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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조재연 후보, 전두환·노태우 때 소신 판결 ‘반골 판사’

등록 2017-07-03 19:40수정 2017-07-03 23:34

대법관 후보 지명자들 판결 분석 <하>

1985년에 ‘민중달력’ 압수수색 당시 영장 기각
납북 귀환어부 간첩 사건에도 ‘무죄 선고’ 소신
“24년 변호사, 대법원에 다양성 줄 것” 평가도
문재인 정부 첫 대법관 후보로서 5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조재연(61·사법연수원 12기) 변호사는 판사 시절 ‘반골’이란 수식어가 붙었던 인물이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조 후보자의 과거 판결은 사실 돌출적이거나 진보적 성향보다 평범한 쪽에 가까웠다. 전두환·노태우 정부 시절 시국 사건들에 ‘보통의 법 상식’을 적용했을 뿐인데, 당시 시대적 한계 때문에 ‘반골’로 분류된 것이다.

조 후보자의 판사 재임 기간은 공교롭게도 전두환·노태우 정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조 후보자는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2년 뒤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처음 부임했다.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 서울동부지원 판사, 서울가정법원 판사 등을 거쳐 노태우 정부가 끝나던 해인 1993년 판사 생활을 접었다. 눈에 띄는 그의 주요 판결은 서울형사지방법원에 근무하던 1985년 전후 시국 관련 사건들에 집중돼 있다.

대법원 자료와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하면, 1985년 12월 서울중앙지검 공안부 이사철 검사는 재야단체 민중문화운동협의회가 만든 달력 ‘민족미술 12마당’에 이적성이 있다며 이 단체 사무실의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앞서 검찰은 다른 판사들로부터 같은 내용의 압수수색 영장 10여건을 발부받아 12개 재야단체 압수수색을 마친 뒤였다. 하지만 당시 서울형사지법 판사였던 조 후보자는 “자신의 취향과 기호에 따라 달력을 만드는 일은 국민 각자에 보장된 권리”라며 영장을 기각했다. 이어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평가는 궁극적으로 역사가 하는 것이지 제3자나 국가기관이 할 일은 아니다”라며 “문제의 달력이 헌법상 보장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넘어섰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검찰은 다른 재판부를 통해 사흘 만에 영장을 다시 발부받았다. 당시 검찰 내부에서는 조 후보자 등을 겨냥해 “판사들이 영장 한 건 기각하면 영웅이 되는 줄 안다”고 날을 세우기도 했다.

같은 해, 조 후보자는 <민주정치>(1호)라는 책자를 냈다는 이유로 즉결심판에 넘겨진 출판사 일월서각 대표 최아무개씨의 무죄를 선고해 주목받았다. 최씨가 야당 국회의원 이철 등 13명의 광주항쟁 관련 발언을 묶어 책자로 만들자, 경찰은 최씨에게 유언비어 날조·유포 혐의를 적용했다.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보고서를 보면, 조 후보자는 당시 재판을 앞두고 수석부장판사로부터 ‘피고인들이 사회불안을 야기한 만큼 유죄 인정, 구류 선고’를 당부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조 후보자는 판결문에서 “국회의원 발언을 수록·편집한 것만으로 유언비어를 유포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적었다.

1987년엔 동해에서 어로작업을 하던 도중 납북됐다 귀환해 간첩 취급을 받던 어부들을 구제했다. 당시만 해도 정부의 공안몰이 여파로 납북 귀환 어부들에게 관행적으로 유죄가 선고됐는데, 조 후보자가 제동을 건 것이다. 광주민주항쟁을 다룬 첫 책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전국 서점에 배포했다가 붙잡힌 출판업자 이아무개씨에 대해서도 “책 장사라는 점을 정상 참작했다”며 형 면제를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판결과 달리 1990년엔 <민중의 바다> 등 이적 논란 서적들에 관한 압수수색 영장에서 다른 재판부가 “언론출판 자유에 중대한 제한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기각했던 영장을 조 후보자가 발부해준 경우도 있었다.

조 후보자는 가정 형편 탓에 덕수상고를 졸업하고 한국은행에서 근무하다, 성균관대 야간 법학과를 거쳐 판사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로도 잘 알려졌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사법시험(22회)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문재인 대통령, 박원순 서울시장, 이귀남 전 법무부장관 등이 조 후보자의 사법연수원(12기) 동기다.

법조계에선 조 후보자가 11년의 짧은 판사 생활을 한 뒤, 1993년부터 24년간 변호사로 활동한 만큼 과거 판결만으로 자질을 판단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도 있다. 조 후보자는 변호사로 개업한 뒤엔 주로 조세·민사·가사·건설·부동산 분야의 변론을 맡아왔다. 지난 2009년엔 와이티엔(YTN) ‘노조원 징계해고 무효’ 소송 당시 회사 쪽 변호를 맡았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조 후보자가 공정거래위원회 자문위원,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 경찰청 수사정책자문위원, 언론중재위원회 감사, 장애인법률지원변호사 등을 지내며 꾸준히 공익 활동을 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 세 차례나 그를 대법관으로 추천한 바 있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실력과 인품을 갖췄고, 판사뿐 아니라 변호사 경험도 풍부하게 갖춘 조 후보자가 대법원의 획일화된 구조에 다양성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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