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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왜 공감과 배려 가르치냐고요? 그래야 아이들 행복하죠”

등록 2017-07-09 18:13수정 2017-07-09 23:29

【짬】 부탄 행복교육 개척자, 초덴 교장

데키 초덴 교장이 수도 팀푸의 이엘시(ELC)고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데키 초덴 교장이 수도 팀푸의 이엘시(ELC)고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부탄에서는 관광객한테 달려드는 거리의 아이들을 볼 수가 없다. 도시나 시골이나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있다. 2014년엔 초등학교 입학률이 98.7%로, 거의 100%에 이르고 있다. 1990년대 이전만 해도 20%대에 머물렀다. 공용어인 영어로 가르치고 10학년까지 의무교육이다. 급식도 기숙사도 무상으로 제공한다. 부탄 교육의 눈부신 발전은 부탄 행복정책의 가장 두드러진 성과물이다. 국민총행복(GNH, Gross National Happiness) 증진을 근대화의 목표로 삼는 부탄은 정부 예산의 20% 가까이를 무상교육에 쏟아붓고 있다. 외국인한테 받는 관광비의 일부를 정부 로열티(하루 65달러)로 징수해 무상교육 재원으로 거뜬히 충당한다.

지난달 부탄의 수도 팀푸에서 만난 사립학교 이엘시(ELC, facebook.com/elchighschool/)의 데키 초덴 교장은 부탄의 행복 교육을 이끈 개척자이자 산증인이다.

“1985년 미국 유학 6년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왔어요. 그해 대학 졸업자가 겨우 71명, 대부분 인도 유학생이었습니다. 정부는 우리들을 모두 산간벽지로 보내더군요. 1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라고요. 저는 운 좋게 동남부의 페마가첼로 갔습니다. 제 고향이었거든요.”

그가 맞닥뜨린 고향 마을의 학교는 정상적인 학교가 아니었다. 8~10학년을 마친 ‘중졸자’들이 교사 노릇을 하고 있었다. 자격을 갖춘 교사는 인도인들이었고, 아이들은 인도 역사를 배우고 있었다. 전기도 가스도 생각할 수 없었고, 3시간을 걸어 등교하는 아이들이 허다했다. 그나마 인도인 교사들은 날씨가 추워지는 10월이나 11월쯤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가 이듬해 2월이 돼야 돌아오곤 했다.

“벽지 교사 1년을 마치고 팀푸로 돌아와 경제부처 근무를 지원했어요. 그런데 몇달이 지나도 발령이 나지 않더군요. 그쪽은 경쟁이 치열했거든요. 자꾸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어요. 마음을 바꿔먹고 보따리를 쌌습니다. 내 고향 페마가첼의 초등학교로 내려갔지요.” 데키 초덴 교장은 대학을 갓 졸업한 자신을 페마가첼로 보낸 정부에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저의 교육자 인생이 시작될 수도 없었겠죠.”

데키 초덴 교장과 아이들이 학교 마당에서 명상을 하는 모습.
데키 초덴 교장과 아이들이 학교 마당에서 명상을 하는 모습.

부탄 행복정책에 교육 ‘상전벽해’
10년 의무교육에 기숙사 무상

미 유학 뒤 벽지 공립교 교사 거쳐
99년 수도에 사립교 ELC 세워
아이들 행복증진 교육에 초점
“머리 아닌 마음 만져주고 싶어”

그 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영국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도 받았다. 셋째 아이까지 낳으면서 사립학교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멀리 있는 공립학교 교사를 하면서 세 아이를 키우자니 감당할 수가 없었어요. 마침 사립학교가 하나둘 생겨날 때였어요. 집 가까운 사립학교 근무를 자청했다가, 아예 우리 아이도 보낼 수 있는 사립학교를 세우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1999년에 유치원생 30명으로 지금의 이엘시(ELC)를 시작해서 해마다 한 학년씩 늘려나갔어요. 2005년에 6학년 첫 졸업생 22명을 배출했고, 2년 전에는 고등학교 과정의 이엘시 학교를 하나 더 세웠습니다.”

그와 같은 교육 개척자들의 열정과 헌신으로 부탄의 학교는 불과 20~30년 만에 상전벽해로 바뀌었다. 해발 4000m 이상 높이에서 일하는 유목민 아이들도 기숙사 학교를 다닌다. 보편적인 의무교육이 자리잡으면서, 데키 초덴 교장의 관심은 ‘행복한 교육’으로 진화해나간다.

“2010년 무렵이었어요. 정부의 국민총행복 워크숍을 갔다가, ‘아 이거구나’ 싶었어요. 그 전까지 제 비전은 아이들이 공부 잘하도록 하는 것이었어요. 우리 아이들이 성공할 수 있을까, 몇명이나 의대로 진학시킬 수 있을까, 그런 것에 관심을 쏟았어요. 그게 교육인 줄 알았지요.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요. 이제는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교육(Education for GNH)을 생각합니다.”

그가 학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내용은 ‘마음 챙기기’, 곧 명상이다. 이엘시 학교에서는 모든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3분 정도 명상 시간을 갖는다. “아이들이나 교사들이나 너무 많은 것을 신경쓰면서 살아가잖아요. 명상 시간은 이런 것을 걸러주는 필터 구실을 해요. 교사와 아이들이 잠시 시간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함께 갖는 것, 머리가 아닌 마음을 만져주는 교육의 출발이에요. 내 것을 받은 친구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려고 해요. 집 없는 사람들, 나라 잃은 사람들, 버려진 사람들의 처지를 공감할 수 있는 아이들을 길러내는 것이 행복 교육이죠. 가장 행복한 교육은 아이들 마음의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에요.”

유치원 때부터 데키 초덴 교장의 교육을 받은 8학년 소남 왕추크는 “놀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교장 선생님 철학을 잘 따르는 것은 아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저희 같은 10대 학생들이 뜨거운 홍차라면, 교장 선생님 말씀은 설탕이에요. 설탕을 홍차에 넣으면 처음엔 잘 녹지 않지만, 계속해서 잘 저어주면 결국엔 다 녹아들게 되잖아요. 그래도 저희 동기생 8명 중에 3명 정도는 교장 선생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요.”

인터뷰 내내 데키 초덴 교장의 열정은 넘쳐났다.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아이들이 미심쩍어해도 저는 공감과 배려를 계속 이야기해요. 한명의 아이라도 마음이 동해서 친구한테 영향을 끼친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에요. 한국 아이들이 경쟁으로 힘들다는데 쓰다듬어주고 싶어요. 우리 학교 오는 것도 환영해요.”

팀푸/글·사진 김현대 <한겨레21>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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