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들이 베트남 꽝남성 퐁니마을에 자리한 응우옌티르엉(78·오른쪽)씨의 집을 방문해 1968년 퐁니·퐁넛 학살에 대한 증언을 듣고 있다. 르엉씨는 당시 한국군에 의해 부상을 입고 쓰러진 응우옌티탄(57·오른쪽에서 두번째)씨와 함께 헬기에 동승한 인물이다.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태스크포스(TF) 제공
“(한국군이) 이모를 살해한 이후에 다 같이 마을을 떠났나요?”
“이모를 (칼로) 찌르고, 시신을 불태우고, 집도 다 태우고 바로 마을을 떠났어요. 오빠는 기어서, 저는 걸어서 이웃집으로 겨우 도망쳤어요.”
지난 3일 오전, 베트남 다낭시에 자리한 한 호텔의 회의실에서 응우옌티탄(57)씨가 한국 변호사들의 질문에 답하며 50여년 전 기억을 더듬었다. 흰 종이 위에 한국군을 피해 숨어있던 방공호와 집의 위치 등을 그려가며 당시 상황을 세세하게 설명한 탄씨는 증언 도중 힘겨운 듯 고개를 떨구고, 낮은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3시간 넘게 증언을 이어간 탄씨는 인터뷰 말미 “베트남 참전 한국군들이 이 사건을 부정하는 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냐”는 변호사의 질문에 흐느끼며 이렇게 답했다. “군인들의 사과를 받을 줄 알았어요. 사과를 받으면 묻고 싶은 것이 많았어요. 우리 가족은 어린 아이들이었는데, 왜 총으로 죽였냐고. 하지만 그럴 기회조차 없었어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태스크포스’(TF) 소속 변호사 6명이 지난 2~7일 베트남 민간인 학살 현지 조사를 진행했다. 지난 1999년 <한겨레21>의 최초 보도를 통해 민간인 학살 문제가 공론화된 뒤 가해국인 한국 변호사들의 집단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민변은 베트남 피해자들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학살의 책임을 묻는 국가배상소송을 준비 중인데, 실제 소송에 앞서 모의소송인 ‘시민법정’을 기획하고 있다. 시민법정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의 책임을 드러낸 뒤 여세를 몰아 실제 소송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민변 변호사들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학살이 집중됐던 꽝남성의 퐁니·퐁넛 마을과 하미 마을을 찾아 소송에 필요한 생존자들의 학살 당시 구체적인 증언과 자료를 모으는 데 주력했다.
3일 변호사들은 퐁니·퐁넛 마을 학살의 생존자인 응우예티탄을 찾았다. 다낭에서 남쪽으로 25㎞ 떨어진 퐁니·퐁넛 마을은 1968년 2월12일 청룡부대 제1대대 1중대에 의해 노인, 어린이, 여성 등 74명이 학살당한 곳이다. 당시 8살이었던 탄씨 역시 이모와 언니, 남동생 등 가족 5명을 잃었다. 탄씨는 “한국군이 마을에 왔을 당시 방공호에 숨어있었다. 군인들은 방공호에서 나오는 아이들을 마당에 세웠고, 이후 차례로 총을 쐈다”고 했다. 변호사들은 탄씨 진술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의 증언 가운데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실제 법정에서 한국군의 학살(불법행위)이 입증되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의 세밀한 증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시 부상을 입은 탄씨와 함께 헬기를 타고 병원에 동행한 응우옌티르엉(78)씨는 “탄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고, 피를 많이 흘리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지난 4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들이 베트남 꽝남성 하미 마을에 자리한 쯔엉티투(79·왼쪽에서 두 번째)씨의 집에 방문해 1968년 하미학살 당시 증언을 듣고 있다. 투씨는 당시 학살로 친척을 포함해 모두 12명의 가족을 잃었다.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태스크포스(TF) 제공
4~5일엔 하미 마을을 찾아 학살 당시 가족 5명을 잃은 응우옌꺼이(72)씨를 비롯해 생존자 4명의 증언을 들었다. 하미 마을은 1968년 2월22일 청룡부대(해병 제2여단)에 의해 민간인 학살 피해를 입은 곳이다. 티에프의 임재성 변호사는 “민간인 학살 사건 가운데 퐁니·퐁넛 마을은 상대적으로 많은 증거가 확보돼 진술을 구체화하는데 초점을 뒀고, 하미 마을의 경우 충분한 조사가 이뤄져있지 않아 1차 증언을 확보하는 데 의미를 뒀다”며 “궁극적인 목표가 국가배상소송인 만큼 한국 법원이 학살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정도의 진술과 증거 수집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변 티에프와 한베평화재단은 오는 7월께 시민법정 준비위원회를 꾸린 뒤, 베트남전 종전 기념 43주년인 2018년 4월께 서울 또는 제주에서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을 원고로 한 시민법정을 열 예정이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여성 성노예 동원 책임을 묻기 위해 지난 2000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렸던 여성국제전범법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임 변호사는 “1999년 최초 보도 이후 18년간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을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며 “국가배상소송을 통해 한 명이라도 피해 사실이 인정될 경우, 정부가 책임있게 나설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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