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즈청 베이징대 외교학부 석좌교수와 권만학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가 11일 저녁 부산 파라다이스호텔 라운지에서 만나 `한반도의 탈냉전과 아시아 새질서\'에 관한 두번째 릴레이 대담을 하고 있다. 부산/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005 부산아펙] 아시아 새질서와 탈냉전의 한반도 연속대담 ② 권만학 - 예즈청
권만학=아펙 정상회의를 포함한 지역주의와 그간의 움직임에 대한 논의로 얘기를 시작해보자. 동아시아 정상회의와 지역주의에 대한 중국의 평가는 어떤 것인가? 예즈청=중국은 아펙도 좋고, 동아시아 정상회의도 좋다이다. 모두가 지역 통합과 관련된 문제다. 세계화와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큰 지역과 작은 지역 간에 통합이 일어날 수 있다. 아펙은 무역이나 투자 같은 경제 부분을 주로 다루고 있다. 동아시아 정상회의는 정치나 안보 의제도 경제 문제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룬다. 한반도에서는 사실 냉전이 종식되지 않았다. 남한과 북한이 아직까지 치열하게 군비경쟁을 하고 있고, 미국은 동북아 지역에 가장 많은 주둔군을 유지하고 있다. 동북아의 진정한 협력을 위해선 한반도에서 냉전이 종식돼야 한다. 권만학 중국의 ‘동아시아주의’ 부활 미국과 갈등 보여주는 것인가 예즈청 ‘아태주의’ 와 서로 보완관계 미국 이익과 배치되지 않을 것 권==동아시아에선 지역주의를 놓고 두 개의 조류가 대립해 왔다. 하나는 동아시아와 태평양을 묶는 아태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태평양 건너 국가인 미국을 배제하는 동아시아주의이다. 이 대립에서 아태주의가 승리했고, 그게 아펙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아펙은 두가지 큰 위기에 부딪혔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금융위기에 휩쓸려 고통을 당했을 때 아펙은 무력했다. 무역·투자 자유화에서도 미국은 매우 빠른 속도를 주장함으로써 천천히 가기를 원하는 동남아 국가들의 불만을 샀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팽창하는 경제력을 배경으로 아세안과 함께 적극적으로 동아시아주의를 부활시켰다. 그 결과가 다음달 열리는 동아시아 정상회의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 정상회의가 중국과 미국의 갈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예==부분적으로는 아태주의와 동아시아주의가 존재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두 개가 서로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 크게 보면 서로 보완적이다. 아펙은 정치나 안보를 논의하는 장이 아니다. 태평양 연안국가들 사이에는 이미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라는 조직이 있다. 이에 비해 동아시아는 정치와 안보를 포함해 모든 면에서 대화가 부족했다. 중국이 이 지역에서 미국의 구실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의 존재로 인해 한반도 냉전이 유지되고 있고, 미-일 동맹의 확대는 냉전적 사고의 유물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미국은 과거 소련을 견제했고, 지금은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미국이 이 지역에서 군사력를 강화하는 게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중국은 지역안정을 원하고, 미국이 여기에 기여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권==어찌됐든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미국을 배제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미국은 이번 아펙 정상회의에서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대응하는 모종의 조처를 취할지도 모른다. 미국은 현실적으로 동아시아 국가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정상회의를 지리적으로 동아시아에 있는 국가에만 한정한다면, 이를 정당화할 논리가 많지 않다. 동아시아 평화와 발전을 위해 미국이 참여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냐가 중요하다. 미국을 제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반발을 살 수 밖에 없다.
예==미국이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문제될 것은 없다. 한국이나 일본은 미국에 너무 신경을 쓴다. 중국이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상하이협력기구(SCO)를 만들 때도 미국이 싫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미국의 이익과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다. 아세안도 마찬가지다. 아세안 회원국들은 모두 미국과 밀접한 이해관계가 있지만, 미국을 배제했다. 처음부터 미국이 싫어하면 어쩌나 걱정했으면 지금의 아세안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하지만 아세안은 반공을 위해 미국의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아세안이 오늘날 독자적인 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동아시아와 정치 경제적으로 밀접히 연관돼 있다. 그런 미국이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빠진다면 하루 아침에 많은 것을 잃는 셈이다. 한국과 일본도 급격한 변화로 인한 충격에 빠질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인도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를 집어넣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인 견제가 현실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6자 회담을 영구적인 동북아 다자 안보틀로 전환하자는 논의가 나왔다. 6자 회담에서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핵폐기와 경제적 보상 등을 집행하고 감시할 기구가 필요하다. 이것이 동북아의 안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예==그 생각에 완전히 동의한다. 나는 일찍이 이와 비슷한 의견을 내놓은 적이 있다. 한반도 핵문제와 관련한 다자 회담이 시작했을 때 중국의 한 신문에 “중국은 다자 회담을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한 메커니즘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기고를 한 적이 있다. 권==6자 회담을 안보기구로 전환하면 동북아에서 정치·안보 논의의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동아시아만의 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는가? 예==동아시아와 동북아 지역개념에 혼동이 있는 것 같다. 6자 회담은 동북아와 관련된 안보 기제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안보 문제는 훨씬 더 복잡하고 많은 문제가 상존한다. 따라서 북핵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동아시아 안보 기제는 뒤로 미룰 수 있다. 권==정치·안보 문제는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이나 한국은 동남아와 크게 상관이 없다. 동남아에는 이미 지역안보기구인 아세안지역포럼(ARF)이 있다. 거기서 안보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6자 회담이 동북아 안보체로 전환하면 지역적 특성에 따라 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동아시아의 안보 문제는 대략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예==일리가 있다. 어쨌든 동남아는 이미 성숙한 기제를 갖고 있고, 동북아는 아직 결정된 게 없다. 앞으로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권==세력 전이 이론이라는 게 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동북아나 동아시아에서 국제질서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미국에 유리했고, 중국에 불리했다. 중국과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한국, 중국과 일본, 중국과 주변국들의 관계도 그렇다. 중국의 경제가 지금처럼 계속 성장한다면 40년 뒤엔 일본의 4배, 한국의 10배가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중국에 불리한 국제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다. 세력 전이 이론에 따르면 힘이 약한 국가가 패권국가와 힘이 비슷해질 때 전쟁이 일어난다. 물론 21세기엔 통하지 않는 이론이다. 핵무기가 있기 때문이고, 비군사적인 방법을 통해 평화에 도달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갈등이 생길 것이고, 그런 갈등을 잘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시아 새질서와 탈냉전의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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