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대학원 총학생회와 인권단체로 구성된 ‘서울대 인권단체 모임’이 13일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인권 개선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캔 노예 사건’과 ‘교수 폭언·성희롱’ 등 대학원생에 대한 서울대 교수들의 ‘갑질’이 잇따라 논란을 빚자, 서울대 대학원생들이 집단행동에 나섰다. 교수들과의 관계에서 절대적 약자인 대학원생들이 교수들의 부당한 행위에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낸 건 이례적인 일이다.
서울대 대학원 총학생회 등 서울대 대학원생들로 이뤄진 ‘서울대 인권단체 모임’은 13일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교육부와 대학본부에 “대학원생 인권을 보호할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장했다. 일부 학생들은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마스크와 모자를 쓴 채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이들은 “힘없는 대학원생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영원한 ‘을’의 위치에서 절대 권력의 눈치를 봐야 한다. 인권 사각지대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학원에서 ‘연구실 인건비 횡령’, ‘교수 갑질’, ‘연구실 내 왕따·표절 문제’ 등이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내부고발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면 학계에서 영원히 매장되거나 관련 업계에서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잘못된 현실을 그저 참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대학원생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건 최근 이 학교에서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교수들의 갑질 행태가 잇따라 폭로됐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교수 지시로 대학원생 4명이 1년 동안 8만쪽에 이르는 문서를 컴퓨터로 스캔했다는 이른바 ‘스캔 노예 사건’이 드러났고, 지난달엔 사회학과 ㄱ교수가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지속적으로 욕설을 포함한 폭언과 성희롱을 일삼았다는 폭로가 나왔다. 그러나 서울대 인권센터는 ‘스캔 노예 사건’ 문제 교수에 대해 ‘징계 사유가 없다’며 인권교육을 이수하라고 권고하는 데 그쳤다. ㄱ교수는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ㄱ교수 문제를 다루는 사회학과 대책위에서 활동 중인 ㄴ씨는 기자회견에 나와 “‘해임’ 다음의 중징계가 고작 ‘정직 3개월’이라 한다. 교수에 대한 징계 규정이 허술하기 짝이 없어 학생에 대한 교수의 갑질을 제대로 방지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피해자를 보호하고 솜방망이 징계를 막으려면 징계 절차에 학생 대표가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교육부에 “대학원생 인권 문제를 다루는 태스크포스(TF)를 설립하고, 대학별 연구실 평가 수단을 마련하는 등 인권 개선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학교 본부에 “학생 대표를 징계 절차에 참여시키고 문제 교수에 대한 징계 수준을 강화하라”고 요구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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