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사태의 수사를 방해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첫 정식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던 중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국민의 축복 속에 선출된 대통령님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탄핵이 되도록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정치적 책임에 대해 국민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지난해 ‘국정농단’ 의혹이 이어지는 내내 굳게 닫혀 있던 우병우(50)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입에서 처음으로 ‘사죄’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우 전 수석은 ‘정치적 책임’을 내세워 사죄를 했을 뿐, 구체적 혐의는 모두 부인했다. 책임도 언론과 사정기관에 떠넘겼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이영훈) 심리로 16일 열린 첫 정식재판에서 우 전 수석은 22분을 할애해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우 전 수석은 미르·케이스포츠재단 설립 관련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비위를 알고도 진상을 덮는 데 가담하고(직무유기), 문체부 공무원들에 대한 좌천성 인사를 강요한 혐의(직권남용,강요) 등으로 기소됐다.
법정에 선 그는 “(이 자리에 피고인으로 서게 된 것은)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비극적 사태가 발생한 데 대해 국민이 준엄한 질책을 주신 것으로 생각한다”며, 자신은 법적인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분명히 했다. 이어 우 전 수석은 자신에게 적용된 혐의를 모두 부인하며 ‘억울하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제 공소사실은 역대 모든 민정수석 및 민정비서관들이 해오던 일”이라며 “검찰이 상황에 따라 불법과 합법의 기준을 달리한다면 법적 안정성이 저해될 것이고,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체부 공무원에게 좌천성 인사를 강요한 혐의(직권남용)에 대해선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2006년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권성 전 재판관의 소수의견을 인용하며, 자신이 정치적 희생양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권 전 재판관은 “직권남용은 그 조항의 모호함 때문에 정권 교체의 경우 전임 정부에서 활동한 공직자를 처벌하는 데 이용될 위험성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근거로 전임 정부에서 정당한 업무를 수행한 자신이 정권교체로 인해 탄압을 받고 있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우 전 수석은 언론에도 날을 세웠다. 그는 “일만 하고 살아온 제 인생은 언론 보도 한 줄로 한순간 온 국민의 지탄을 받아 마땅한 대상으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넥슨의 처가 땅 특혜 매매 의혹, 아들 의경 보직 특혜 의혹 등도 ‘전방위적이고 광범위한 추측성 의혹보도’라고 단정했다. 친정인 검찰에 대해서도 “통상 수사는 사건이 발생하면 범인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저에 대해선 사람 중심으로 이런저런 혐의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비판했다.
이날 첫 증인으로 나온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은 “지난해 4월 민정수석실로부터 문체부 국과장 6명에 대한 전보조치를 요구받은 뒤 사유를 묻자 우 전 수석이 ‘뭐가 알고 싶냐, 그대로 하시면 된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우 전 수석은 직접 발언권을 갖고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다’고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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