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3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가 14일 공개한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실 문건의 작성 시기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재직 기간과 겹친다. 문건에 업무 범위를 벗어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어, 우 전 수석을 상대로 한 검찰의 재수사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 전 수석은 2014년 5월부터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근무하다 2015년 1월 민정수석으로 승진했다. 공개된 문서의 상당수는 그가 민정비서관에 임명된 직후인 2014년 6월부터 작성된 것이다. 그동안 우 전 수석은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모르쇠’로 일관하다, 자신과 관련된 부분이 드러나면 ‘민정수석실의 정당한 업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번 문건을 보면 당시 민정수석실이 업무 범위를 넘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 등에 직접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문건에 등장하는 ‘경영권 승계 국면에서 삼성이 뭘 필요로 하는지 파악’ ‘삼성의 당면 과제 해결에 정부도 상당한 영향력 행사 가능’ 등의 메모는 민정수석실의 정무적 판단이 개입된 대목들이기 때문이다. 민정수석실이 ‘박근혜-이재용’ 사이의 거래를 전체적으로 기획하고 관리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 외에도 문건에는 민정수석실의 업무 범위를 벗어난 부분이 여럿 눈에 띈다. ‘문화예술계 건전화로 문화융성 기반 정비’ ‘건전 보수권을 국정 우군으로 적극 활용’ 등의 문구와 작성 시점 등을 비교해보면 ‘국정농단’의 한 축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출발점이 민정수석실이 될 수도 있다. ‘세월호 유족의 대리기사 폭행 사건의 철저 수사를 다그치라’는 등의 내용 등도 정상적 계통을 거치지 않은 ‘월권’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재수사는 결국 범죄 구성요건을 따져봐야 한다. 가령 세월호 유족의 대리기사 폭행 사건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가 직접 지시나 전화를 했다면 곧바로 직권남용이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날 특검에 관련 자료를 넘겼고, 특검은 이를 수사권이 있는 검찰에 넘겨 사실 확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검찰로서는 그동안 새 정부와 여론 모두 우 전 수석의 재수사를 원하는데도 계기를 찾지 못해 곤혹스러운 처지였다. 이번 문건 공개가 검찰의 부담을 덜고 자연스럽게 재수사 수순으로 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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