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2009년 8월4일과 5일 노동자들이 파업 중이던 쌍용자동차 경기도 평택공장에 헬기와 기중기를 동원해 ‘진압 작전’을 벌였다. 무장해제된 노동자를 붙잡아 곤봉과 방패로 때리는 장면이 수없이 목격됐고 실제로 수백명이 다쳤다. 진압이 끝난 다음날 경찰은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16억7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 집회와 파업을 진압하던 경찰이, 진압하면서 발생한 피해의 책임을 시민과 노동자들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집회와 파업이 ‘불법’이면 그 모든 책임을 집회와 파업 주최자들이 져야 하는 걸까요? 경찰이 말하는 ‘불법’은 타당할까요? 경찰은 그 돈 받아서 어디에 쓰려는 걸까요? 그러면서 인권 경찰은 어떻게 되겠다는 걸까요?
“1주일 전만 해도 ‘검찰수사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며 사과할 의사가 없다고 한 사람이었습니다. 유족들은 사과를 ‘당’했습니다. 무엇을 사과하겠다는 건지, 왜 하겠다는 건지도 없습니다. 형식적인 사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최석환 백남기투쟁본부 사무국장)
“이철성 경찰청장이 고개 숙인 대상은 국민도 피해자도 아닌, 청와대일 겁니다. 뭔가 얻을 게 있으니까 청와대를 향해 허리를 굽혔을 겁니다.”(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리는 누군가에게 사과할 일이 생겼을 때, “내가 ‘이러저러한 일’에 대해 ‘이러저러한 잘못’을 해서 미안하다, 사과한다”고 말한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지난달 16일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한 ‘기습’ 사과엔 이런 내용들이 빠져 있었다.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경찰의 인권침해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위한 토론회’ 참가자들이 경찰청장의 사과에 분개하는 건 당연했다.
살수차를 참수리차로 ‘무늬’만 바꾼다거나 영혼없는 사과를 하는 경찰의 행태를, 많은 사람들은 수사권을 얻기 위한 쇼라고 생각한다. 노동자의 파업과 시민들의 집회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그 과정에서 인권을 침해한 자신들의 과거를 반성하려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경찰은 형사처벌 외에도 손해배상 청구소송으로 집회 및 쟁의행위 주도자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다. 집회나 파업 참가자들이 형사처벌을 받은 사실은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물리는 근거가 된다. 검찰은 물론이고 법원도 훌륭한 조력자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경찰법 3조) 경찰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데 큰 힘을 보태고 있다.
“이게 다 집회와 파업 때문”
경찰이 집회나 파업에 참여한 시민, 노동자들에게 내미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논리는 단순하다. ① 집회나 파업을 진압하던 경찰이 다치거나 장비가 파손됐다. ② 참가자들 다수가 형사처벌을 받는 등 집회나 파업은 ‘불법’이었다. ③ 따라서 집회나 파업을 주최한 단체와 간부, 참가자들이 함께 이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 ④ 직접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더라도.
경찰의 논리는 소송에서 경찰의 손을 들어주는 법원의 논리이기도 하다. “(파업을 주도했을 뿐) 폭력행위를 지시하거나 직접 실행하지 않았다” “폭력이 발생할 당시 현장에 있지 않았다”는 노동자들의 항변은 무시된다. 대신 “진압하는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이 충분히 예상되는데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너네 파업했지? 그 파업 너네들이 주동자잖아? 근데 그 파업 불법이지? 경찰이 진압하면 다치기 마련인데 불법 파업을 왜 했어? 진압 들어가기 전에 끝냈어야지. 안 끝내고 계속하게 내버려 뒀으니 너네들 책임인 거야. 현장에 있었든 없었든, 폭력을 행사했든 안 했든, 폭력을 지시했든 안 했든 너네 책임인 거야. 왜? 너네가 파업을 했으니까.’
서울고법 민사합의15부(재판장 김우진)가 2016년 5월 선고한 74쪽에 이르는 판결문은 이런 논리로 흘러간다. 2009년 8월4일과 5일 쌍용자동차 경기도 평택공장에서 파업 중이던 노동자들을 강제 진압한 경찰이 쌍용차 노조와 민주노총, 노조 간부 등 101명에게 낸 손배배상 청구소송의 항소심이었다.
무장해제된 노동자를 붙잡아 곤봉과 방패로 때리고 테이저건에 폭동진압용 다목적발사기까지 쏴가며 노동자들을 진압한 경찰이었다. 현병철 위원장 시절의 국가인권위원회가 “대형참사가 우려된다”며 긴급구제 권고를 내릴 정도였다. 진압이 끝난 다음날 경찰은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16억7000만원을 청구했는데, 이 중 대부분은 진압에 동원된 헬기(6억8000만원)와 기중기(7억4000만원) 피해액이었다. 헬기와 중장비까지 동원해가며 유례없는 강경진압을 벌여 충돌을 일으킨 경찰이 공권력의 피해자들을 상대로 헬기 수리비와 기중기 업체 휴업 손해액까지(업체에서 빌린 기중기였다) 내놓으라는 꼴이었다.
‘굳이 헬기나 기중기까지 진압에 동원할 필요가 있었는지’ ‘과격한 진압은 과격한 저항을 불러오게 마련이므로 경찰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진 않은지’ 같은 상식적인 질문들을 법원은 무시했다. 이유는? 역시 “불법 파업에 해당하고… 물리적 충돌이 예상되는데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독재국가에서나 일어날 법한, 옛날 옛적 이야기 같지만 여전히 진행 중인 이야기다.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서 심리중이다.(2016다26662) 매일 62만원의 지연이자가 발생하고 있다.
경찰은 2015년 11월14일 박근혜 정부의 불통 정책을 향해 시민들이 분노했던 민중총궐기대회 주최자들에게도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백남기 농민이 사망하고 이철성 경찰청장이 사과를 ‘감행’한 바로 그날의 집회다.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대회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은 버스 700여대를 동원해 서울 광화문~서울광장을 세 겹으로 에워쌌다. 행진이 시작하기 전부터 참가자들의 진로를 막고 물대포를 살포했고,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은 백남기 농민은 2016년 9월25일 사망했다. 경찰은 집회 주최자들을 상대로 경찰관 91명의 치료비와 버스, 캠코더 등의 수리비로 3억87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이번에도 경찰은 91명의 치료비와 버스, 캠코더 등의 수리비로 3억8700만원을 청구했다. 대부분이 차벽에 이용된 버스 수리비(약 3억2000만원)였다. 경찰은 당시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려는 집회 참가자들을 막기 위해 서울 광화문~서울광장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차벽을 세 겹으로 에워쌌다. 안국역, 종로 등 청와대 방향으로 가는 우회로에도 행진이 시작되기 전부터 차벽을 설치하느라 버스 700여대가 동원됐다.
일반 시민이 다닐 수 있는 통로까지 막는 경찰의 과도한 차벽 운용이 집회를 자극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경찰은 꿋꿋하게 피해의 모든 책임을 집회 주최 쪽에 돌렸다. 집회 주최자들이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잔인하고 조직적인 대규모 불법행위”를 주도했고, “참가자들의 불법행위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경찰의 주장이었다. 인권 경찰이 되겠다 외치고, 청장이 느닷없이 사과를 했지만, 이 소송은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공동불법행위’라면…‘연대하여’
쌍용차 노조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판결문이나 민중총궐기 주최 쪽에 제기한 소송의 소장을 보면 경찰은(결국 법원도) 파업이나 집회를 ‘공동불법행위’로 보고 있다. 공동불법행위란 여러 사람이 함께 불법행위를 저질러 누군가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뜻. 파업 당시 폭력행위를 지시·방조하였거나 집회의 질서 유지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니 주최자들은 ‘불법행위’자가 된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형법의 일반교통방해와 업무방해는 집회나 파업을 불법으로 낙인찍는 유용한 도구다.
민법은 공동불법행위로 손해를 가했을 땐 ‘연대하여’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민법 760조 1항) 구체적으로 누가 손해를 발생시키는 행위를 했는지를 알 수 없을 때에도 배상해야 한다.(760조 2항) 예를 들어, 경찰관 A가 집회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다쳤고 그 집회의 주최자들이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A가 누구에게 어떤 과정으로 부상을 당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경찰은 주최자들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들이고 과거에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만 잘 설명하면 된다.
여기서 ‘연대하여’ 배상한다는 뜻은 여러명이 하나의 책임을 부담한다는 뜻이다. “피고 1, 2는 연대하여 1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은 “원고는 피고 1, 2에게 각 500만원씩 받을 수도 있고, 피고 1에게서 1000만원을 모두 받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가해자들 사이의 경제력 차이가 클 경우 피해자는 여력이 있는 가해자에게 피해액 전액을 배상받을 수 있다.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목적이 큰 개념이다.
문제는 이 공동불법행위와 연대책임이 집회와 파업 참가자들을 옥죄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쌍용차 소송 1, 2심에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 조합원 67명의 임금과 퇴직금에 가압류가, 조합원 22명의 부동산에 압류가 이뤄진 상태다. 이론적으로는 법원에서 인정된 손해배상 금액(11억6800만원)을 피고 중 한명에게 모두 강제집행할 수도 있다. 금속노조 법률원 장석우 변호사는 “개인이 부담하기엔 천문학적인 손해에 대해 일률적으로 연대책임을 부과하는 건 국가엔 딱히 실익이 없고 그야말로 피고들을 가해할 목적으로 이뤄지는 권리 행사”라며 “개인별로 책임을 구분하고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집회란 무엇인가?
헌법재판소는 집회의 자유가 “개(인)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정치·사회 현상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표현함으로써 정치적 안정에 기여하는, 자유민주국가의 필수 구성요소”라고 정의했다.(2008헌가25) 집회란 기본적으로 현 정치(권)에 대한 반대와 비판을 동력으로 할 수밖에 없다.
공익인권변호사 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서선영 변호사는 “집회는 ‘정치적 반대자’들이 모여 의사를 표출하는 행위라 항상 긴장이 존재한다. 그런 상황에서 경찰이 차벽을 쌓는 방식으로 시민들을 진압하면 긴장과 충돌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경찰은 이런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하면 모든 책임을 집회 주최자에게 묻는다. 서 변호사는 “결국 경찰 주장은 정치적 반대의사가 강한 집회는 주최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정권에 따라 차이는 있을지언정 경찰의 손배소와 가압류는 앞으로 더욱더 적극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경찰은 여전히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 단체행동권(파업)을 하위법인 집시법이나 형법의 업무방해라는 틀에 맞춰 ‘불법’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호중 교수는 5일 토론회에서 “한국 경찰 대부분은 기본권인 파업을 ‘범죄이자 조기에 진압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 결과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국가 폭력이자 국가 범죄가 자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노동자의 파업이나 집회를 형법의 업무방해나 일반교통방해죄로 처벌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악용되는 법률을 개정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공권력이 투입돼 발생한 손해를 비정부단체나 개인이 배상하게 하는 현행 민사소송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6명은 지난 2월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한할 수 있는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 정책 등에 반대하는 의사표현 행위자들에게 제기하는 이른바 ‘전략적 봉쇄소송’이라는 사실을 법원이 인정하면 소송을 중지시킬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사를 지연시켰다는 이유로 국방부로부터 34억48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한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을 구제하기 위해 발의한 법안이지만 경찰이 제기한 소송에도 적용될 수 있다.
경찰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피고들로 구성된 ‘국가 손해배상 청구 대응 모임’은 지난달 8일 기자회견을 열고 가압류와 소송의 철회를 요구했다. 이들은 “기본권 보호 의무를 지닌 국가가 기본권의 주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개혁위원회 인권보호분과 위원인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반인권적인 손배소 취하를 경찰에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소 취하 여부는) 정해진 바 없다”고 밝혔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