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이 종반전으로 접어들면서, 이 부회장을 기소한 특검과 이에 맞서는 변호인단의 신경전이 연일 치열하다. 재판부가 이 부회장의 1심 구속 기간 만료일인 오는 8월 말 이전에 선고하겠다고 예고한 만큼,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이 부회장 재판에 나선 ‘창’과 ‘방패’의 공방은, 법정을 옮겨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 뇌물을 건넨 이와 받은 이는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이 부회장 재판에서 ‘안종범 수첩’의 증거채택을 놓고 벌어진 ‘장외 여론전’이 이번 주엔 박 전 대통령 공판에 증인으로 나올 이 부회장의 ‘증언 거부’를 둘러싸고 재연될 전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0일 예정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뇌물 공여 혐의로 재판을 받는 이 부회장은 사건의 진실을 밝힐 핵심 증인이지만, 앞서 재판에 나왔던 삼성 임원들처럼 증언을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을 비롯해 박 전 대통령 재판에 출석한 삼성 쪽 증인들이 모두 집단으로 증언을 거부해 여론의 비판을 받았던 만큼, 이 부회장의 ‘증언거부’ 역시 한바탕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우리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모든 국민이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무조건적 비판을 받을 일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집단 증언거부가 전례가 없고, 삼성 임원이 동시에 모든 증언을 거부하겠다고 재판부에 사전에 통보하는 등 국민적 관심이 쏠린 재판을 힘 있는 집단이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것처럼 비치기 때문에 비판을 받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의 조직적 증언거부는 임원이나 이 부회장 스스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으면서, 위증죄 처벌도 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예를 들어 박상진 전 사장의 휴대폰 메시지에는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독대하기 이틀 전에 승마협회와 관련한 삼성 내부 회의를 주재하고, 독대 직후 다시 승마협회와 관련한 삼성 내부 ‘긴급회의’를 열었으며, 그 이틀 뒤 박 전 사장이 최순실 모녀가 있는 독일로 급히 출국한 정황이 나와 있다. 재판 상황을 잘 아는 한 법조계 관계자는 “박 전 사장 문자메시지 내용을 보면 이 부회장이 삼성의 지원 상황을 모를 수가 없다. 재판에서 문자메시지의 의미를 그대로 얘기하면 불리한 진술이 되고, 아니라고 하면 위증이 된다”고 말했다. 법조계 일부에선 ‘삼성 임원들도 별도 재판을 받고 있어 돌출적 증언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룹 차원에서는 진술거부로 대응을 통일하는 게 더 안심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법정에서 말을 아끼는 삼성은 반대로 ‘장외 여론전’에는 적극적이다. 삼성은 최근 기자들에게 “오늘 공판에서 (삼성의) 말세탁 의혹을 단번에 해소할 수 있는 증거가 제출됐다. 중요한 것 같아 정리해 보낸다”며 장문의 글을 보냈다. 삼성이 최순실에게 넘겨줬다고 주장한 말 ‘라우싱’을 돌려받았다는 내용이었다. 특검 관계자는 “뇌물 사건에서는 사건이 터지고 난 뒤 줬던 뇌물을 돌려받는 것은 비일비재하다. 크게 의미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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