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1일 오후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통과됐다. 이날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위장전입 이낙연, 문재인은 철회하라’, ‘인사 실패 협치 포기, 문재인 정부 각성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피켓 시위를 벌였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는 고위 공직에서 배제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각종 도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고위 공직자로 임명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 정부 인사에서 위장전입을 한 적이 있는 후보자가 잇따라 나오자 ‘고위공직 배제 5대 원칙’을 손보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입니다. 위장전입은 주민등록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중대한 범죄인데요. 이를 어겨 처벌받았다는 고위 공직자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주민등록법이 왜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지 따져보았습니다.
서울시 마포구에 사는 전아무개(55)씨는 과거 ‘3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지는 범죄를 저질렀다. 그런데 자신이 심각한 불법 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10여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된다. 그가 했던 일은 이랬다.
결혼하고 10년 가까이 66㎡(약 20평) 남짓한 집에서 아내와 아들 둘, 부모님까지 여섯 식구가 함께 살았다. 2001년 마을버스로 4개 정거장 거리에 집을 마련해 분가한다. 사는 집이 달라졌지만 부부가 일을 하는 동안 할머니가 아이 둘을 돌보았고, 퇴근길에 부모님 집에 들러 아이들을 데려오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 아들 초등학교 취학통지서가 나올 때쯤 고민이 생겼다. 초등학생인 큰아들을 이사 온 동네 학교로 전학시킬 것이냐, 작은아들을 큰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보낼 것이냐. 방과 후 돌봄을 할머니가 맡고 있는 상황에서, 작은아들을 큰아들 학교에 보내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이유로 작은아들 주소를 부모님 집으로 등록했다가 초등학교에 입학 뒤 이를 되돌렸다. ‘위장전입’을 한 것이다.
‘빵 한 조각, 닭 한 마리에 얽힌 사연이 다르듯’ 위장전입을 한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법적으로 ‘종류가 다른 위장전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도와 목적이 어떻든, 주민등록법에 따라 위장전입은 그 자체로 형사처벌 대상이다. 외국인을 제외한 한국 ‘주민’들은 30일 이상 거주 목적으로 살고 있는 주소를 시·군·구 관할구역에 ‘등록’해야 한다. 주소를 옮길 시 14일 이내에 정당한 사유 없이 전입신고를 하지 않으면 5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주민등록을 이중으로 하거나 거짓 신고할 경우엔 ‘3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형’(주민등록법 제37조 3의2)에 처한다. 바로 이 규정에 따라 실제로 살지 않는 지역에서 주민등록을 하는 위장전입은 심각한 범죄로 불린다. 주민등록상 주소에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국가의 요구에 불응하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30일 이상 거주지 관할구역 등록해야 이중등록·거짓신고 ‘3년 이하 징역’ 국가가 등록한 주소에 살 것을 요구 미국·유럽선 주민등록 강제하지 않아 “거주이전의 자유 제약할 우려”
1962년 ‘전국민 등록’ 주민등록법 제정 1980년대 이후 위장전입 불거질 때마다주민등록법 처벌 및 관리 강화 요구 “사회변화 반영해 처벌 규정 삭제하고부동산 투기 등 관련법에서 처벌해야”
등록 주소에 살지 않으면 무조건 불법?
국가마다 방식은 다르지만, 등록제를 통해 인구 변동을 살피고 복지와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거주지 등 필요한 정보를 수집한다. 한국에서 주민등록상 주소는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복지 제공을 비롯한 모든 행정의 기본 정보로 활용된다. 각 행정부처·공공기관이 행정자치부가 총괄하는 주민등록 정보를 공동으로 이용하는 체계다. 국가 차원에서 주민등록을 강제하고 방대한 수집 정보를 통합관리하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인권법학자인 백태웅 미국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는 전 주민의 주거등록을 강제하고 처벌하는 규정이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모든 사람은 자국 영토 내에서 거주이전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제약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국가는 공동체를 유지해야 하므로, 개인의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지만 법을 통해서 꼭 필요한 만큼만 최소화해야 한다. 현행법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소지를 등록하게 하고, 그 거주지를 이탈한 채로 등록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고 거짓 내용을 기재하면 형사처벌하는 구조다. 등록한 데서만 살아야 한다는 건데 ‘국가주의’적 접근이다. 이런 방식의 등록제도는 서양에선 없다. 미국의 경우 운전면허, 출생신고, 사회보장번호(SNN), 우편물 배달 등록 등이 있는데 구체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기관별로 개별적인 등록이 이루어진다. 등록을 안 하는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지만 등록 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처벌하진 않는다. 다만 운전면허든 출생신고든 개별 등록 과정에서 거짓 정보를 제출해 해당 법이 정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할 경우엔 사안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살지 않는 지역에서 주민등록을 하는 ‘위장전입’은 주민등록법에 근거해 징역 3년 이하의 형벌을 받을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은 1962년 국민 감시와 통제를 목적으로 주민등록법을 제정됐다. 주민등록증 발급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1968년 11월21일자 <경향신문> 기사. 한겨레 자료
국민 통제·감시 위한 주민등록법
주민등록법은 왜 실제 사는 곳에서 주민등록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처벌을 규정한 것일까? 애초 이 법이 주민 편익보다는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주민등록제도의 뿌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는 조선인들의 혈연적 신분관계를 등록하는 호적제에 이어 1942년 주거지 신고를 의무화한 ‘조선기류령’을 제정한다. 90일 이상 본적지를 떠나 거주하거나, 본적이 불분명한 사람은 이 사실을 관할 행정기관에 신고해야만 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조선인들을 파악해 강제징용·징병을 효율적으로 집행한 것이다.
1961년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이듬해 조선기류령을 강화한 주민등록법을 공포한다. 55년 전 만들어진 법은 현행 주민등록법과 거의 비슷하다.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일정한 장소에 주소를 가진 자는 등록을 해야 하며 거주지를 이동할 경우, 이동한 날부터 14일 이내에 퇴거·전입신고를 마쳐야 한다. 이 기간 내에 신고를 하지 않으면 3천환 이하의 과태료, 거짓 신고를 하거나 조사를 거부하면 3만환 이하 벌금 또는 구류(1일 이상 30일 미만으로 교도소나 경찰서 유치장에 가두는 형벌)에 처했다. 당시엔 주민등록번호나 주민등록증도 존재하지 않았다. 1968년 1월21일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는 사건이 터진다. 이를 기점으로 우리 사회 각 부문에는 군대식 시스템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그해 박정희 정권은 법을 개정해 모든 주민들에게 식별번호를 부여하고, 지문 날인과 사진이 포함된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도록 했다. 이로써, 모든 국민의 거주지 및 이동상황 등록, 개인식별번호 부여, 국가신분증 발급 등 세 개의 축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한국형 주민등록제도’가 탄생한다.
주민등록지와 거주지 어긋나면 간첩 의심
1971년 7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를 어렵게 따돌리고 3선에 성공한 박정희는 1972년 비상계엄을 선포해 국회를 해산시킨 뒤 유신헌법을 통과시킨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1975년 7월 처벌이 대폭 강화된 주민등록법 개정이 이뤄진다. 주민등록 시 거짓 사실을 신고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기로 한 것이다. 그해 6월19일 <동아일보>가 내부무의 주민등록법 개정안을 보도한 내용을 보자.
“주민등록은 원래 거주지에 하기로 돼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자녀들 학군을 위반하기 위해, 신분을 감추기 위해, 전화를 놓기 위해, 부동산 매매를 위하는 등 주로 위법·탈법 수단으로 흔히 행해져왔다. 주민등록과 실제 거주를 일치시키면 간첩 색출, 강력범 등 범인 수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실거주지가 아닌 곳에서 주민등록을 하는 사람은 ‘수상하다’고 여겨졌다. 더 나아가 부동산 투기 같은 불법과 편법을 저지른 사람으로도 간주됐다. 언론보도에서 위장전입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건 1980년대 초반부터다. 당시, 서울 강북 및 다른 지역 초·중·고생들은 교육 환경이 좋은 서울 강남지역으로 몰렸다. 과밀현상이 심각해지면서 전두환 정권은 ‘위장전입 학생’ 색출 작업에 나선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무더기’로 주민등록을 옮기는 사례가 발생했다. 특정 지역 아파트 분양을 받기 위해 외지인들이 해당 주민 이름을 빌리는 일도 빈번했다.
현재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위장전입’이란 단어엔 실거주지에서 주민등록을 하지 않는 행위뿐 아니라 부동산 투기 등 다양한 나쁜 행위들까지 광범위하게 뭉뚱그려져 있다.
사회 지도층의 부동산 투기 행위를 보도한 <한겨레> 1990년 5월12일자 기사. 주민등록만 옮긴 뒤 농지를 사들여 거액의 차액을 챙긴 사례도 포함돼 있다.
실효성 없는 전입신고 처벌
위장전입이 사회 문제로 부각될 때마다 ‘주민등록지와 실거주지를 일치시키도록’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질타가 이어졌다. 이러한 까닭에 40년이 넘도록 강한 처벌조항이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장전입은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지금의 법이 현실에 맞지 않거나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주민등록법 소관 부처인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수사기관에 고발한 거짓 전입신고자는 195명이다. 주로 어떤 사유로 거짓 전입신고를 해 수사까지 받는 걸까. 김군호 행자부 주민과장은 “등록된 거주지에 실제로 사람이 사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거지, 그 사유까지 따지진 않는다”며 “주민 편익과 행정사무 적정 처리를 목적으로 하는 만큼 규제를 무리하게 적용하기보단 거짓 신고를 발견할 경우 바로잡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법을 집행하는 입장에선 실거주지가 아닌 지역에서 주민등록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현행법의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기 쉽지 않다.
더구나 한 지역과 국가에 머물지 않고 떠도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일시적이든 지속적이든, 주민등록지와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많아질 것이다. 현행 주민등록법으로는 이러한 변화를 품어내기 힘들다. 박병욱 제주대 행정학과 교수(공법학)는 “유럽연합(EU)에서는 이동 및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주소지를 주 주소지와 부가 주소지 등 두 개의 주소를 인정해주는 경우가 많다. 납세 과정에서는 어느 한곳의 주소를 택하도록 하는데, 주로 직장이 있는 지역 주소지를 많이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사회변화를 고려해 주민등록법에서 형사처벌 조항을 없애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부산에 살면서 국가 행정과 관련된 주소지를 서울로 정하는 것도 기본권 중 하나로 보장해야 한다. 특정 지역 비거주자가 거주자인 것처럼 꾸며 부동산 투기를 하거나 자녀 학교 진학 과정에서 특혜를 누렸다면 관련 제도가 정한 요건을 어긴 것이므로 해당 법에 처벌 규정을 두면 된다. 또 행정기관이 실주거지나 본인 확인을 주민등록에 의존했는데 이는 행정 편의주의적 사고”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주민등록지와 실거주지’ 일치를 요구함으로써 다양한 나쁜 짓을 잡으려 할 것이 아니라, 각 제도를 집행하는 교육부·국토교통부·국세청 등 행정기관이 탈법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실거주지 확인 등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주거지 정보를 수집하지 않는 미국의 경우 행정기관별로 실거주지를 증명하는 두 가지 이상의 서류를 요구한다. 우리 사회에선 ‘거주지 요건’을 내걸어 이익·불이익을 주는 제도가 많은 편이다. 이러한 구조가 항상 합당한지도 따져볼 필요는 있다.
지난 2009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회원들이 서울 명동 거리에서 ‘No! 위장전입. 1만명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는 모습. 1980년대 이후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위장전입’이란 용어엔, 실거주지에서 주민등록을 하지 않는 행위 뿐 아니라 부동산 투기 등 다양한 나쁜 행위들까지 광범위하게 담겨있다. 연합뉴스
입장 바뀐 위장전입 공방
2000년 고위 공직자 후보자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위장전입’은 도덕성을 따지는 잣대로 활용됐다. 주민등록 주소를 옮겨 이익과 특혜를 본 정황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2007년 6월 당시 한나라당 국민검증위원회는 당 대선 경선 후보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부동산 투기를 위한 위장전입 의혹’에 대해 근거 없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위장전입이라는 말 대신 ‘주소지 이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후보가 자녀 4명을 사립초등학교와 강남구 소재 중학교에 보내기 위해 다섯차례에 걸쳐 주소지를 이전했을 뿐, 부동산 투기를 위한 위장전입 의혹은 음해라는 주장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 원칙에 어긋나는 ‘위장전입’ 후보자는 자격이 없다는 지금의 일부 야당의 입장과 사뭇 다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참고 자료: <해방 이후 주민등록제도의 변천과 그 성격>(2007·김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