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장애인 권리 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공익변호사 로펌인 ‘장애 인권 오리건’(Disability Rights Oregon·DRO)에서 제작한 ‘쉬운 유권자 공약집’의 일부분. 당시 질 스타인 대선 후보(녹색당) 부분을 보면, 후보자의 사진과 간단한 이력, 핵심 공약 3개가 쉬운 그림과 함께 설명되어 있다. ‘장애 인권 오리건’ 제공
지난해 10월, 제45대 미국 대선을 한달여 앞두고 미국 오리건주의 정부 기관, 장애인 단체, 도서관, 학교 등 공공기관에 ‘쉬운 유권자 공약집’이 배포됐다. ‘기회, 접근, 선택’이라는 모토 아래 장애인 권리 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공익변호사 로펌인 ‘장애 인권 오리건’(Disability Rights Oregon·DRO)이 제작한 이 책자는 발달장애인들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만든 ‘친절한’ 공약집이다.
‘쉬운 유권자 공약집’은 큰 글씨체와 간단한 단어, 그리고 한눈에 알아보기 쉬운 그림으로 이뤄져 있다. 특히 초등학교 수준의 학생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쉬운 영어 단어로 유권자 등록 방법부터 투표 방식까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선거에 나서는 후보자 설명도 최대한 간결하게 나와 있다. 지난 대선 녹색당 후보였던 질 스타인의 경우, ‘의사, 환경운동가’라는 간략한 이력과 함께 거주 지역, 소속 정당을 함께 소개했다. 후보자 사진 아래에는 ‘2천만개 녹색 일자리, 100% 녹색 에너지’, ‘무료 건강보험’, ‘무상 대학교육’이라는 3가지 핵심 공약을 단순화한 그림과 함께 한 문장으로 설명했다. 공약집 제작에 참여했던 에스터 할로(37) 변호사는 <한겨레>와 한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쉬운 공약집의 핵심은 ‘명료함’이다. 발달장애인들에게는 그림 역시 쉬운 소통수단이기 때문에 공약 설명에서도 단순화한 그림을 많이 이용했다”고 했다.
‘장애 인권 오리건’ 로펌은 2012년 대선, 2014년 중간선거에서도 미국의 참정권 단체인 ‘여성유권자동맹’(LWV)과 함께 발달장애인 유권자들을 위한 공약집을 내놓은 바 있다. ‘장애 인권 오리건’은 독립 단체이지만, 공약집 발간 비용은 오리건 주정부의 지원을 받아 충당했다고 한다. 할로 변호사는 “후보자에 대해 발달장애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공약집의 목표”라며 “많은 사람들이 쉬운 공약집에 호응을 보냈다. 요청하는 곳이 있으면 공약집 복사본을 보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도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공약집을 발간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발달장애인의 정보 접근 평등을 위해 청년들이 모여 만든 비영리 민간단체인 ‘피치마켓’은 지난 4일 19대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발달장애인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재구성한 공약집을 무료 전자책으로 출판했다. 피치마켓이 발간한 전자책을 보면, 문재인·안철수·홍준표·유승민·심상정 등 5개 원내정당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 삽화 70여개와 함께 설명되어 있다.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왜 일자리가 늘어나나요?’, ‘검찰이 무엇인가요?’ 등 후보들의 선거 공약과 관련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도 그림과 함께 쉽게 풀이했다.
함의영(35) 피치마켓 대표는 “참정권은 발달장애인의 인권에 있어서도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라며 “이번에 발간한 책자를 통해 발달장애인들이 실제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바란다”고 했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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