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콘돔 구입은 탈선도 불법도 아니지만 일부는 법적으로 일부는 관습적으로, 콘돔은 여전히 청소년에게 유해한 물건으로 취급되고 있다. 피임과 성병 예방을 위해 장려돼야 할 콘돔이 불순한 것으로 인식돼 청소년의 접근이 제한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 ‘기능성 콘돔’이라는 게 있습니다. 사랑의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진 콘돔입니다. 그런데 법은 이 콘돔들을 청소년에겐 팔지 못하게 합니다. 음란하다는 거죠. 20년 동안 유지됐던 이 법이 최근 헌법심판대에 올랐습니다. 어떤 결정이 내려질까요?
“해수욕장 주변 약국에는 콘돔 등 피임기구를 사려는 청소년이 거리낌 없이 들락거리는 모습도 눈에 띈다.”(<동아일보> 1997년 7월30일 ‘청소년보호법 “있으나 마나” 피서지 상혼 탈선 부채질’)
20년 전 세상은 청소년이 콘돔을 사는 걸 ‘탈선’이라고 했다. 당시에도 콘돔이 청소년 판매금지 품목은 아니었다. 그럼 2017년엔 얼마나 달라졌을까.
콘돔엔 ‘나이 제한’이 없다. 누구나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 설치된 자판기에서도 콘돔을 판다. 반면, 담배나 술은 자판기에서 팔 수 없다. 만 19살 이상만 구입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청소년의 콘돔 구입은 탈선도 불법도 아니다.
그런데 콘돔 중에서 유독 청소년에게 판매가 금지된 종류가 있다. 이른바 ‘기능성 콘돔’들이다. 근거는 무엇일까. 우리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에게 음란한 행위를 조장하거나 청소년의 심신을 심각하게 손상시킬 우려”가 있는 물건은 ‘청소년 유해물건’으로 지정해 판매를 제한한다. 이 법에 따라
여성가족부는 ‘요철식 특수콘돔’과 ‘약물주입 콘돔’(사정 지연 콘돔)을 청소년 유해물건으로 지정해 청소년에게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성인엔 무해한데 청소년엔 유해?
기능성 콘돔도 일반 콘돔과 마찬가지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안전성 등을 허가받은 의료기기다. 그럼에도 이들을 청소년 유해물건으로 지정한 여가부 고시(2013-51호)의 배경엔 ‘청소년은 쾌락을 추구해선 안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관련 여성가족부 고시를 일부에서 ‘쾌락통제법’이라 비꼬는 이유다.
이 쾌락통제법이 얼마 전 헌법재판소 심판대에 올랐다. 청소년보호법의 청소년 유해물건 지정 기준인 ‘청소년의 심신을 심각하게 손상시킬 우려’라는 부분이 명확하지 않고, 여가부 고시가 상위법인 청소년보호법에서 규정한 권한 이상으로 청소년 유해물건을 지정해 적용하고 있다는 게 위헌 소송의 이유다. 청구 이유엔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고등학교 3학년생 한채림(18)씨는 지난 4월18일 섹슈얼 헬스케어 업체 ‘이브’(EVE)와 함께 헌법소원을 제출했다. 이브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쾌락통제법 위헌 소송을 함께 할 서포터스를 모집했고 한씨가 이에 응했다.
한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청소년의 성관계를 ‘통제해야 할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청소년 보호와는 거리가 먼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왜 청소년들은 성인에겐 허락된 쾌락을 알면 안 되는지 모르겠다. 이는 성관계를 오로지 임신을 위한 과정으로만 생각하라는 얘기”라며 “청소년의 섹슈얼리티를 억압하기만 하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가부 고시를 보고 깊은 분노를 느껴 헌법소원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씨는 헌법소원 청구서에 “성관계를 할 때 피임을 할 것인지 여부, 피임을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 역시 성적 자기결정권에 해당한다”며 “여가부 고시는 청소년 유해물건으로 지정된 콘돔을 사용하여 피임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므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씨와 함께 헌법소원에 참여한 성민현 이브 대표는 청소년에게 요철식 콘돔을 판 혐의(청소년보호법 위반)로 지난 1월 벌금 20만원의 약식기소된 적이 있다. ‘요철’이란 오목하고 볼록하다는 뜻. 그가 판 콘돔은 정말 “청소년이 사용할 경우 신체 부작용을 초래하거나 음란성, 비정상적 성적 호기심을 유발할 우려”(청소년보호법 시행령 4조 청소년유해물건의 결정기준)가 클까?
성민현 이브(EVE) 대표가 청소년에게 팔다 고발당해 약식기소된 돌출형 콘돔.
성 대표를 범법자로 만든 콘돔은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다. 표면 돌기의 크기나 형태와 상관없이 ‘밋밋’한 형태가 아니면 일괄적으로 요철식 콘돔으로 분류된다. 우리 대법원은 2000년 “돌출 콘돔 자체가 성욕을 자극, 흥분 또는 만족시키게 하는 물건으로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치는 ‘음란한 물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2000도3346)
반면
여가부 고시는 이런 요철식 콘돔을 일률적으로 청소년 유해물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요철식 콘돔, 약물주입형 콘돔은 1997년 청소년 유해물건으로 지정돼 20년 동안 유지되고 있다. 한씨가 낸 헌법소원 청구서를 보면 1997년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이 콘돔들을 유해물건으로 지정하면서 참고한 전문가 의견이 포함돼 있다.
“성적 자극 감각에만 탐닉할 수 있어 청소년에게 유해” “여성 성기에 자극을 가해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음” “성의 사행심을 조장할 우려가 있음”
성 대표는 “백번 양보해 이 지적들이 맞는다면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판매를 제한해야 하는 무시무시한 내용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헌법소원 청구서에 “시중에 판매되는 기능성 콘돔들은 식약처의 ‘의료기기의 생물학적 안전에 관한 공통기준규격’을 충족한 제품들이다. 이 제품들을 객관적인 근거 없이 ‘청소년의 심신을 심각하게 손상시킬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판매를 금지하는 여가부 고시는 청소년보호법이 위임한 범위를 벗어나 위헌적”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19금’이 된 콘돔
한채림씨와 성민현 대표가 낸 헌법소원 청구서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청소년보호법 조항과 여가부 고시로 인해 콘돔은 성인용품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만들어진 탓에 청소년들이 정상적으로 피임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원천봉쇄되고 있다.”
여가부 고시는 그 자체로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로 인해 누구나 구입 가능한 일반 콘돔들에도 ‘19금 딱지’를 붙이는 효과를 낳고 있다. 청소년의 콘돔 구입에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차원을 넘어서 접근 자체가 사실상 차단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더 심각하다.
현재 편의점이나 약국 등에서 콘돔은 나이 제한 없이 판매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콘돔을 집어들고 계산대 위에 올려놓은 뒤 가게 직원이 바코드를 찍기까지는 성인들에게도 꽤나 긴 시간이다. 행여 다음 손님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불편함은 더욱 커진다. 온라인에서 ‘콘돔 접근성’이 더 커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많은 콘돔 쇼핑몰들은 택배 상자에 ‘사무용품’이라고 적어 배달한다.
기능성 콘돔에 ‘19금’ 딱지 붙인
여성가족부 고시에 헌법소원
“자기결정권·명확성 원칙 침해
청소년의 성 억압하려는 발상”
일반형 콘돔 구입은 합법인데
포털·쇼핑몰서 콘돔은 ‘19금’
‘성=어른들만의 것’ 편견 탓에
청소년의 피임 방법만 봉쇄돼
포털 검색창에 “콘돔”을 입력해봤다. 네이버와 다음 모두 제한된 검색 결과를 보여주면서 성인 확인을 요구했다. 온라인 쇼핑몰도 대부분 성인 인증이나 로그인을 하지 않고서는 콘돔을 구입할 수 없게 돼 있다. 일부 콘돔 전용 쇼핑몰들만 ‘19금’ 콘돔과 그렇지 않은 콘돔을 구별한 뒤, 일반 콘돔은 성인 인증 없이 또는 비회원으로도 구입할 수 있게 돼 있다.
대형 종합쇼핑몰의 경우 콘돔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어 일반형과 19금을 구별하는 장치를 마련하지 않는 실정이다. 한 대형 쇼핑몰 관계자는 “여가부는 ‘기능성 콘돔만 청소년의 구매를 제한하라’고 하는데, 일일이 우리가 그걸 구별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일괄적으로 청소년의 구입을 제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포털들의 정보 제한을 모두 여가부 고시 탓으로만 돌리기엔 무리가 있다. 네이버나 다음은 청소년보호법에서 정한 청소년 유해물건과는 무관하게 기능이나 사용법 등 콘돔 자체에 대한 정보에도 대부분 19금 딱지를 붙였다. “유해정보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라는 게 그들의 설명이지만 구체적인 정책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네이버 관계자는 “사용자가 어떤 의도로 콘돔을 검색하는지 일일이 판단하기 어려워 성인 인증을 걸어놨다. 그렇다고 모든 결과물을 차단하는 건 아니다. 신뢰성이 인정된 정보 등은 성인 인증 없이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지식백과 결과 등은 누구나 볼 수 있는 반면 블로그나 카페 게시글 등은 성인 인증이 필요하다”고 예를 들었다. 이 관계자의 말을 따라 네이버에 로그인 없이 ‘콘돔 사용법’을 검색해 봤다. 몇 안 되는 지식백과 검색 결과 중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콘돔의 기본 기능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이 전부다. 반면 로그인을 한 뒤 같은 내용을 검색하면 그림과 친절한 설명이 포함된 블로그글과 지식인(iN) 답변들이 검색된다. 블로그나 지식인의 내용들은 사용후기 등이 많아 신뢰성 여부와 무관하게 이용자들이 유용하게 활용하는 정보들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네이버는 “정보를 제한하는 건 아니”라며 “사회적 합의가 있으면 (제한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은 다음도 마찬가지다.
성은 어른들의 것?
성민현 대표는 헌법소원을 낸 것과 관련해 “성은 오로지 어른들만의 것이라는 편견을 깨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편견은 깊고도 ‘넓다’.
실제로, <한겨레> 토요판에 연재 중인 ‘이런, 홀로!?’ 코너의 지난 3월4일치 ‘혼자서 만나는 내 몸…왜 우린 말하지 않았을까요?’ 제목의 기사는 최근 구글로부터 성인용 콘텐츠 판정을 받았다. 로그인 없이 검색창에 ‘길거리’라는 단어만 입력해도 ‘몰카성’ 사진이 끝도 없이 검색되는 구글이 성인용 콘텐츠를 구별한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여성의 자위’를 다룬 외부 기고를 ‘성인용 콘텐츠’로 분류했다는 점도 선뜻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에 대해 구글 쪽은 “‘누드 및 포르노’ ‘노골적인 문구 및 극단적인 비속어’ 등이 담긴 콘텐츠를 성인용으로 구별해 광고 게재를 제한하고 있는데 여성의 자위를 다룬 ‘이런 홀로’의 기사가 ‘성적 조언 및 성적 건강’ 항목에 해당돼 성인용 콘텐츠로 분류됐다”고 알려왔다. ‘혼자서 만나는…’을 쓴 혜화붙박이장(필명)은 이 소식을 듣고 “성인만 자위하나 보다”라는 짤막한 말을 남겼다. 콘돔과 마찬가지로 자위 역시 청소년에겐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피해’는 오롯이 청소년에게 돌아간다. 질병관리본부가 2016년 청소년 6만5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 조사 통계’를 보면 한국 청소년들의 성관계 경험률은 4.6%였다. 성관계를 처음 시작한 평균 나이는 13.1살이었고, 성관계 경험자 중 51.9%만이 피임을 했다고 답했다. 여학생들의 임신 경험률은 0.3%였지만 이들 중 81%가 임신중절수술을 했다고 밝혔다. 임신중절수술이 불법인 한국에서 당사자들이 겪어야 했을 고통과 따가운 시선들을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여전히 많은 학교에서의 성교육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 착상을 한다’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교육을 받았다”고 답한 청소년은 네명 중 한명꼴이지만 콘돔 사용법 같은 실질적인 내용이 담긴 성교육은
학교에 따라, 교사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한채림씨는 “콘돔 구입의 어려움 여부를 떠나, 친구들 중엔 성관계를 하는 데 콘돔이 필요하다는 인식 자체가 없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콘돔은 피임과 성병 예방을 위해 현재까지 입증된 가장 간편하고도 확실한 수단이다. 성인들에게 필요하다면 청소년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성은 어른들만의 것도 아니고 숨겨야 하는 것도 아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