 있다. 그 피해는 불시에 누군가와 누군가의 가족을 덮칠 것이다.
장씨의 음주 뺑소니로 숨진 김신영씨의 아내 조아무개씨는 말했다. “장 중사 쪽 보험회사 직원이 합의를 요구하면서 그러더군요. ‘가해자가 나이도 어리고 실수한 거니까 합의를 해달라’고. 그게 정말 실수인가요?” 음주운전과 뺑소니 사건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분석한 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2015년)를 보면 피해자의 절대다수는 공무원도 친구도 가족도 아닌 ‘타인’이었다. 음주운전은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선택이다. 박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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