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대선 투표소에서 만난 시민들
세월호 참사서 동생 잃은 박보나씨
“네 학생증 걸고 네 몫까지 심판”
위안부 피해자 90살 이옥선 할머니
“새 대통령, 일본에 당당히 맞서길”
전주 최고령 107살 할아버지도 한 표
고공농성 노동자들은 투표 못하고
“스스로 목소리 내야” 다짐으로 대신
세월호 참사서 동생 잃은 박보나씨
“네 학생증 걸고 네 몫까지 심판”
위안부 피해자 90살 이옥선 할머니
“새 대통령, 일본에 당당히 맞서길”
전주 최고령 107살 할아버지도 한 표
고공농성 노동자들은 투표 못하고
“스스로 목소리 내야” 다짐으로 대신
제19대 대통령 선거일인 9일 시민들은 궂은 날씨에도 이른 아침부터 투표장으로 몰렸다. 세월호 사고에서 살아남은 단원고 학생들이 처음으로 대선에서 권리를 행사했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107살 할아버지도 투표에 나섰다. 남녀노소 표정은 저마다 달랐지만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열망은 한결 같았다. 이번에도 ‘19금’ 규정에 발이 묶인 청소년들과 광화문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투표에 참여하지 못했다.
■ 사전투표 ‘유혹’ 참고 기다린 투표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방지영(45)씨는 사전투표 유혹을 참고 9일을 기다렸다. 방씨는 “촛불 시민의 힘으로 나라를 엉망으로 만든 정치 세력을 심판하고,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어서 손꼽아 기다리던 선거였다. 사전투표는 불안해서 본선거날을 기다렸다”고 말했다.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 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인근 퇴촌면사무소를 찾아 투표했다. 이옥선(90) 할머니는 오전 9시께 부축을 받으며 투표를 마친 뒤 “일본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대통령을 뽑기 위해 나왔다”며 “그동안 (진정한) 사죄를 못 받아서 애를 썼는데 이번에 당선되는 대통령은 일본에 공식사죄와 법적 배상을 반드시 받아냈으면 한다”고 말했다고 나눔의 집 쪽은 전했다.
10년 동안 제주해군기지 반대투쟁을 벌여온 서귀포시 강정마을 의례회관에도 아침 일찍부터 주민 발길이 이어졌다. 나뭇가지가 크게 흔들릴 정도로 바람이 세찼지만, 만 10년 고통을 겪어온 주민들의 발길을 묶지는 못했다. 이날 아침 8시30분께 투표를 마치고 나오던 문상철(55)씨는 “주민들은 다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주민과 마을회 등을 상대로 내건 거액의 구상권 청구소송을 철회하고, 마을 공동체 회복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처럼 주민들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강아무개(65)씨는 “해군기지 때문에 주민들이 원수가 됐다. 해결해 줄 후보한테 투표했다. 새 대통령이 풀어줘야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고, 안진욱(73)씨는 “이런 주민 갈등을 해결해줘야 하고, 정치를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주지역 최고령 유권자 107살 허윤섭 할아버지도 한표를 행사했다. 지금까지 치러진 선거에 한 번도 빠짐없이 참여해왔다는 허씨는 “서민들을 위한 훌륭한 대통령이 당선돼 우리나라가 걱정없이 잘 사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투표를 하겠다”고 말했다.
■ 세월호 생존학생들 첫 투표
세월호 참사 당시 극적으로 살아온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출신 학생들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생존학생 대부분 1997년생이어서 올해 처음으로 유권자가 됐다. 4·16가족협의회 생존자위원회 대표를 맡은 장동원씨는 “내 아이를 포함해 오늘 상당수가 투표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낱낱이 규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겠다’고 부모들에게 말했다”고 전했다.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 모임인 ‘메모리아’는 지난달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국민) 여러분이 잊지 않고 기억해 준 덕분에 드디어 세월호가 인양됐다. 이제 진실을 밝힐 일만 남았다. 계속 힘을 보태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도 세월호 희생자의 마음을 담아 투표장을 찾았다. 동생 박성호군을 떠나보낸 박보나(23)씨는 투표를 마친 뒤 페이스북에 “우리가 첫 대선 투표를 하는 날인데, 너와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게 참 슬프고 화가 난다”며 “그래도 네 몫까지 투표하고 심판하겠다는 마음으로, 너와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너의 학생증을 목에 걸고 투표하고 왔다”고 밝혔다.
■ “우리도 투표하고 싶다”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청소년단체와 장애인들의 목소리도 울려퍼졌다. ‘2017 대선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오전 11시께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장애인도 차별 없이 평등하게 투표하고 싶다”며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청소년 인권 행동 아수나로 등 청소년단체들도 오후 2시께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청소년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5·9 선거일 집회’를 열었다.
지난달 14일부터 광화문 빌딩에서 고공단식농성을 해온 노동자 5명은 이날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농성중인 김혜진(48) 하이텍알씨디코리아 공투위원장은 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새 대통령이 국민들의 열망 담아내야겠지만,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며 ‘투표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들은 10일 오후 1시 고공농성을 끝내고 빌딩에서 내려온다.
박수진 박수지 기자, 최호진 교육연수생, 전국종합 jjinpd@hani.co.kr
제19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일인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신동 종로구민회관에 마련된 창신제1동 제2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올해 107살로 전주지역 최고령자인 허윤섭 할아버지가 9일 투표하고 있다. 전주시 제공
9일 오후 한 청소년이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근처에 마련된 ‘청소년 모의 대선’ 서울투표소에서 투표를 한 뒤 투표함에 기표용지를 넣고 있다. 임세연 교육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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