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검찰개혁 위한 것이길” 등
뼈 있는 말이나 훈계·자평 일색
“왜 개혁대상 됐는지 몰라” 평가
뼈 있는 말이나 훈계·자평 일색
“왜 개혁대상 됐는지 몰라” 평가
“오랫동안 검찰 핵심 보직을 꿰차며 조직을 끌어왔다는 사람들이 나가면서 하는 말들을 보니, 검찰이 왜 개혁대상이 됐는지 알 것 같다.”
새 정부 출범과 검찰개혁 여론, 그리고 뒤따른 ‘돈봉투 만찬’ 파문 등으로 검찰 수뇌부 8명이 줄줄이 ‘퇴임의 변’을 내놓았지만, 누구도 검찰을 이렇게 만든 것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상황을 지적하며 한 법조인이 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이들의 퇴임사엔 검찰개혁이나 후배들에 대한 ‘훈계’, 자신의 검사 생활에 대한 ‘자평’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현 정부 출범 다음날 사의를 표명한 김수남 전 검찰총장은 퇴임사에서 “검찰개혁은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 무엇인지가 기준이 될 것”이라며 “형사사법 국제적 추세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올바른 방향의 검찰개혁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검찰개혁 여론의 촉매제가 된 ‘우병우 전 수석 봐주기 수사’라는 꼬리표가 김 전 총장을 1년 가까이 따라다녔지만, 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대신 지난 1년의 성과는 5페이지 분량으로 성실히 정리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돈봉투 만찬’ 감찰 지시 직후 사의를 표명한 이창재 전 법무부 차관·김주현 대검찰청 차장도 다르지 않았다. “항상 겸허한 마음으로 흔들림 없이 국민을 섬길 것을 당부한다”(이 전 차관),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큰 뜻을 품고 스스로 희망과 용기를 가지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김 전 차장)는 덕담과 충고만 이어졌다.
지난 8일 단행된 검찰 고위간부 인사 뒤엔 더 노골적 표현도 등장했다. 법무부가 ‘이례적’으로 “과거 중요사건 부적절 처리 등 문제가 됐던 검사”라는 강한 표현을 쓰며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정점식 전 대검 공안부장·김진모 전 서울남부지검장·전현준 전 대구지검장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 조처하자, 이들은 모두 사직을 택했다.
‘우병우 특별수사팀’을 이끌며 기소도 못 한 채 ‘황제소환’ 논란만 남긴 윤 전 고검장은 “지금 이뤄지고 있는 일련의 조치들이 진정으로 검찰개혁을 위한 것이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언론에 “더 이상 조직에 쓸모가 없다고 하면 가야지 별수 있겠느냐”는 발언이 알려지면서 누리꾼의 집중포화 대상이 됐다.
정 전 부장도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수사에 여러 차례 참여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송두율 교수 사건과 통진당 해산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을 뿐, 자신을 둘러싼 ‘편파기소’ 비판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이번 인사로 사표를 쓰지는 않았지만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을 잘못 처리했다는 이유로 문책성 좌천을 당한 유상범 창원지검장의 발언도 논란이 됐다. 그는 인사 다음날인 지난 9일 이임식에서 “결코 부끄러움 없이 사건을 처리하고자 노력했기에 의연함과 당당함을 잃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 언론에는 “정윤회 문건사건 재조사가 이뤄져 명예를 회복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내부 통신망에는 이번 인사를 성토하거나 부당하다고 비판하는 글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 검찰 관계자는 “떠나는 사람들이 한 말을 보면 기가 막힌다”며 “조직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도 다 자기 검사 생활이 떳떳했고 자랑스럽다고 한다. 고위간부들은 아직도 우리가 ‘오만’하기 때문에 개혁대상으로 비친다는 점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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