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 깬 비서울대·여성 판사
쌍용차 파업참여 해고자 손 들어주는 등 노동자 보호
부당 면직 검사·구직자 노동조합 설립 구제도 눈길
‘아내 상속’ 케냐 여성·나이지리아 성소수자 난민 판정
‘제주 해군기지 건설계획 재승인’ 판결은 논란 일어
쌍용차 파업참여 해고자 손 들어주는 등 노동자 보호
부당 면직 검사·구직자 노동조합 설립 구제도 눈길
‘아내 상속’ 케냐 여성·나이지리아 성소수자 난민 판정
‘제주 해군기지 건설계획 재승인’ 판결은 논란 일어
문재인 정부 첫 대법관 후보자인 박정화(51)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와 조재연(61) 변호사가 각각 4일과 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본격적인 후보자 검증을 받는다. 이들은 ‘서울대·50대 남성·고위 법관’으로 상징되는 기존 대법관의 일반적인 이력과 거리가 있어, 대법원의 폐쇄적·획일적 구성에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두 후보자의 주요 판결을 이틀에 걸쳐 나눠 싣는다.
비서울대·여성·현직 부장판사인 박 후보자가 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하면 역대 5번째 여성 대법관이자, 박보영·김소영 대법관과 함께 대법원에 3명의 여성 대법관이 재직하는 첫 사례가 된다. 박 후보자는 지난 2010년 서울행정법원 개원 이래 첫 여성 부장판사로 부임하는 등 법원의 강고한 ‘유리천장’을 깼던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달 16일 박 후보자를 대법관 후보로 임명 제청하자, 한국여성변호사회와 대한변호사협회 등에서는 “노동 관련 법률의 해석과 사회적 약자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은 바 있다.
박 후보자는 주로 노동사건에서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판결로 주목받았다. 2011년 쌍용자동차 파업 당시 정리해고 대상자가 아니면서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노동자 8명에 대해 ‘회사 쪽의 부당해고’라는 판결을 내린 게 대표적이다. 당시 해고와 관련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도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정을 내렸지만, 쌍용차 쪽은 이에 불복해 “이들이 불법파업에 가담한 사실이 있다”며 다시 행정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에서 이 사건을 맡았던 박 후보자는 “사측이 경영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자 이들이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해 파업에 나간 점을 참작할 만하다”는 등의 이유로 해고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같은 해 한국타이어 노동자 15명이 심근경색 등으로 잇따라 돌연사한 문제를 폭로한 정아무개씨를 회사가 해고한 사건에 대해서도 비슷한 판단을 했다. 정씨가 낸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충남지방노동위원회가 받아들였지만, 회사는 다시 부당해고 판정 취소 소송을 냈다. 이에 박 후보자는 “회사 쪽이 안전 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적발돼 형사처벌을 받은 만큼, 회사의 이미지 실추 책임을 정씨에게 전적으로 돌리기 어렵다”며 ‘부당해고 취소’ 요청을 기각했다. 박 후보자는 행정법원 부장판사 임명 당시에도 “노동 사건은 결과 뿐 아니라 절차적 과정도 중요하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눈길을 끄는 비정규직 관련 판결들도 있다. 박 후보자는 한 시중은행이 지난 2009년 비정규직의 통근비와 점심값을 정규직의 절반만 준 사건과 관련해 “업무 난이도나 업무량에 따라 차등지급할 비용이 아니다”라며 기업의 비정규직 차별을 꼬집은 적이 있다. 2012년에는 구직자가 포함된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의 노동조합 설립을 인정하거나, 과거 민주노동당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면직된 윤아무개 검사에 대한 복직 판결을 내린 당사자이기도 하다.
법무부와 법원이 소극적 판단을 내려온 난민 문제도 눈길을 끈다. 박 후보자는 지난 2010년 남편이 숨진 뒤 ‘아내 상속’ 관습에 따라 시동생과 재혼을 강요당한 케냐 여성과, 나이지리아에서 성적 소수자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다 한국으로 온 남성을 난민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임지봉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박 후보자의 지명은 단지 여성 대법관 수를 늘린다는 의미 뿐 아니라 노동분야에서 일관되게 소수·약자들 편에서 판결을 해온 인물이 대법관에 오른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박 후보자가 큰 무리없는 판단을 해왔기 때문에 법원 내부에서도 논란이라 할 만한 얘기가 거의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후보자는 2010년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이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낸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계획 취소’ 소송에서 “환경평가가 보완된 해군기지 계획은 적법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한 해 전 이뤄진 국방부의 건설계획을 법원이 한차례 ‘무효’라고 판단했는데, 박 후보자가 ‘수정된 계획에는 문제가 없다’고 승인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박 후보자는 “(애초 실시계획 승인과 별개로) 새로운 실시계획은 환경영향 평가 결과 문제가 없고, 도지사 협의와 주민의견 수렴도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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