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후손의 토지반환 소송에서 삼일(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을 들어 소송을 각하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수원지방법원 민사2단독 이종광 판사는 15일 친일파 이근호의 손자 이아무개(78)씨가 “할아버지가 일제로부터 사정받은 경기도 오산시 궐동 대지 380㎡를 돌려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 보존등기 말소소송에 대해 “재판권 행사를 일시 정지한다는 의미로서 소송을 각하한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판결문에서 “일제 식민통치의 멍에를 스스로 타파하고자 했던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는 우리 헌법 정신에 비추어 보면, 친일파 후손의 재산 환수소송과 같은 반민족 행위는 헌정질서 파괴 행위나 다를 바 없으므로 그 반민족 행위의 위헌성이 인정된다”고 지적했다. 이 판사는 “하지만 이와 같은 헌법정신과 국민 개개인의 재산권을 보장한 법률 조항이 상충하는 만큼, 이를 정리하는 법률적 기준이 마련될 때까지 재판청구권을 일시 정지한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원고는 삼일운동의 독립정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이념으로 하는 우리 헌법 전문의 규정이나 헌법 이념상 이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 허용될 수 없음을 알았거나, 국회에 ‘친일반민족 행위자 재산의 환수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돼 있으므로 이와 같은 상황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며, “현재까지 이 토지에 대한 재산권 제한 입법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을 악용해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판사는 헌법 정신과 법률 조항의 상충을 들며 국회가 시급히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했다. 이 판사는 “국회는 1951년 반민족행위 처벌법 폐지 이후 친일파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어떤 법률도 제정하지 않고 있지만, 일정 사항에서는 입법을 해야 할 의무를 진다”며, “14·16대 국회에서 친일파 재산 국유화 입법이 발의됐다 폐기됐고, 17대에도 같은 법안이 계류 중인 상황은 입법부 스스로 친일파 재산권 제한에 대한 입법의무를 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씨의 할아버지 이근호는 을사오적의 한 명인 군부대신 이근택의 형으로, 1910년 경술국치 당시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와 은사금 2만5천엔을 받았다. 또 조선을 방문한 일왕 태자를 환영하는 전·현직 대신들의 모임에 가입해 활동했다.
소송을 낸 땅은 1911년 토지구획정리와 함께 이근호의 소유가 됐고, 아들에게 상속됐다가 한국전쟁으로 등기부가 소실되면서 주인 없는 부동산으로 분류돼 59년 소유권이 국가로 넘어갔다. 이씨는 지난해 3월 소송을 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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