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부산아펙] 아시아 새질서와 탈냉전의 한반도 연속대담 ① 문정인-폴 브래큰
아시아의 새 질서와 한반도의 탈냉전은 필요충분 조건처럼 맞물려 있다. 한반도의 탈냉전 없이 동북아의 협력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아펙을 계기로 한반도의 탈냉전을 선언하려던 정부의 구상은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독일통일과 유럽의 통합’ 관계처럼 하나의 관점이 요구된다. 지난 11월11일~12일 아펙 공식행사의 하나로 한겨레통일문화재단과 부산광역시 그리고 부산광복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공동주관한 국제심포지엄 ‘아시아의 새 질서와 연대의 모색’에서는 이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지는 못했다. 이에 이 회의에 참석한 미, 일, 중의 학자와 국내 학자의 3차례에 걸친 대담을 마련해 이를 보완했다. 문정인 “노무현정부 ‘균형자 정책’ 중국 편든다 오해
미, 양자관계만 추구하는 관성에 젖어있어” 브래큰 “미국도 실수하고 실수에서 배워
한국, 허락만 기다리지 말고 먼저 행동을” 문정인=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 역할에 대해 근본적이고 심각한 오해가 있었다. 미국의 전문가들과 정책결정자들 다수는 이 정책이 한국이 전통적 한미일 동맹축에서 벗어나 중국에 편승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조화적 균형자론은 강한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 동맹 관계를 중국과 러시아와의 협의까지 포함하는 나토식의 종합적이고 역동적인 관계로 만들고, 동시에 높은 투명성과 예측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폴 브래큰=가장 충성스러운 동맹이 가장 좋은 동맹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유럽의 동맹들은 미국에 대해 지역 문제의 유용한 비판자 구실을 했다. 문=한국은 가장 성공적인 동맹의 피해자다. 우리는 한번도 미국에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없는 가장 충성스럽고 순응적인 동맹이었다. 그러나 남북관계 등 안보 상황이 변화해 우리가 미국에게 “동맹도 새로운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니 미국은 “당신들은 변했다, 당신들은 중국편을 든다”고 비난한다. 브래큰=한국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선언적인 제안이 아니라 실무 차원에서의 구체적인 행동이다. 이를 테면 한국의 군사적 구조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문=당신은 세력균형론이 케케묵은 개념이며 동북아에서는 적용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는데. 브래큰=기계적인 세력균형론은 냉전시대 때부터 사라졌다. 문=그렇다면 동북아 안보에 대한 당신의 구상은 무엇인가? 브래큰=세력균형이 아니라 가능성을 다양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중국의 군비증강에 대해 미국은 인도, 일본 같은 나라들과 협업하며 미래에 대비하고 있다. 이것은 세력균형은 아니다. 문=세력균형과 미국이 말하는 양자관계에 기반한 허브 네트워크 방식을 비교해보자.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헤게모니적 지위를 행사하고, 이것은 매우 위계적인데 단극체제와 다극체체가 공존할 수 있는가? 브래큰=우리가 말하는 것은 다극체제와 단극체제의 조합이다. 미국의 헤게모니는 현실이지만 미국의 힘을 핵무기 보유수나 국방비로 가늠한다면 그것은 국력을 철강 생산량으로 재는 것만큼이나 뒤떨어진 방식이다. 그리고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나토의 동맹국들과는 매우 다르다. 나토에서는 공동의 문화와 2차대전의 경험을 공유하는 부분이 매우 컸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그렇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는 한국이 가장 적합하고 믿음직한 미국의 동맹이다. 문=9·11 이후 미국은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가 말한 ‘전도된 구체성의 오류(fallacy of misplaced concreteness)’에 빠진 것 같다. 이 시대의 진정한 안보 문제는 에너지 안보와 조류독감 등 인간안보 분야에 있는데 9.11로 어느날 갑자기 군사 안보가 모든 것이 되었다. 브래큰=9·11에서 우리 아들 딸이 죽었기 때문에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모든 문제들이 군사화하고 있다. 입장이 더 강해지고 감정적으로 변하면서 타협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에너지 문제에 있어 군사적인 해법이 가능하다면 나도 지지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이런 경향은 차차 해소될 것이다. 문=6자회담의 전망을 어떻게 보는가? 브래큰=회담은 긴장을 완화하고 가라앉히는 데 매우 유용할 것이다. 나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보고, 북한정부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군사적 해답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회담은 계속해야 한다. 문=2003년 2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시절 워싱턴에 갔을 때 분위기는 마치 94년 영변 폭격 논의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미국은 냉철한 사태판단을 했다. 그러나 미국의 접근법은 여전히 ‘적대적 무시’ 정책으로 북한을 고립하고 봉쇄함으로써 정권교체를 꾀하는 것이었다.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지 않고는 핵문제 해결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제 4차 6자회담 이후 진정한 외교적 해결이 모색되고 있다고 보는데.
아시아 새질서와 탈냉전의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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