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문화재단(이사장 박종화)이 신문발전기금 수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최근 징역형 확정 판결을 받은 조민제 국민일보 회장의 재단 이사직 유지를 위해 재단 정관을 ‘원포인트’ 개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문화재단은 국민일보 지분을 100% 소유한 비영리 재단법인이다. 신문발전기금을 빼돌린 이를 정관까지 바꿔 신문사 지주회사격인 재단의 이사로 재임용한 셈이다. 조 회장은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의 둘째 아들이다.
21일 <한겨레>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조 회장은 지난 3월30일 용역대금을 부풀린 허위견적서 제출 등으로 신문발전위원회의 신문발전기금 2억원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대법원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국민일보의 유일 소유주인 국민문화재단의 당시 정관은 ‘금고 이상의 형을 받고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3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는 임원이 될 수 없다’(제9조4호)고 규정했다. 재단의 이사이기도 했던 조 회장은 이 조항에 따라 지난 4월21일 이사직에서 사임했다.
그런데 재단은 같은 날 이사회를 열고 조 회장의 이사 자격을 박탈한 정관 제9조4호를 삭제하기로 의결했다. 조 회장은 한달여 뒤인 지난달 25일 다시 열린 이사회에서 재단 이사직에 복귀했다. 기존 정관에 의해 이사직을 유지할 수 없게 되자, 사실상 조 회장만을 위해 정관을 고친 셈이다. 재단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국민일보의 유일 주주인 재단을 장악하면 국민일보는 자동으로 장악할 수 있다. 조 회장이 국민일보 회장직을 수행하려면 재단 이사 직함이 필수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관 변경 허가권을 가진 서울시 관계자는 “국민문화재단은 비영리법인이지만 공익법인은 아니다. 본인들이 이사회를 열어 정관 변경을 의결한 뒤 정관을 고치겠다고 신청하면 허가를 내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정관 개정이 ‘위법’은 아니어도 ‘비윤리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신문사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국고를 빼돌린 이를 신문발행업을 하겠다고 설립된 재단의 이사직에 ‘꼼수’로 다시 앉혔기 때문이다. 정운형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장은 “국민문화재단은 언론을 소유하고 있는 재단이기 때문에 어떤 조직보다 도덕적으로 투명해야 한다. 윤리적 측면에서도 자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텐데, 정관을 교묘하게 바꿔 실형을 받은 사람이 재단 이사로 다시 들어간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재단 관계자들에게 여러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해명을 듣지 못했다.
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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